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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Mar 05. 2024

신발 두 짝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에는 뒷정리도 못하고 부랴부랴 둘째의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딱 퇴근 시간과 맞물린 날이면 빨간색 정지 신호마다 서는 통에 마음만 더 조급해진다. 초록불로 바뀐 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출발하지 않는 차들에게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날린다. 안 막히면 5분이면 갈 것을.


 도착 후, 신발장으로 제일 먼저 눈이 간다. 오늘은 몇 켤레나 남아있으려나. 조금이라도 일찍 같 날이면 신발들이 제법 보이던데, 초등달을 뒤로하고 달려온 날에는 빨간색 운동화 두 짝 말고는 텅 비어있다.


벨을 누른다.


친구들 다 가서 심심했겠다.

혼자 남아서 속상했겠다.


늦었구나 싶은 마음에 안쓰러움과 미안한 마음이 한 껏 올라오지만, 쫄래쫄래 나오며 손 흔드는 아이를 보니 미안했던 마음만큼 활짝 웃어 보인다.

벨이 울릴 때마다 '우리 엄마가 온건 아닌가' 하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엄마, 보고 싶었어. 형아도 보고 싶었어."

"그랬구나. 엄마도 보고 싶었어. 얼른 밥 먹으러 가자."


"많이 기다렸어?"

"응, 오늘은 엄마가 늦게 왔어. 친구들 다 가고 나랑 선생님이랑 그림 그렸어."

"그랬구나! 오늘은 어땠는데?"

"재밌었어!"


오늘은 뭘 했고, 뭘 만들었고, 어디를 갔으며, 누가 밥을 안 먹었으며, 누구랑 싸웠는지.... 집으로 가는 내내 쫑알쫑알 하루를 쏟아내기 바쁘다. 하루종일 같이 있었으면 들었을 말의 총량을 채우기라도 하는 것 같다. '엄마도 보고 싶었어'라는 말에 대답해 주듯, '걱정 마 아주 잘 지냈어'라는 말을 너만의 언어들로 차 안을 가득 채운다. 그 작은 호흡들이 미안한 마음들을 쓸어내 버린다.


겨울이 지나 해라도 길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만사가 그렇듯, 걱정과 근심 안타까움 들은 시간과 함께 희미해져 갔다. 계절이 바뀌며 낮이 길어진다. 지난겨울, 해가 일찍 저버린 어둑 컴컴한 하원길 그리고 신발 두 짝은 너무나 짠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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