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번에 부모교육 공부하면서 자격증 땄어.”
“누가 누굴 교육시키는 거고?”
가히 촌철살인의 대가이신 울 엄마. 틀리지 않은 완벽한 말이어서 반박할 수가 없다.
“요즘 엄마들 참 애 키우기 힘들데이. 그제?”
‘요즘 엄마들’로 시작했을 때 시쳇말로 본격적인 ‘라때’ 타임이구나 싶었는데, 웬걸! 뒷말마저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내년에 칠순을 앞두고 계신 나의 엄마.
“맞제! 엄마! 우리 둘 키울 때는 이렇게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았제?”
“하모! 느그 둘은 신경 쓸 것도 없었다. 배고프면 먹이고, 더러우면 씻기고, 잠 오면 재우고, 그것도 애기 때 잠시다. 학교시험 있으면 옆에 앉아서 문제집 같이 풀어주고, 해지기 전까지 밥 먹으러 오라 할 때까지는 온 천지 돌아다니며 뛰어놀고 그랬제. 요즘 맹키로 뭐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경험해 주고 그런 게 있나. 느그 키우는 거는 수월했다.”
우문현답.
집 앞이 죄다 논이며 들이며 그런 깡촌은 분명 아니었는데, 부엌에서 빨간 소쿠리 하나, 통 하나 훔쳐 올챙이며 가재며 피라미 잡는다고 동네 뒷산에 친구들이랑 겁도 없이 올라가 온 개울가를 헤집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라떼는 도롱뇽도 많았는데.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는 삼십 대가 통째로 사라진 것 같다. 니네 키우고 살림하다 보니까 어느새 사십 중반이 훌쩍 넘었더라.”
우리를 수월케 키웠다고 말하시지만 진실은 저 말에 있다는 걸 사십 중반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엄마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신 것이다. 저 말을 내뱉으면서 여러 감정이 드셨으리라.
딸을 보며 떠올린 당신의 젊은 시절.
우리를 키우며 정신없이 지나왔을 당신의 눈부신 시절.
다시 손주를 보며 불현듯 떠올랐던 그토록 짧았던 당신의 고운 그 시절.
엄마는 우리 어릴 적,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시곤 한다. 바로 어제 일처럼 말이다.
“니 아기 때 버스 타면 억수로 울었데이”
“니 6살까지 내가 이불 빨래한다고 욕봤데이”
“니 처음 자전거 샀을 때 니가 얼마나 좋아했는 줄 아나”
“우리 어렸을 때 키우던 해피, 얼매나 영리했노! 기억나나?”
“니 초등학교 처음 가서 오줌싸고 집에 온 거 아나? 기억나제?”
“니 고등학교 때 내한테 억수로 짜증 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모든 순간이었다.
처음 자전거를 샀을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엄마는 내 뒤를 따라 걸어서 집까지 왔다. 거의 1시간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새 자전거를 타고 신이 나있는 딸의 모습을 뒤에서 보며 걷는 엄마의 마음을 잠시 상상해 봤다. 내 아이는 내가 되고, 나는 엄마가 되어 걷는 모습.
마음이 아려온다.
그렇게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이 좋았했던 것도 잠시 새 자전거는 일주일 만에 도둑맞았다. 그래도 엄마의 기억 속엔 비틀비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엄마가 잘 따라오는지 안 오는지 돌아서서 보는 웃는 얼굴이 그렇게도 진하게 남았나 보다. 몇 번이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엄마의 번개처럼 지나간 세월에는 우리가 가득 차 있었다.
“애들 잘 키우고 있다! 니! 그만하면 잘하고 있는기다!”
어느 육아서보다 어느 교육서보다 더 큰 가르침을 주는 엄마.
조금 더 천천히 나이 들어가시길, 많이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 더 잘 살아갈 우리 모습을 눈에 많이 담으시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