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벽증 무균남 오스카, 꼬마 새우 “자크”
“나비의 성장 과정” 주제로 만들기를 하려고 준비해온 재료들 (나뭇잎, 알, 애벌레, 번데기, 나비)을 내 교사 책상 한켠에 분류해놓았다.
그리고, 15분 후, 수업을 하려는데 재료들이 감쪽같이 다 사라졌다.
소피아가 PICA 증상 (섭식장애의 한 유형으로, 소화할 수 없거나 영양소가 없는 물질을 먹는 행위)이 있기에 용의 선상에 올랐으나, 이 재료들은 삼킬 수 있는 식감도, 양도 아니기에 용의 선상에서 제외했다. 요상한 일이다.
아이들 시험지와 서류 정리할 뭉치들을 내 교사 책상에 올려 두었는데...
요상한 일이다.
내 특수교육 교실 한가운데에는 둥근 책상 네 개가 배치되어 있고, 각 책상 위에는 다양한 놀이와 학습 재료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수업 시작 전 미리 재료를 올려두는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이 전부 사라져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물건들은 교실 문 뒤에서 발견되곤 했다.
아침 9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스카가 가장 먼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Good morning, Oscar” (좋은 아침, 오스카)
“Good morning, Ms. Leeeeeeeeeee” (좋은 아침, 미스리리리리리리리)
특유의 뚱한 표정과 느릿느릿 억양으로, 오스카만의 방식으로 아침 인사를 건넨다. 비교적 독립적이고 인지 능력이 양호한 Kindergarten (유치원) 5살 오스카는 스쿨버스에서 스스로 내리고, 교실까지 찾아와서는 아침 루틴을 차근차근 따른다. 가방을 내려놓고, 손 세정제로 손 닦고,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가지며 다른 친구들이 모두 도착할때까지 기다린다.
그 날의 만들기 수업을 위해 3가지 색상의 물감을 미리 짜놓고, 잠시 계수대에서 컵을 세척하느라 몸을 돌린 후 돌아보니...
잡았다. 범인! 오스카, 너구나!
오스카가 자폐 스펙트럼 (Autism Spectrum) 이외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ADHD)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청소 강박증 (Obsessive-Compulsive Disorder-OCD)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강박 장애, OCD)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정 생각 (강박 사고)에 사로잡히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행동 (강박 행동)을 반복하는 장애이다.
무균남 오스카는 뜨겁게 청소하고 정리했다.
책상 위에 놓여진 공부 재료들은 무조건 캐비넷 안으로
색연필, 크레용, 연필들은 분류해서 넣은 후, 캐비넷 속으로
학습 자료들은 문 뒤, 책장 뒤, 가구 뒤 후미진 곳으로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는 즉각 쓰레기통으로
미스리 책상 위의 종이들은 모두 미스리 책상 서랍 속에
미스리 소지품들은 전부 미스리 백팩 속에
친구들이 보고 있는 책들 빼앗아서 책장으로
친구들이 푸는 문제지 빼앗아서 각자의 백팩 안으로
주말이면 밀린 집안 일로 분주한 다른 교사들이, 청소왕 오스카를 주말 동안 빌리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우리반 특수학급 “어항” 속에는 여러 사연의 꼬마 물고기 니모들이 있다. 한쪽 지느러미가 비정상적으로 작은 장애를 가진 꼬마 물고기 니모처럼, 내 학생들은 본인만의 “작은 지느러미"를 갖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Autism Spectrum)를 중심으로, 추가적인 과잉행동장애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ADHD), 강박증 (Obsessive-Compulsive Disorder-OCD), 품행장애 (Conduct Disorder), Anxiety Disorders (불안장애), 언어 장애 (Speech and Language Disorders) 등 그들만의 “작은 지느러미"는 다채롭다.
어항 속에서 청소를 도맡던 꼬마 새우 "자크"처럼, 오스카는 우리 반의 청소왕이다. 오스카는 무섭게 청소하고 정리하길 반복했다. 청소할때의 그 민첩함, 집중력은 실로 대단했기에, 그릇 닦기, 스펀지 짜기, 인형 옷 빨기 등 청소를 가장한 오감 놀이를 할 때면, 강박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묘한 "양면 쾌감"을 만끽하는 듯 했다.
특수교사들 사이에서 강박증 (Obsessive-Compulsive Disorder-OCD), 흔히 OCD라고 부르며 본인만의 "작은 지느러미" 얘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냉장고에 물건들 라벨이 전부 앞을 향해 있어야 해."
"나는 반드시 오후 9시전에는 샤워를 마쳐야 하고, 다음날 6시 샤워를 한번 더 해야해."
"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 차고에 반드시 외투를 벗어넣고 격리를 시켜야 해."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뛰어야하고, 돌아온 직후 바나나 스무디를 마셔야 해."
사실, 누구나 "작은 지느러미"가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내재된 장애의 단면을 조금씩 갖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반 꼬마 물고기 니모들을 통해, 감춰진 내 작은 지느러미를 종종 발견한다. '이 작은 지느러미로 어떻게 여기까지 수영해왔까?'
언젠가 우리반의 꼬마 물고기 니모들이 내 "어항 학급"에서 "바다 학급" (일반학급)으로 나가거나, "어항 학급" 졸업 후 넓은 바다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미국에서는 장애 학생이 21세까지만 공교육을 받을 수 있고, 21세 이후에는 누구든지 어떤 모습으로든 사회로 진출해야 한다.
미국의 특수교육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Career and Transition Services (진로 및 전환 서비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진출 훈련을 받는다. 자립적인 일상 생활 훈련, 기술, 직업 훈련 등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우리반 물고기들이 수돗물과 장식으로 꾸며진 조용한 어항이 아닌, 거센 파도와 형형색색의 물고기들, 상어가 어슬렁거리는 진짜 바다로 나가는 날을 가만히 고대해본다.
무섭겠지만, 이것만 기억해!
When life gets you down, do you wanna know what you've gotta do? Just keep swimming!
(삶이 고달플때, 무얼 해야할지 알고 싶어? 그냥 계속 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