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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내 학생은 훌륭하다

출력값이 아닌 마음을 기다리며

by 미스리
강조되고 반복적인 소리는 네 학생을 불안하게 해요!


ABA (Applied Behavior Analysis; 응용행동분석) 전문가가 내 학급에 오면, 레파토리처럼 했던 말이다.


가브리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미역을 앗아간 5살 사이보그”에서 언급했던 5살 학생)이 자기 자기 학대 (Self Injurious Behavior) 행동을 하며 본인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쿵쿵 내리 찍을때, 1년차 특수교사였던 내가 가브리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진출처: https://www.autismparentingmagazine.com/autism-self-harm/



“Stop, Gabriel, oh, no no.. you will get hurt. Please relax! Stop, oh.. no, stop. oh.. no, stop!” (그만해, 가브리엘. 오. 안돼. 안돼. 너 다쳐, 제발 진정해. 오 안돼 그만, 안돼. 그만!)


ABA 코치는 내가 길게 반복하며 강조하는 말들이 사실 아이에게는 단순한 소음으로 들려, 오히려 분노와 불안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사실, 맞는 말이다. 강형욱 개 훈련사가 “문제견”을 다룰 때 쓰는 테크닉은 ABA (Applied Behavior Analysis; 응용행동분석) 전문가들이 자폐 학생의 문제 행동을 다루는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단호한 눈빛, 최소한의 언어, 짧고 단순한 지시어, 약간의 신체 지원, 기다림, 최소한의 접촉으로, 그리고 칭찬과 보상. 이것들이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핵심이었다.


ABA (Applied Behavior Analysis; 응용행동분석)는 주로 자폐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테라피다. 반복과 보상의 방법으로 문제 행동은 감소시키고, 대체 행동을 지도하며, 사회에서 필요한 기초 능력을 직접적인 방법으로 가르치는 방식이다. 내가 근무하는 카운티의 공립학교에서도 이 방법을 정식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카운티에서 고용한 ABA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학급에 방문해 특수 교사들을 지원한다.


ABA 전문가의 정식 명칭은 Board Certified Behavior Analyst (BCBA)이다. BCBA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관련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자들이 대학원 자격증 프로그램을 통해 과목들을 이수한 후, 현장 실습을 마친 뒤, 그리고 난이도 높은 서술형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 수요가 높고, 근무 시간이 자유롭고, 보수도 비교적 높은 편이기에, 특수교사들이 많이 도전한다. 내 학교에 방문하는 ABA 전문가들 역시 모두 특수교사 출신이었다.


사진 출처: https://blueabatherapy.com/aba/what-is-a-bcba/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 찮. 아. 요!


버럭 소리지르며 내 도움을 매몰차게 뿌리치는, 위풍당당한 1년차 젊은 ABA 코치! 강형욱 훈련사 훈련 중인 개한테 물렸을 때, 도움 주려고 달려온 견주에게 목청 높여 과한 무안을 주는 장면과 매우 흡사했다.


ABA 코치는 빨강, 파랑, 노랑 자동차 장난감을 흔들며 가브리엘에게 색상 알고리즘을 입력하려 했다.


“Find! Find the blue car!” (찾아봐! 파란차를 찾아봐!)


가브리엘이 파란차를 찾았을까? 파란차 대신에 ABA 코치의 머리끄댕이를 찾고 말았다. ABA 코치의 머리끄댕이가 순식간에 가브리엘의 양 손에 잡혔다.


안타깝고 미안한 견주의 마음으로 단 걸음에 달려가, 가브리엘의 손을 ABA 코치 머리에서 떼어내려고 했는데, 돌아온건 단호한 “I’m ok!" (괜찮아요!) 호통 뿐이었다.


‘괜찮다고? 정말로? 나도 지난번에 머리 끄댕이 잡혀서 미역 한 덩어리 만큼 뽑혔는데…’


언어 표현이 제한적인 가브리엘은 과잉 행동으로 감정을 표출했다. 또래보다 키도 크고 몸집이 컸던 가브리엘은 “강조되고 반복적인 패턴”으로 야무지게 ABA 코치의 길고 찰랑한 금발 머리를 꽉 붙들고 앞뒤로 뜯고 있었다. ABA 코치는 배고픈 야생 사자에게 잡힌 사슴처럼 황망한 모습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ABA 테라피는 효율과 비효율의 양날을 갖고 있다. 문제 행동 제압에는 효과적이지만, 아이에게 기술이나 개념, 정보를 가르칠 때는 아이의 감정을 철저히 무시한다. 아이의 마음이 열리는 때, 상대를 믿어주는 때, 상대와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 때, 그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를 그저 사이보그처럼 대하며 짧은 명령어를 입력할 뿐이다. 오늘도 과충전된 사이보그 가브리엘에게 알고리듬 색상 명령어를 무한 입력하니, 결국 또 터져버린 셈이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말없이 다가가, 딱한 사슴을 구출하려 했다.


“괜찮아요! 괜. 찮. 아. 요!”


여전히 위풍당당한 ABA 코치는 내 도움을 받는다는게 자존심이 상하는 듯 했다.


'그래, 강형욱 훈련사가 견주한테 도움 받고 싶지는 않겠지.'


그래서, 일단 두고 봤다.


5분 가량 지났을까. ABA 코치가 나를 아련히 보더니, 애잔한 소리로 “Help me”를 외다. “특수교사 머리 끄댕이 지침서”대로 일단 아이의 손을 꽉 잡은 후, 시선과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게 한 후, 간신히 사슴을 구출했다. 가브리엘의 손에는 이번엔 내 검정머리카락 미역 대신 금발의 옥수수 수염이 가득했다.




내 VIP 학생 가브리엘은 그 후로 약 3개월 후, 특수교육 전문 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문제 행동이 너무도 심각했기에, 일반 초등학교 내 특수 학급이 아닌 더 전문적인 교육 기관으로 전학가는게 시급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BIP (Behavior Intervention Plan; 행동 중재 계획)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했고, BIP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빙해야 했으며, IEP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meeting (미국에서 장애 학생들이 맞춤형 개별 교육을 받기 위해 1년에 한번 혹은 필요에 따라 여러번 주최하는 미팅; 부모, 특수교사, 일반학급교사, 교장 혹은 교감, 부모가 고용한 변호사 혹은 교육대리인이 참석하는 공식적인 교육 미팅)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부모는 학교 투어 및 상담의 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카운티 내에 공립 특수 전문 학교가 여러 개 있는데, 수업료는 무상이다. 전교생이 특수교육 학생이고, 전문가가 상주하며, 안전하고 편리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장점이 많지만, 아이가 더 이상 비장애 학생과 만날 기회가 없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가브리엘처럼 사회적 상호 교류가 전혀 없고 자기 상해 행동이 심한 학생에게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다음 해, 2년차 특수교사 해에..


제 2의 가브리엘. 5살 Kindergarten 앤드류가 내 특수 학급에 합류했다. 앤드류는 화나거나 원하는게 충족되지 않을 경우, 본인의 양쪽 뺨을 양손으로 때리는 자기 학대 (Self Injurious Behavior)를 하는 학생이었다. 언어, 사회, 인지 능력이 매우 낮았고, 강박 (물건을 쏟고 다시 채워넣는 행위), 자기 자극 행동 (self-stimulatory behavior- 물건을 계속 굴리며 굴러가는 소리를 즐기는 행위), 스티밍 (stimming, 양 손을 계속 흔들거나 박수를 치는 반복적인 행위)이 심각했다.


부모는 앤드류의 호전을 간절히 바랬고, 지속적인 고액 개인 테라피를 받게끔 했고, 거액을 들여 "줄기세포 치료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불법인 줄기세포 제대혈 치료를 위해 합법인 외국에서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앤드류의 상태는 해가 갈수록 악화되었다.


앤드류 역시 카운티의 ABA 코치에게 관리를 받았다. 지난해 옥수수수염 ABA 코치는 결국 1년 만에 학교를 떠나 ABA 테라피 전문기관으로 옮겼다. 이번엔 20년차 베테랑 ABA 코치가 배정되었다.


20년차 베테랑 ABA 코치와 2년차 특수교사 미스리는 무언의 밀당을 했다. 미스리는 더이상 “강조되고 반복적인 소리로 학생을 불안”하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ABA 코치의 강조되고 반복적인 잔소리에 분노했고, 그녀의 조언을 전부 따르지는 않았다.


베테랑 ABA 코치는 늘 앤드류를 사이보그처럼 다뤘다. 다른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를 방해하고는 본인과의 "사이보그 대화"에 집중하게 했다. 방전 직전인 사이보그 앤드류에게 무한 알고리듬을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고, 출력값을 기다렸다. 결과는 방전. 앤드류는 아무 반응을 안했고, 자리에 엎드려 누워 눈을 감기를 반복했다.


사진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photos/child-lying-down-eyes-closed



ABA 테크닉의 장점은 충분히 배우고 싶었고, 가능한 이행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20년차 베테랑이 조언한 보상 방식. 아이가 괜찮은 출력값을 내놓았을 때, 손에 초코렛을 쥐어주는 보상 테크닉은 절대 이행하고 싶지 않았다. 내 학생은 문제견이 아닐 뿐더러, 나는 교사이지 견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학생은 훌륭하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충분히 훌륭하다. 나는 조금 천천히 내 학생과 보폭을 맞춰 가려고 한다. 아이의 시간에 맞춰서.


나는 아이에게 알고리듬을 강제로 입력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속도와 마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을 존중하며 기다린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는 함께 걸어간다. 아이의 시간에 맞춰, 그의 빛나는 가능성을 천천히 함께 펼쳐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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