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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킹: 정글 쇼파 쟁탈전

정글의 법칙: 학급 먹이사슬

by 미스리

마치 보이지 않는 하이힐을 신은듯 늘 까치발 (자폐 스펙트 증상 중 하나로 감각이상으로 인해 특정방식으로 보행하는 습관)로 걷느라 쉽사리 피곤해하는 소피아를 위해, 그리고 다른 학생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집에서 쇼파를 가져왔다.


Jungle.jpg 내 특수학급 실제 교실 풍경

일반학급에서 쓰이는 전형적인 책상, 의자는 우리반 아이들한테는 힘듦을 알기에, 학생들이 편히 앉고 눕기도 하고, 쉴 수 있길 바랐다.


소피아가 너무 좋아했다. 다른 모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쇼파에 누워서 책을 보기도 했고, 블럭들을 바닥에서 쇼파까지 연결하며 “블럭 마운틴”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부터 우리반에 정글의 왕, 라이언킹이 탄생했다.


5학년 라이언킹 소피아가 쇼파쪽으로 걸어오면, 이미 쇼파에서 놀던 저학년 학생들이 슬슬 다른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Social Cue (사회적 신호/눈치)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글의 왕 사자가 나타나면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듯, 보이지 않는 서열에 밀린 저학년 학생들이 “정글의 법칙”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특수교육 학급에서는 보통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받는다. 학생 수가 많을 경우,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누어 여러 개의 특수교육 학급을 운영하기도 한다. 내가 근무한 학교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가 적어, 모든 학년의 학생들이 한 학급에서 함께 수업을 받았다.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쇼파 하나가 학급 내에 작은 정글을 만들었고, 불필요한 라이언킹을 탄생 시켰으며, 암묵적인 hierarchy (서열, 계층)를 형성하고 말았다.

jungle 2.jpg 창문 아래 검정쇼파가 우리반 정글


‘우리반 초원에서 초식과 육식 동물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고민이 하나 늘고 말았다.


너희들 모두가 우리반 정글의 왕이야.
너희들의 독특한 색감들이 우리반 정글숲을
다이나믹하게, 더 무성하게, 더 화창하게 한단다.


정글의 왕들을 위해 "정글확장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 편한 의자와 방석들을 더 들여오기로 했다. 우리 반 정글은 평화로운 초원으로 조금씩, 천천히 확장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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