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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미역을 앗아간 5살 사이보그

폭풍 속 사이보그: 가브리엘과의 생존기

by 미스리

* 학생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띠리리리리리리!”


그 날이 오고 말았다. 엄청난 굉음의 화재 경보 소리가 온 학교를 덮고있다. 내가 속한 카운티의 초등학교는 1달에 1번 화재 대비 소방 훈련 (Fire Drill)을 한다. 물론, 하면 된다. 다함께 줄 지어서 야외로 나가고 지정된 구역에서 5분 가량 대기했다가 교실로 복귀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특수교육 학생들과의 소방 훈련은 그야말로 극기 훈련이다. 내 학생들은 대부분 자폐 스펙트럼 (Autism Spectrum)을 갖고 있고, 청각, 촉각, 후각의 감각에 과민 반응을 보인다. 소음, 특히 화재 경보 소음은 아이들이 여러 문제 행동을 하도록 자극한다.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부수거나, 도주 (미국 특수교육자에서는 Elopement라고 부른다)를 시도하는 등 문제 행동을 보일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특별한 계획과 지도가 필요하다. 또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동 자체를 번거로워하고, 일상에서 벗어난 일정을 따르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학교 측은 특수학급만 따로 미리 공지를 하고, 학생들이 10~15분 전에 야외 안전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내 모든 학생들은 이미 야외로 이동했다. 내 옆에 있는 가브리엘만 빼고.


가브리엘이 복도에서 누워 꼼짝도 하지 않은 채 10분이 지나, 결국 화재 경보음을 피할 수 없었다.


“띠리리리리리리!”



굉음에 놀란 가브리엘이 허공을 한번 주시하더니, 자기 머리를 콘크리트 복도 바닥에 쿵쿵 내리 찍는다. 나는 이미 준비한 베개로 아이의 머리를 막았다. 그는 오른쪽으로 몸을 틀더니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을 찾아서 다시 본인의 머리를 내리 찍는다. 베게를 움직여 그를 제지했다. 그가 또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서 머리를 쿵쿵 찍어대고, 나는 또 제지하길 반복했다. 가브리엘은 앉은 자세로 콤파스가 되어, 큰 원을 그리며 머리를 쿵쿵 내리 찍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평소에도 매우 심각한 자기 학대 (Self Injurious Behavior) 행동을 보이는 학생이기에, 상황은 더욱 긴박했다.


법 규정 상, 특수교육 학생을 질질 끌거나 당기며 물리적으로 제지할 수 없다. 특히, 아이의 팔과 어깨가 탈구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문제 행동이 심한 학생들을 이동시킬 때는 성인 2인 1조로 호위한다.


성인 2명이 학생의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성인의 보폭에 맞춰서 직접 보행하도록 유도하며 보폭을 맞춰 걷게 하면, 아이는 자기 발로 걷게 된다. 이 방법은 특수교육 학생에게 존중과 인격적 대처가 가능한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하필 그 날은 나를 도와줄 다른 1인이 없었다. 특수교육 학생에게 불가피하게 최소한의 신체 접촉은 하되,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신체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주에서 인정하는 PCM (Professional Crisis Management) 혹은 “Mandt System”라고 불리는 자격증 소지자가 시행해야 한다.


가브리엘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초점 없는 눈동자로 머리를 내리 찍으며, 공중에 “오우” 포효한다. 나는 “뿅망치 두더지 게임” 하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의 머리를 베게로 이리저리 막느라 진땀을 흘렸다.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고, 눈 앞이 하얗고 어찌할바를 모르는 찰나, 도와줄 1인이 나타났다. 다른 반 특수교육 교사가 나타나, 우린 2인 1조로 간신히 아주 간신히 아이가 제 발로 걷도록 유도했고, 우린 농구장 안으로 들어왔다.





휴우… 한숨을 돌리는데, 가브리엘이 커다란 눈망울로 내게 양손을 쭈욱 뻗는다. 아이의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 나는 안쓰러웠다.


“I know it’s hard.. But thank you for walking with me.” (힘든거 나도 알아, 그런데 나랑 걸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가브리엘을 번쩍 안고 달래주려는 찰나. 순간… 그가 두 손으로 꽈악 내 머리카락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 양손으로 밭에서 “커다란 무우”를 들어올리듯 쭈욱 당기고 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는데, 순간 “특수교사 머리끄댕이 지침”이 생각났다.


특수교육 학생이 머리 끄댕이를 잡으면 절대 그 손을 떼어내려하지 말라! 그러면 더 꽉 잡느니라. 오히려 아이의 손을 꽉 잡고 주변의 도움을 청해라.


마치 특수교육계의 십계명 중 여덟번째 들어갈만한 진리인듯하다. 난 아이의 손을 꽉 웅켜잡고, “Help”를 연신 외쳐댔다.


다행히 학교 직원 4명이 나타났고, 전래동화 “커다란 무우” 이야기 처럼 커다란 무우를 뽑기 위해 모여든 할머니, 손녀, 멍멍이, 야옹이들이, 웅켜진 아이의 손과 더불어 “무우 씨름”을 10분 가량 하고 말았다.


사진 출처: http://www.applebeebook.com/m/goods/view.php?goodsno=1624


“휴우..” 간신히 풀려났으나…


가브리엘의 손가락 사이로 미역 한 뭇이 찰랑거린다. 그 정도 양을 불리면 미역국 한 솥 나올법한데… 내 미역 머리카락은 그렇게 허무하게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베개로 막고, 손을 잡고, 소리 지르고, 씨름하며 지켜낸 승리였지만, 미스리의 머리는 가벼워졌다.






가브리엘은 Kindergarten 5살 학생이다. 미국은 유치원부터 의무 교육이 시작된다. 가브리엘은 2살때부터 Early Intervention Service (정부가 무상으로 장애 판정을 받은 유아에게 제공하는 홈 서비스)와 3살부터 2년간 Preschool Autism Class (유아 자폐 학급)에서 특수교육을 받아왔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이상 행동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교장이 교직 생활 25년동안 본 최고의 힘든 학생이라고 평가한 정도였다.


가브리엘은 자폐 스펙트럼 중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언어, 사회, 인지, 행동, 일상 생활, 소근육 사용 능력에 큰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그 어떤 놀이와 장난감에 관심을 갖지 않던 가브리엘이 어느 날엔, 공을 훅 던져서 교실 코너에 있던 작은 농구대에 골인하는 모습에 놀랐다.


그 후, 크고 작은 공들이 가득한 바구니를 가브리엘 곁에 두었다. 가끔 무심하게 쑥쑥 잘도 골인을 시켰다. 가브리엘의 아빠는 유명한 프로 미식 축구 선수이고, 엄마는 아마츄어 배구 선수였기에 타고난 공실력에 미소가 지어졌다. 타고난 운동 능력은 가브리엘에게 미묘하지만 분명한 장점을 선물했다. 그의 공 던지기 하나하나에서, 나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가능성과 성취감을 보았다.




가브리엘과 같은 학생들이 주로 받는 테라피가 있다. “응용 행동 분석 (ABA-Applied Behavior Analysis)” 라고 불리는 테라피인데, 주로 자폐 학생들에게 사용된다. 반복과 보상의 방법으로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직접적인 방법으로 가르치는 방법이다. 내가 속한 카운티의 공립학교는 이 방법을 정식으로 사용하고 권면하고, 카운티에서 고용한 ABA 전문가들이 종종 학급에 방문해서 교사들을 지원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참 좋다. 참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실제로 적용되는 순간, 개인의 개별적 특성과 돌발 상황 때문에, 이론과 실제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ABA 방법의 예시:


“Touch your head! Good job! You touched your head!” (네 머리를 만져봐! 잘 했어! 너는 네 머리를 만졌어!) 그리고, 작은 초코렛 하나를 아이에게 준다.


“Find a red sqaure! Good job! You found a red square!” (빨간색 네모를 찾아봐! 잘 했어! 네가 빨간색 네모를 찾았어!)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를 주고 몇분간 놀게 하다가 뺏는다.


“Your turn and my turn! Good job! We’re taking turns!” (내 차례, 네 차례! 잘 했어! 우린 차례대로 놀이하고 있는거야) 그리고, 아이가 놀던 장난감을 뺏어서 내가 5초간 갖고 있다가 다시 돌려주며 칭찬한다.


간접 학습 습득이 힘든 학생들이기에, 이런 직접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시킨다지만, 나는 아직도 이 방법이 불쾌하다. 마치 아이를 사이보그로 만드는 것 같다. 사이보그 로봇 아이에게 알고리듬 명령어를 입력하는 듯해서 불편한 마음이 든다.


ABA Coach가 내 학급에 방문하면, 가브리엘과 밀물/썰물 밀당을 하다가 분노의 쓰나미를 불러 일으키고야 만다. 과열된 사이보그에 알고리듬 명령어를 무한 입력하니, 결국은 터져버린 셈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지식, 정보, 기술의 알고리듬을 입력해야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임무이나, 아이와 충분한 관계를 쌓은 후, 마음을 열고 받아드릴 때를 보고 싶었다. 획일적인 명령어를 준비되지 않은 코드창에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른 후, 출력창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난 괜찮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미역 한 뭇 머리카락 앗아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천천히 기다려볼께, 네 마음이 열릴 때까지!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터질 듯 격한 순간이 있어도, 기다릴 거야. 너의 마음이 열리는 그 순간까지, 천천히, 조용히, 너의 하루를 지키며 지켜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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