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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를 찾아서

특수학급 어항 탈출기

by 미스리
“No! Go Go! I want Ms. Lee!”
("싫어요. 가세요, 나는 미스리를 원해요.")


1학년 일반학급 수학 시간, 캐빈이 버럭 괴성을 지르며 나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다른 선생님이 캐빈의 수학 문제풀이에 관심을 보이며 관여했기 때문이다.


캐빈은 내 특수학급 1학년 학생으로, 주로 나와의 관계에 익숙하고, 공부는 Ms. Lee와만 해야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따라서, 호의를 베푸는 고마운 다른 선생님들을 이렇게 민망하게 만들곤 한다.




캐빈은 자폐 스펙트럼 (Autism Spectrum), 극심한 과잉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ADHD), 그리고 품행장애 (Conduct Disorder)를 가지고 있다. 일반 학급에는 Morning Meeting (아침 학급 미팅), 수학, 기타 행사에만 참석한다. 심한 주의력 결핍으로 지속적인 전략적 도움 (눈맞춤, 질문, 칭찬, 오감 휴식)이 필요하고, 품행 장애로 특별 지도 (그림 규칙, 칭찬, 보상)를 필요로 한다.


캐빈은 쉴새없이 꼼지락거리고 흐물흐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뒤로 콰당 넘어지기도 하고, “오오 우우우, “으아아아아악” 괴성을 내며 수업을 방해하기도 한다. 말하기 언어능력은 좋으나, 상황에 안맞는 멘트/질문으로 주변 사람 당황하게 하기에 사회적 소통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옆 친구를 때리기도 하고, 물건을 부수거나 던지기도 하고, 때론 교실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기에 행동 장애가 매우 심하다. 캐빈의 돌발행동은 무궁무진하다.


Disturbing_the_Peace.png


캐빈과 일반 수업에 참여할때면, 우리 특수학급을 나서면서, 복도를 걸으면서, 일반 학급 문 앞에서, 그리고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 둘만의 은밀한 거래를 해야한다.


“이번 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도서관 앞 어항에서 10분동안 니모를 찾을 수 있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캐빈은 내게 옅은 웃음을 보이며, “니모”라고 속삭였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아주 잠깐이면 되는데, 단 30분만, 아주 기본적인 규칙만 지켜주면, 이 넓은 바다에서 형형색색의 물고기 1학년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텐데. 사회적 기능 저하로 우리 반 특수학급 수조로 다시 돌아가야하는 꼬마 물고기 캐빈이 마냥 안쓰러웠다.


여러 번 좌충우돌 끝에, 오늘 수업은 그럭저럭 성공적이었다.


1학년 일반학급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캐빈의 실제 모습




나는 캐빈에게 엄지척을 보여주며 말한다.


“가자, 니모를 찾으러!


함박웃음을 머금은 꼬마 물고기는 신나게 “작은 지그러미”를 흔들며 니모를 찾으러 달려간다.


그 작은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래, 이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함께 모험을 하는거야. 니모를 찾으러, 저 바다 너머 어딘가에 있을 니모를 찾으러!


그렇게 오늘도 나는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과 함께 작은 모험을 시작한다. 캐빈은 신나게 니모를 찾아 나서며, 그 만의 속도로 큰 바다와 조금씩 연결된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함께 모험을 계속할 것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적과 웃음이, 아이들의 마음 속에, 그리고 내 마음 속에 반짝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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