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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liz Jul 06. 2023

[폴란드]
아우슈비츠가 아닌 오시비엥침으로.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수천 명의 수감자들이 이곳을 통해 장시간의 고된 노동이 기다리는 작업장으로 향했다.

저녁에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수용소로 돌아왔다.

살해된 시체를 들고."


여기는 폴란드 오시비엥침,
더 이상 아우슈비츠가 아닌 오시비엥침으로 불려야 한다.
독일어가 아닌 폴란드어로

자유를 희생당한 그들을 추모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방향으로.

1전시실 1층 입구 오른쪽에 있는 지도


첫 전시관에 들렀을 때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유대인을 강제 이송한 기차들이 출발했던 가장 중요한 지점들이 표시된 유럽 지도이다.


우습게도, 유럽의 정 중앙에 위치하여 강제 이송하기에 가장 ‘효율적’이라고 ‘그들’이 판단한 위치 

바로 이곳 오시비엥침


죽음의 벽- 추모 공간

이 마당 경계벽에서 5천 명 이상이 SS친위대에 의해 무참히 총살당했다.

대체로 정치범 수감자, 독일즉결심판소의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 그리고 11블록 감옥에 수감되었던 수감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1944년 독일군이 허물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복원된 상태이며 현재 이곳은 추모의 공간이 되었다.


그 누구도 쉬이 지나갈 수 없는 이곳은 마치 통곡의 벽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제1 오시비엥침 수용소가 세워진 첫 한 달 동안 수감자들은 바닥, 밀집이나 깔개 위에 밀집해 밤을 보냈다. 

점차 깔개들을 3단 침상으로 대체하였고 이 수용소는 수용 한계를 넘게 되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이론적으로는 수감자 약 700명을 수용하도록 계획된 복층 건물이었지만 실제 수감자 수는 두 배 이상이었다. 수감자 수에 비해 건물 내 위생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용할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시간을 아주 짧게 제한하는 등 수감자들 인권은 유린당하기 일쑤였다.

그들이 숨기려고 했지만 결코 숨길 수 없었던 범죄의 증거들


수감되기 전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이곳 안에 놓아두었다.

그렇게 숨기고자 하였으나, 결국 드러난 진실 앞에 남은 것은 참혹함이었다.


어린아이에서 몸이 불편한 자까지 그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못했던 자유라는 마땅한 권리


만만치 않게 늘어져 있는 수용소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들

내가 방문했던 날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하늘이 너무나도 맑아서 내가 있는 이 공간과의 괴리를 더욱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맑은 하늘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한탄과

그들에게는 이 잠깐의 하늘을 볼 수 있을 만큼의 여유도 없었을 거라는 마음에 깃드는 슬픔.



그리고 도착한 가스실과 화장장

학습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차원에서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사진을 하나하나씩 남겨두었던 나지만

도저히 이 사진을 찍는 것에 집중할 수 없었던 곳이 바로 이곳 가스실이다.


공간 안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감정이란 정말 평상시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것이었다.

그저 슬픔, 아픔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절망, 말할 수 없는 아픔, 죽음 끝에서까지 생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간절함과 절규


그동안 가이드를 통해 엿보았던 그 과거의 이야기를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것으로,

내 온몸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곳에 더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공간 안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나오고서는 정말 숨이 터질 듯 울었더랬다.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이 울음은 나에게도 생경하고, 참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자연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울음을 삼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참을 수 없이 딸꾹질을 해대는 아이의 모습처럼, 꺼억꺼억 쉬이 멈춰지지 않았다.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실제적 '앎'이 주는 충격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과거의 끔찍한 행적. 

100년도 지나지 않은 인간들의 참혹한, 끔찍한 흔적을 마주하자 믿을 수없이 힘들었다.

그 자리에 있었을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을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공간에서 미약하게 느꼈을 뿐인데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그 당시 어떻게 그들은 이것을 경험하고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동안 보고 듣고, 공부해 왔던 것을 모두 새롭게 뒤엎어 버리는 이 공간

그 누구도 감히 예상하고 상상할 수 없었을 아픔이 묻어있는 공간

다시 갈 엄두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꼭 한 번은 가야만 했다고, 잘 다녀온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앞으로 우리가 해나가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억하는 것', '바르게 바라보는 것'

두 번 다시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나도 모르게 방관으로, 무관심으로 일조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판단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겠지.


그러니 이름부터 명확히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아닌 오시비엥침 수용소로,

이렇게 우리가 과거의 이야기를 하나하나씩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길.


추모합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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