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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Being vs. Human-Doing






To-Do List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냉장고에 덕지덕지 붙여진 각종 포스트잇부터 현관문 한가운데에 떡 하니 붙여져 있는 ‘가스불 끄기’ 메모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일들을 잊지 않게 만들어주는 넛징 장치들에 의해 우리는 완전 포위되어 있다. 스마트폰에 장착된 To-Do List 앱에 비하여 이런 포스트잇은 사실 애교에 불과하다. 


때로는, 바쁜 삶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To-Do List를 만드는 것인지, To-Do List를 잘 만들기 위해 바쁜 일정들을 만드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심지어 “To-Do List를 꼭 지키자”가 To-Do List의 단골 목록이 되었을 정도이다.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정신의 반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활동 중독에 빠진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느낌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한 마디로 우리가 human-being이 아니라 human-doing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인간이 human-being이라는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이제 To-Do List 말고 To-Be List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하면서 일상을 채울 것인지를 고민하기 전에,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고루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 되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To-Be List를 만들어 보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되고 싶은 사람, 품고 싶은 마음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보는 이 가을의 To-Be List이다.




[ TO-BE LIST ]


1. 일은 인생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동료들과 우정을 쌓고 일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과와 승진과 인정을 바라지만, 그것의 노예가 되어 성숙과 우정과 배려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2. 내적 세계가 풍성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때로는 낮술에 취한 채 바흐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3. 되고 싶은 모습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엄격히 평가하여 늘 정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4. 삶의 즐거움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감동하고, 저무는 석양에 발걸음을 멈출 줄 알며, 블랙핑크의 노래를 좋아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아이의 춤에 온 정신을 빼앗기는 사람, 때가 되면 좋은 곳으로 가족을 이끌고 여행을 가는 사람, 멋진 전시가 열리면 친구들을 이끌고 미술관으로 가는 사람, 삶의 즐거움을 매 순간 놓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5.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부와 봉사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허물을 가진 존재이지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간다는 점을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급적이면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을 끝까지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


6. 자기만의 ‘단어’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과 세상에게 받은 상처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만만치 않은 유혹에 마음이 흔들릴 때, 자기만의 단어를 꺼내어 힘겹지만 어쨌거나 이겨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겸손’이든 ‘사랑’이든 ‘꿈’이든 ‘평화’이든 ‘행복’이든. 반칙이 가득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7. 도덕적 희열을 뿜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억세게 몰아붙임을 당해도 부드럽게 응대하고, 오해를 받을 때 침묵할 줄 알며, 모욕을 받아도 위엄을 지킬 줄 아는 사람, 그런 와중에도 자기가 할 일이 보이면 “제가 할게요(I’ve got it!)"를 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8. 행복을 전염시키고 불행을 견딜만한 수준으로 낮춰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거친 말들이 오가는 대립의 장면에서도 그가 등장하기만 하면 적이든 아군이든 마음이 놓이는 사람, 기쁠 땐 더 기뻐지고, 슬플 땐 덜 슬퍼지게 하는 사람, 그와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똑똑하게 느껴지고 유머 감각이 남다르다고 착각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9. 영성이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예수를 따르건, 부처를 따르건, 보이는 것 이상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기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자기를 넘어서려고 하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0. 마지막으로, 원하는 성취를 이루었을 때 자신감과 자만심으로 포효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행운이었다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신의 은총에 달려있음을 알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일기를 쓰는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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