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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으로 삶을 바꾼 많은 이들은 왜 이사를 했을까?





2023년 8월 14일 오후 3시. <에버 브라운>이라는 서판교의 한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천장이 높고 테이블 간격이 충분해서 글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빈둥거리는 시간이 반나절을 넘어가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나에게 이만한 장소는 없다. 식구들 중 아무도 글 좀 쓰라며 나를 카페로 내몰지 않았다. 오히려 석 달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을 수도 있었던 터라 만나는 사람들마다 무조건 쉬라고 충고하는 상황이다 보니, 내 게으름은 어쩌면 평생, 적어도 재발 위험이 높다는 향후 일 년 동안은 면죄부를 받은 셈이다. 그런데도 굳이 더치커피 한 잔 시켜놓고 (어차피 마시지 않을 커피다. 심장에 무리가 갈까 봐 요즘은 늘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지만, 오늘은 일반 커피를 시켰기 때문이다)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왜?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나, 그런 생각만으로 선택한 단어와 문장에서 얼마나 싼 티가 나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오직 단어와 문장에만 신경 쓰고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는 거창한 욕망을 한 껍질 벗겨보면, 사실 거기엔 매일 글 쓰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목표가 자리 잡고 있다. 나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건 더 나은 습관을 만들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카페인가? 대학 교수라면 집에서도 글을 쓰는 내공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신지만 나는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공간에 가야만 되는 사람이다. 나는 카페에서 글을 더 잘 쓰고, 교회에서 더 거룩한 사람이 되며, 술집에서 더 사교적인 사람이 된다. 솔직히 내가 고등학교 때 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더 이상 <독서실>을 가지 않기 때문이다. 쉬는 날마다 독서실에 갔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더 훌륭한 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책도 <프레임> <굿라이프> <아주 보통의 행복>에 더해 최소한 한 권 정도는 더 썼을 것이다. 


공간은 결심보다 강하다. 나는 내 마음보다 물리적 장소의 힘을 믿는다. 결심 따위는 필요 없다. 일단 <에버 브라운>에 가면 된다. 거기만 가면, 최소 두세 시간의 글쓰기는 식은 죽 먹기다. 


마음의 힘보다 공간의 힘에 의지해서 삶을 성공적으로 바꾼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가면 새벽부터 쉬지 않고 대 여섯 시간씩 글을 쓴다. 오후에는 수영이나 달리기를 하고, 그 후에는 음악을 즐긴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 하루에 60개씩 피우던 담배를 끊고, 자기가 정한 루틴에 따라 중독에 가까울 정도의 반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시골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는 자연스럽게 사교 모임을 등한시하게 되었는데,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늘 앞선 작품보다 더 나은 신작으로 발표한다면,
독자들은 내가 어떤 식으로 살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마에 겐이치의 말대로 사람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인 공간을 바꿔서, 두 번째 방법인 만나는 사람을 바꿨고, 마침내 세 번째 방법인 시간을 쓰는 방법까지 바꾼 것이다.


독서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대영 박물관 열람실을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아침 9시부터 문 닫는 저녁 7시까지 공부와 집필에 몰두했다. 그가 대한민국 고3처럼 공부할 수 있었던 건 그 열람실 때문이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역시 1842년에 런던을 떠나 <다운 하우스(Down House)>라는 조용한 시골로 이사하여 수도승 같은 삶을 살았고, 그 덕분에 1859년에 마침내 <종의 기원>을 완성하게 된다. 그가 “세상의 끝”이라고 불렀던 조용하고 외진 시골로 이사한 덕분이었다.


찰스 다윈의 <다운 하우스> 출처: English Heritage


심리학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심(心)"의 힘에 대해 이중적이다. 때로는 일반인들보다 심의 힘에 대해 부정적이다. 환경과 사회적 상황의 힘을 중시하는 나 같은 사회심리학자들은 특히나 더 그렇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의지와 결심이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힘을 인정은 하지만, 그 힘이 모두에게 항상 생기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아도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이, 적절한 공간과 적절한 인간관계 속에 있으면 누구나 지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믿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염원을 단 한 번도 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책 제목처럼 우리 모두는 <New Being>을 염원한다. 겉으로는 워라밸을 외치며 필시적으로 웰빙을 추구하고 있지만, 우리의 시선은 웰빙을 넘어 뉴빙을 향하고 있다. 뉴빙은 New Place에 가야 얻어진다. 


매일 이사를 가자. 매일 카페로, 피트니스센터로, 도서관으로, 교회로, 동네 산책로로 가자. 일단 가기만 하면, 우리는 지적으로,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번아웃에 지친 가여운 직장인들이여,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새로운 공간으로 가자.  


There are two places we need to go to often:
the place that heals you &  the place that inspire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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