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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




국내 연간 사망자 수가 30만 명을 돌파했다. 작년에 37만 2,800명이 사망했으니 하루에 약 1,000명이 죽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망자 수가 단기간에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사망자 수는 그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이들 중 천수를 다 누린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죽지 않아도 되는 죽음은 없었을까? 국가나 지자체의 미흡한 대처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 말고, 개인 스스로가 조심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 어느 정도나 될까? 예를 들어, 음주, 흡연, 비만, 약물 중독처럼 개인의 의사 결정의 실패로 인해 순식간에 (예, 음주 운전 사고) 혹은 장기적으로 (예, 심혈관 질환)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연간 사망자의 약 45%!


2008년 미국 듀크 대학 경영학과 교수인 랄프 키니(Ralph Keeney)가 충격적인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개인의 의사결정이 죽음의 가장 주된 원인(Personal decisions are the leading cause of death)”이라는 논문에서, 연간 미국인 사망자(2000년 기준) 약 2백만 명 중, 대략 45%에 해당하는 1백만 명의 죽음은 그 해에 죽지 않아도 되는 조기 사망(premature death)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사망의 대표적인 3대 원인은 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이다. 이 질환들을 유발하는 원인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 흡연과 비만이다. 애초에 담배를 피우기로 선택한 결정, 흡연자가 된 이후에도 금연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결정 등 흡연 중독에 이르는 과정 곳곳에는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관여한다. 비만도 그렇다. 비만에 이르게 되는 선천적인 특성도 존재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많이 먹고, 운동은 게을리하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 역시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결과이다. 


현명하지 못한 개인의 의사 결정 →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 → 질환 및 사고 → 사망


위 논리에 기초하여 계산한 결과가 연간 45%라는 숫자이다이 숫자는 청년기와 중년기 사람들에게는 더 높아진다. 영유아기 사망에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조기 사망 비율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청년기와 중년기 사망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50%를 넘는다. 이 숫자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으나, 메시지 자체는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그렇다면 애초에 우리는 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가?


스트레스 때문이다. 또래 압력, 사회화, 미디어 영향 등등의 이유도 있으나,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의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이 흡연, 음주, 운동하지 않는 것, 인스턴트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기 사망의 근본적인 원인(root cause)은 스트레스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왜 생기는가?


이 역시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하지만, ‘일터’가 주범이다. 일터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야말로 현대인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가장 주된 원인이다.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한 탈진, 상사나 동료와의 인간적 갈등으로 인한 정서적 소진, 공정하지 못한 평가 및 보상으로 인한 울분, 실수에 대한 과도한 질책으로 인한 무기력과 열패감 등 일터는 스트레스 백화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터는 그에 대한 적절한 예방책과 대응책을 충분히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Love people. Use money” 정신을 실현하는 직장보다는 “Love money. Use people” 정신을 완벽하게 실천하는 직장들이 대부분이다. 겨우 해주는 것이라곤 이미 심각한 상태에 이른 사람들을 위한 심리 상담 서비스에 불과하다. 




이러다 죽을 수 있다. 아니 일하다 죽을 수 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 교수의 역작 <Dying for a paycheck>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맞다. 인정한다.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 우리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우리 책임만은 아니다. 회사의 책임이고 조직의 책임이다.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미친 듯이 몰입하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 ESG에만 앞장서는 회사가 아니라 구성원의 웰빙에 앞장서는 회사, ESG 공시 의무만 충실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건강과 행복을 측정해서 주기적으로 발표하고 관리하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 광고비에만 돈을 아끼지 않는 회사가 아니라 구성원 행복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


리더들의 책임이 크다. 


최고 경영자들과 임원들은 한 목소리로 ‘고객 관리’가 그들의 주된 업무라고 말한다. 그런가? 실제로 고객을 관리하는 것은 현장에서 고객을 대하는 구성원들이다. 최고 경영자들과 임원들의 핵심 업무는 고객을 관리하는 그 구성원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김 대리, 이 과장, 정 부장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의 의무이다.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수업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분들에게 맡겨진 최고의 업무가 선생님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신나게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돕는 것이듯,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의 업무도 그렇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Love money. Use People”의 오싹함이 느껴진다. “Love people. Use money”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략과 영업에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구성원의 웰빙에는 인색하다. 컨설팅 회사에 지급하는 비용은 아끼지 않으면서, 구성원 행복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데는 돈을 쓰지 않는다. 구성원을 위해 돈을 쓰더라도 “시혜적” 태도로 쓴다. 


베풀어 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는 회사에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진정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가족을 위해 돈을 쓰듯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돈을 써달라고. 


안 그러면 우리는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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