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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의 기쁨

1등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3등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TV 시트콤의 역사를 바꿔놓았다고 평가받는 <사인펠드(Seinfeld)>는 미국 NBC를 통해 1989년부터 9년간 총 180회 방영되었다. 굵직굵직하고 의미가 가득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지상파 방송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집고 사인펠드는 철저하게 “a show about nothing”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맨해튼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친구 네 명의 이야기에는 배울 만한 게 없다. 메시지는 더더욱 없다. 어설픈 말장난들과 사소한 일상들의 연속일 뿐이다. 그런 사인펠드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TV 시리즈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 의미 없음 때문이다. 거기에는 성공, 권력, 경쟁, 1등의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시껄렁한 일상만이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바로 그 “의미 없음의 의미”에 열광한 것이다.





그랬던 사인펠드가 1998년 뉴욕에서 진행한 한 스탠드업 코미디 쇼에서 아주 교훈적인 말을 한다(사인펠드는 주인공 역을 맡았던 코미디언의 실제 이름이다).


 “내가 만약 올림픽 출전 선수라면, 나는 은메달을 따느니 차라리 꼴찌를 할 겁니다. 금메달을 딴 사람은 당연히 기분이 좋겠죠. 동메달을 딴 사람도 적어도 메달은 땄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은메달은요?
 
모든 루저들 중에 일등일 뿐이에요. 넘버원 루저! (You’re the number one loser!)”


“You are the number one loser!”라는 표현은 2등에 대한 연민을 나타내는 밈(meme)이 되었다. 전설적인 NASCAR 드라이버 데일 언하트(Dale Earnhardt) 역시 “Second place is just first loser.”라는 말로 2등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표현한 바 있다. 




정말로 3등이 더 좋다는 말인가?


올림픽 시상대에서 보이는 수상자들의 얼굴 표정에 근거해서, 동메달 수상자가 은메달 수상자보다 행복했다는 결과를 발표한 연구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 1995년에 발표된 이 연구를 사인펠드가 알고 나서 1998년 쇼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정말로 궁금한 건, "시상식에서의 표정 말고, 실제로 동메달 수상자가 은메달 수상자보다 객관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라는 점이다.


메달의 객관적 가치나 연금 등을 감안해 보면 은메달이 동메달보다 경제적으로 더 가치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순간의 표정에서야 동메달 수상자가 더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겠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는 은메달 수상자가 더 많은 경제적 혜택으로 인해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았던 건 아닐까? 순간의 표정이 삶의 모든 것을 예측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어떻게 3등이 2등보다 나을 수 있을까?


2018년에 발표된 한 경제학 논문에서 이에 대한 답이 일부 발견된다. 이 논문은 1904년부터 1948년까지 치러진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978명의 미국 선수들의 “수명”을 분석했다. 누가 가장 오래 살았을까? 동메달 수상자가 은메달 수상자보다 과연 더 오래 살았을까? 비록 시상식 순간에는 실망의 표정을 많이 지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은메달 수상자들이 객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등에 업고 동메달 수상자보다 오래 살지 않았을까? 


분석 결과, 은메달 수상자들의 평균 수명이 가장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메달과 동메달 수상자들 사이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동메달 수상자들이 실제로도 은메달 수상자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누린 것이다. 물론, 오래 사는 것 하나 만으로 삶의 질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가 건강의 중요한 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1등만이 기억되는 세상


1등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3등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1등 하면 당연히 좋지만 3등도 아주 좋다. 오래 살 수 있다지 않은가.


인스타그램에 좋아요가 폭발적으로 눌러지지 않아도 괜찮다. 모임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멋있으며, 가장 성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모두가 주연으로 살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조연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비교의 대상이 내 친구에서 전 세계 사람으로 확대된 세상에서 1등을 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셀럽의 삶을 똑같이 살아가는 것도 어렵다. 모두가 유니콘 기업의 창업주가 될 수는 없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도전에 가슴 설레기도 하지만, 대체 가능한 존재로 사는 것도 좋다. 하루키처럼 “소설가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겠어요?”라는 태도로 모든 주제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않고 사는 것도 아주 좋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눈을 돌려 주변에 집중하는 것도 아주 좋은 삶이다. 글로벌도 좋지만 로컬도 좋지 않던가. 남들과만 비교하지 말고, 과거의 나랑도 비교해서 제법 좋아지고 있다는 기쁨을 누려봄은 어떤가? 



3등의 기쁨은
누려본 자들만이 아는 천국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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