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은 시선 끝에 하나의 소실점이 있는 공간 1점 투시로 봅니다.
그 공간 안에 사물 1점 투시도와 2점, 3점 투시도가 있습니다.
건물 안에 공간이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공간이 있습니다.
즉 사물이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이는 사물 투시도입니다.
'사물 1점 투시도'는 '1개의 소실점'을 가진 '사물 또는 사물이 형성한 공간'입니다.
2점 투시도는 수평면 지상의 사물을 보고, 3점 투시도는 위-아래의 사물을 봅니다.
즉, 1점 투시도는 공간, 2점 투시도는 풍경, 3점 투시도는 사물을 보는 것이 위주입니다.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실험[1415]
'성 요한 세례당 정면이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그 '건물 그림'의 중심에는 작은 구멍을 뚫었습니다.
관찰자[브루넬레스키]는 세례당 건물 앞에 서서, 오른손으로 '그림의 앞면이 세례당 건물을 향하도록' 들었고, 왼손으로는 '그림의 앞면이 비치도록 그림 앞에 거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림 뒷면의 구멍을 통해 거울에 비친 세례당 그림을 보면서 '실제 건물과 그림의 비례'가 맞도록 위치를 조정합니다.
브루넬레스키는 1415년, 그 실험을 통해 ‘관찰자의 위치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물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것과 그 끝에 사물의 형상이 사라지는 ‘소실점[Vanishing Point]이 있다'는 것과 '소실점을 향해 작아지는 비율의 '원근 실선’을 확인했습니다. 또 ‘소실점의 높이’가 ‘지평선의 높이’이며 관찰자의 ‘눈높이’와도 같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 실험으로 관찰자의 눈이 보는 ‘1점 투시도의 기하학적 체계'가 정립되었고, 이를 '브루넬레스키의 선 원근법'으로 구별합니다. 13년 후 1428년, ‘선 원근법’을 익힌 ‘마사초’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에 ‘성삼위일체’를 그렸습니다.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법학자, 수학자, 작가, 화가, 건축가 등, 1404- 1472]가 브루넬레스키의 선 원근법을 그의 저서 ‘회화론’에 담았습니다.
그는 ‘시각 피라미드’로 ‘선 원근법’을 설명하는데, ‘수많은 시선이 눈에서 나와 공기나 유리 같은 투명체는 그냥 지나가고, 불투명 물체에 닿으면, 그 물체의 각 위치에 안착되면서 눈은 그 형상을 인식한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사람의 눈에는 ‘경계광선’, ‘중앙광선’, ‘중심광선’ 세 주요 시각 광선이 있다고 합니다. ‘경계광선’은 사물 형상의 가장자리에 붙어 전체 형태를 보고, ‘중앙광선’은 경계광선 안쪽에 있어서 색채를 인식하고, ‘중심광선’은 시선의 중심에 있어서 사물의 가장 가까운 부위를 인식한다고 설명합니다.
또 ‘다 빈치’가 창시한 ‘대기 원근법[Sfumato]’과 관련된 언급도 있는데, ‘거리가 멀어질수록 눈에서 나온 광선이 힘을 잃어 사물을 보는 선명도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의 '회화론' 기록과 출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 말할 필요 없는데, 만약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의 업적이 그들의 제자들에게만 전해 졌다면 원근법에 대한 폭넓은 연구는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마사초는 '성삼위일체' 벽화를 완성한 지 얼마 안 되어 독살당했는데, 사람의 생명이 유한하다 보니 '사제 관계를 통한 전승'은 확산력도 약하고, 생명력도 길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돌아보게 되는 것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와 인쇄술 발명'이 인류 문명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피렌체 르네상스 미술사 연대표
조반니 데 메디치[1360-1429]
-브루넬레스키 [1377-1446]
-기베르티 [1378-1455]
-도나텔로 [1386-1466]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
-마사초 [1401-1428]
-알베르티 [1404-1455]
-베노초 고촐리 [1420-1497]
-보티첼리 [1455-1510]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
-기를란다요 [1449-1494]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미켈란젤로 [1475-1564]
[메디치 가문은 더욱 많은 대가들을 양성했지만, 여기서는 관련 인물들만 선별했습니다.]
14세기 말엽부터 16세기 초에 이르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르네상스 부흥기'는 ‘메디치 가문’의 ‘자금’과 ‘문예 부흥 정신’의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조반니가 확보한 자금에 그의 아들 코시모가 가졌던 문예 부흥정신이 더해져 세워진 플라톤 아카데미,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에 수많은 책들이 수집되었고 세기의 천재들이 그 책들을 잃었습니다. '피렌체 르네상스'를 주도한 그들은 메디치 가문의 경제적-문화적 지원으로 자신들의 재능과 영감을 마음껏 발휘했고, 그들이 일군 업적들은 서구의 미술에만이 아니라 문학, 철학, 신학, 과학, 정치, 사회 모든 분야의 기초석이 되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미술 관련 인물들'만 연대별로 정리했는데, 그 인물들의 흐름을 읽어 보는 것은 역사적 단순 지식의 차원을 넘어 '개인의 삶'과 '문명의 근원'에 대한 통찰을 가지게 합니다.
'고촐리'가 그린 이 그림에는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중심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로렌초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활동했습니다.
'공기를 그리다'
지난 언급을 다시 돌아보면, 1415년,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실험’ 13년 후, 1428년에 마사초의 ‘성삼위일체’가 완성되었고, 이후 미술가들에게 '브루넬레스키의 선 원근법'은 필수 소양이 되어 다양한 연구와 시도들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평면회화에서 넘기 어려웠던 벽이 있었는데, 그것은 '선 원근법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즉 크기 조절로 '원근감'은 표현할 수 있지만, '공간감 표현을 위한 체계'는 없었던 것입니다. 한 예로 '메디치 가문을 그린 고촐리의 작품'을 보면, 거리에 따라 인물과 풍경의 크기 조절이 되어 '원근감'은 있습니다. 그러나 근경, 중경, 원경의 풍경 그리고 멀리 있는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모두 동일한 선명도로 그려져 작품 전체에서 '입체감과 공간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곧 '평면적인 작품성의 한계'였습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당시 평면미술은 퀄리티 높은 만화 같은 느낌이었고, 그에 대해 많은 화가들의 고민과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사초 이후 80여 년이 지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가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창안하면서 '모나 리자[Mona Lisa, 1503-17]'가 완성되었습니다. 즉 원근 표현이 된 평면에 '공간감'까지 그려낼 수 있는 미술 기법, '대기 원근법[공기 원근법, 색채 원근법]'이 체계를 잡은 것입니다.
그가 모나 리자를 그리기 전, '공기를 그리겠다'는 허황된 말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실없는 인물로 보이기도 했는데, 근 20년 후 '모나 리자'를 관중과 다른 화가들이 보면서 받은 충격은 다 빈치를 미술 세계 거성의 반열에 올렸고, 모나 리자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유일무이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가 됩니다.
스푸마토 기법
'스푸마토 기법'이란, 간단히 말해 '멀어질수록 흐리게 그리는 기법'입니다. 즉 스케치된 형태를 일일이 정확하게 채색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가 멀어질수록 칠한 물감을 뭉개면서 외곽선의 선명도를 약화시키는 단순한 기법입니다.
다 빈치는 또한, 멀어지는 거리에 따라 '색조의 변화'를 주었고, 그래서 대기 원근법의 또 다른 이름이 '색채 원근법'입니다. 그 시도 역시, 당시로서는 일반 고정관념을 깨는 과감한 시도였습니다. 간단한 비교로 말하면, 빨간 사과를 파란색으로 그려 놓고는 모든 사람이 빨간 사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 같은 파격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빨간 사과는 아무리 멀리 놓고 그려도 빨간색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고정관념이었고, 지금도 일반인에게는 당연한 관념입니다.
그러나, '공기층이 두꺼워질수록 '대기 원소들의 밀도'가 높아지고 '빛의 산란이 두터워져' 사물 고유의 색을 변화시킨다'는 원리를 찾아낸 다 빈치는 모나 리자의 배경 풍경에서 근경의 지형은 고유의 '붉은 흙색'으로 그리고 멀어질수록 '푸른 색조의 무채색 계열'로 변화를 주었습니다. 요약하면, '멀어질수록 흐려지고, 색조는 변한다'라는 그 기법체계가 'Sfumato' 즉, '대기 원근법'[Aerial perspective 공기 원근법]이라 하며, 색채 원근법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현대인은 사실주의 회화를 비롯해 사진, 영상 같은 '평면적 공간 이미지'에 익숙해서 '평면에 원근감과 공간감을 구현하는 기법적 발견'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체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치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평면 회화를 처음 접했던 당시의 대중들이 받았던 충격은, 생뚱맞게 비유하자면, 1차 대전의 공중전을 지배한 '붉은 남작 만프레드'가 하늘에서 F-22 스텔스기와 조우한 기분과 같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