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감의 명제는 '멀어질수록 작아진다'
공간감의 명제는 '멀어질수록 흐려진다'
원근감은 '크기 비례'를 조절해서 '거리 차이를 표현'할 때 드러납니다.
공간감은 '선명도'를 조절해 '공기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마사초[Masaccio, 1401-1428]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 힘들 때 '신기하다'라고 하는데, 달리 말하면 '원리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미술사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어왔습니다. 이탈리아 화가 마사초[Masaccio, 1401-1428]가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그린 벽화 ‘성삼위일체 Trinity’ [1425-28]가 그 경우입니다. 이전과 이후의 경계선을 그어버린 그 중요한 작품이 공개되자, 피렌체 시민들은 '벽에 구멍을 뚫은 것이 아닌가' 하며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그 충격은 일반인에게뿐 아니라 당대 미술가들에게도 큰 충격이 되었는데, ‘평면에 공간을 그린다’는 것을 이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곧, '눈이 거리를 인식하는 기하 원리'를 '평면에 적용해서 그림에 원근감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그 원리를 몰랐던 일반인과 미술가들에게는 말 그대로 신기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공개된 지 얼마 안 되어 마사초는 독살당했습니다. 누가 왜 죽였는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의 천재성을 질투한 자들이 죽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남들의 시기를 살만한 어떤 것을 가진다는 것과 그것을 공개한다는 것은, 때론 생명을 내 거는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사초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 작품 아래에는 '죽은 자의 유골'이 그려져 있고, '나의 어제는 그대의 오늘, 그리고 나의 오늘은 그대의 내일'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잊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생명과 죽음의 본질을 찾으라는 촉구가 그의 그림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벽화 '성삼위일체'가 그려진 원리를 체계화 한 사람이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이탈리아 건축가 1377-1446]입니다. 마사초가 아직 미술 공부를 하고 있었을 1415년, 그는 ‘원근법 실험’을 통해 ‘선 원근법’ 즉 ‘1점 투시도’를 창시한 것입니다.
보스코레아레의 파니우스 시니스터의 저택, 1C 경
1428년 이전까지의 평면 회화에서는 거리감이 없는 평면작품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원근감을 시도한 작품에는 ‘소실점이 없는 면 분할법’이 주로 활용되었습니다. 한편, 기원전 1세기 로마 유적 '보스코레아레의 파니우스 시니스터 저택[villa of P. Fannius Synistor at Boscoreale]의 벽화에서 처럼 '1점 투시 소실점'이 사용된 경우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의 평면회화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명맥도 끊어졌기 때문에 당시의 수준 높은 회화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장택단[張擇端], 북송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북송 시대[AD 960-1127] 장택단의 그림에서 '면 분할법'이 사용되었습니다. 그가 사용한 기법을 '사투상법'이라고 하는데, '소실점이 있는 입체 면 분할'이 아닌, '평면 분할'입니다.
먼저, '사각형'을 그리고, 그에 '45º 기울기의 마름모'를 이어 붙여 '프레임'을 만듭니다. 사각형 범위에는' 건물의 정면'을 그리고, 마름모 범위에는 '옆면'을 그리는 기법입니다.
즉, 소실점이 없기 때문에 '멀어질수록 작아지는 크기 변화'가 없어서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는 건물과 사람의 크기'가 같습니다. 말하자면, '평면 분할과 입체 면 분할의 차이', 그리고 '원근법과 면 분할의 연합'이 없는 경우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원근감'이 구현되지 못했고, 당연히 '공간감' 역시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원근법을 몰라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경험으로 보면, 장택단도 '원근법에 대한 기하학적 고민'을 평생토록 했을 것입니다. 그런 열정이 담겨있는 그의 작품들은 원근법을 초월하는 작품성이 있습니다.
암브로지오 로렌체티[1280?-1348], 이탈리아 시에나 공화국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초 100여 년 전, 암브로지오 로렌체티의 작품에서 드디어 소실점이 적용됩니다. 장택단의 그림에는 없는 '소실점을 향하는 기울기'가 '바닥 타일과 벽면에서 시도'된 것입니다. 비록 원근감이 뚜렷하거나 공간감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만, '거리 차이에 따른 크기 변화'를 시도한 것입니다. 아마 로렌체티가 그의 연구와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면, 브루넬레스키의 업적은 지연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말하자면, 면 분할법에 소실점이 더해진 것이 원근법의 기원입니다.
그래서 분명한 것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브루넬레스키라는 천재'가 나타나 선 원근법을 창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술과 기하학이 '건축 영역'에서 함께 이어온 오랜 역사와 지속적인 교류' 그리고 축적된 '지식과 경험'이 만든 것입니다. 미술가들이 건축가를 겸하고 기하학을 숙련해서 건축을 발전시킴과 함께 미술에서는 '선 원근법'이라는 혁신적 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브루넬레스키가 선 원근법을 창시하고 마사초가 그린 최초의 작품이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의 '성삼위일체'입니다. 그의 작품이 있기까지 '원근감을 그리기 위한 미술가들의 끊임없는 노력들이 축적'되었고, 건축가로 겸직하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 미술의 '면 분할법'과 건축의 '소실점 개념'이 하나의 체계로 묶여온 것입니다.
그 체계를 간단히 말하면 '입체 면'과 '형상의 실선 기울기'가 소실점을 향하도록 하는 면 분할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사람 눈이 인식하는 '1점 투시도'입니다. 이후로도 많은 천재들이 투시 원근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서 2점, 3점 투시도, 대기 원근법 등으로 이어집니다.
마솔리노 다 파니칼레[Masolino da Panicale, 1383~1447]
마솔리노는 마사초와 함께 '성령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보이신 두 기적, 곧 앉은뱅이를 온전케 하신 일과, 죽은 욥바의 다비다를 다시 살리신 성경 기사'를 벽화로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1점 투시 구도를 잡은 이가 '마사초'라고 합니다.
멜로조 다 포를리[Melosso da Forli, 1438~1494]
멜로조는 '수평 1점 투시도'를 바꿔 '상향 1점 투시도', 곧 '상향 단축법'을 천정 평면에 적용해 마치 '돔 천장'인 듯 착시를 일으키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브루넬레스키가 지평선상에 있는 소실점을 찾아냈다면 그는 하늘 위에 소실점을 둔 수직 구도의 1점 투시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향 단축법'이 '3점 투시도'의 기원입니다.
상향 구도의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의 걸작 '무덤 속의 예수 그리스도'도 탄생합니다.
피에트로 페루지노 [Pietro Perugino 1450-1523?]
라파엘로의 스승 피에트로는 1482년에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는 그리스도'를 그려 크게 성공했고, 1500년 경에는 이탈리아 최고의 화가라는 찬사도 들었습니다.
단조로운 구도의 1점 투시 공간 안에서 인물과 건축의 크기 비례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