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법 이야기 2nd

by Tony C

원근법 역사


공간 & 사물의 투시도

사람의 눈은 1점 투시로 3차원 세계를 인식합니다. 정면을 향한 시선과 끝에 맺히는 한 소실점이 1점 투시입니다. 그 거리가 가시거리이며 그 안에서 사물의 위치관계에 따라 1점, 2점, 3점 투시도의 변화가 생깁니다.


원근법에는 1,2,3점 그리고 4,5점 투시도가 구별되는데 관찰자 시선 정면의 소실점은 공통적으로 시지각 됩니다. 2개 이상의 소실점이 가시범위 안에 드는 경우는 많이 드뭅니다.

사람의 눈은 최대 3개의 소실점을 지각하기 때문에 공간의 육면체 구조에서 3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3점 투시도 이상은 시지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4,5점 투시도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관찰자의 앞뒤 상하 좌우에 6개 방위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점 투시의 경우 상하 좌우 4개 방위에 소실점을 가지는 '입체 사물 투시'가 됩니다.

5점 투시도는 정면에 사물이 아닌 공간이 있어 4개 방위 소실점에 1개의 정면 소실점이 더해진 '공간 투시'입니다.


'1~5점이란 6개 방위점 중 시지각 되는 소실점의 개 수'입니다.

사물 투시와 공간 투시의 차이는 정면 소실점을 사물이 가리는지 여부인데 관찰자의 정면이 공간이면 '공간 투시'이고 사물이 있으면 '사물 투시'인 겁니다.

그에 따라 활동 공간을 관찰할 때 공간이 건물을 두르고 있는 경우라면 사물 투시이고, 건물들 사이 공간을 멀리까지 본다면 공간 투시입니다. 혹 실내의 경우 벽을 가깝게 보면 사물 투시, 점점 멀리 보게 되면 공간 투시 개념으로 변화되는 것이죠.


간략하면, 사물 1점 투시도는 관찰자 앞에 사물이 있고, 사물의 건너 저편에 소실점이 맺히는 공간 구조입니다.

2점 투시도는 지평선 좌-우 또는 상-하에 2개의 소실점을 가지는 경우입니다.

3점 투시도는 정면 상하 좌우 5개 방위에서 3개의 소실점이 인지되는 경우입니다.

1점 투시도 공간


브루넬레스키 '선 원근법'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실험[1415]

'성 요한 세례당 정면이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그 건물 그림의 중심에는 작은 구멍을 뚫었습니다.

관찰자 브루넬레스키는 세례당 건물 앞에 서서 오른손으로 '그림의 앞면이 세례당 건물을 향하도록' 들었고, 왼손으로는 '그림의 앞면이 비치도록 그림 앞에 거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림 뒷면의 구멍을 통해 거울에 비친 세례당 그림을 보면서 '실제 건물과 그림의 비례'를 맞춰봅니다.


성 요한 세례당 그림과 거울을 들고 그림과 실제 건물의 투시를 맞춰보는 관찰자
그림 뒷면 구멍으로 본 '거울에 비친 그림'과 '실제 건물' 간에 맞춰진 투시


브루넬레스키는 1415년, 이 실험을 통해 '멀어질수록 사물의 크기는 작아진다'는 것과 저 너머에 사물의 크기가 사라지는 '소실점[Vanishing Point]이 있다'는 것과 '소실점을 향해 작아지는 원근 실선의 기하학적 구조를' 정립했습니다. 또 정면 소실점의 높이가 지평선상에 있고 그 높이는 관찰자의 눈높이와 같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실험을 통해 관찰자의 눈이 보는 선 원근법 즉 1점 투시도의 기하학적 체계가 정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3년 후 1428년, 브루넬레스키로부터 선 원근법을 익힌 ‘마사초’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에 ‘성삼위일체’를 완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7년 후,


알베르티 '회화론'[1435]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법학자 수학자 작가 화가 건축가 1404- 1472]는 브루넬레스키의 선 원근법을 1435년, 그의 저서 ‘회화론'에 담았습니다.


그는 ‘시각 피라미드’로 선 원근법을 설명하는데 '수많은 시선이 눈에서 나와 공기나 유리 같은 투명체는 그냥 지나가고, 불투명 물체에 닿으면, 그 물체의 각 위치에 안착되면서 눈은 그 형상을 인식한다'는 기록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경계광선, 중앙광선, 중심광선’ 세 주요 시각 광선이 있다고 합니다. ‘경계광선’은 사물 형상의 가장자리에 붙어 전체 형태를 보고, ‘중앙광선’은 경계광선 안쪽에 있어서 색채를 인식하고, ‘중심광선’은 시선의 중심에 있어서 사물의 가장 가까운 부위 즉 입체감을 인식한다고 설명합니다.

다 빈치의 ‘대기 원근법[Sfumato]’과 관련된 언급도 있는데, ‘거리가 멀어질수록 눈에서 나온 광선이 힘을 잃어 사물을 보는 선명도가 떨어진다’는 설명입니다.


알베르티의 '회화론' 출판이 얼마나 중요한지, 만약 브루넬레스키나 마사초의 업적이 제자들에게만 전해 졌다면 지식 확산이 어려워 원근법을 기반으로 한 폭넓은 연구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마사초는 '성삼위일체' 벽화를 완성한 지 얼마 안 되어 독살당했는데, 사람의 생명이 유한하다 보니 사제 관계를 통한 전승은 확산력도 생명력도 길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인쇄술 발명'이 인류 문명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알베르티의 '시각 피라미드'


메디치 가문이 후원한 천재들

피렌체 르네상스 미술사 연대표

조반니 데 메디치[1360-1429]

-브루넬레스키 [1377-1446]

-기베르티 [1378-1455]

-도나텔로 [1386-1466]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

-마사초 [1401-1428]

-알베르티 [1404-1455]

-베노초 고촐리 [1420-1497]

-보티첼리 [1455-1510]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

-기를란다요 [1449-1494]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미켈란젤로 [1475-1564]

[메디치 가문은 더욱 많은 대가들을 양성했지만, 여기서는 관련 인물들만 선별했습니다.]



14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이르는 피렌체 르네상스 부흥기는 ‘메디치 가의 자금과 문예 부흥 정신’의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조반니가 확보한 자금에 그의 아들 코시모가 가졌던 문예 부흥정신이 더해져 세워진 플라톤 아카데미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에는 수많은 책들이 수집되었는데 유산들은, 1453년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에 멸망당하면서 유입되었으며 고대 로마가 동 서로 분열한 이후 동로마와 아랍세계에서만 보존되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유산이었습니다. 13~14세기의 천재들이 그 유산을 비로소 물려받아 각자의 재능과 영감을 마음껏 발휘했고 미술에만이 아니라 문학, 철학, 신학, 과학, 정치, 사회 모든 분야의 인문학적 초석을 세웠습니다.

여기서는 '미술 관련 인물들'만 연대별로 정리했는데, 그 인물들의 서사적 흐름을 읽어 보는 것은 역사적 단순 지식의 차원을 넘어 '개인의 삶과 문명의 근원'에 대한 통찰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고촐리'가 그린 이 그림에는 메디치 가문의 조시모, 코시모, 로렌초 데 메디치 3대가 중심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베노초 고촐리, '베들레헴으로 가는 동방박사의 행렬' 1459-1461


레오나르도 다 빈치 '스푸마토 기법'

'공기를 그리다'

앞의 언급을 정리하면, 1415년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실험 13년 후 1428년에 마사초의 ‘성삼위일체’가 완성되었고, 7년 후 1435년에 알베르티의 '회화론'이 출판되었습니다. 이후 '선 원근법'은 미술가들에게 필수 소양이 되었고 다양한 연구와 시도들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1400년대 중 후반 조시모의 손자 로렌초 시대는 선원근법의 확산과 더불어 해부학의 문도 조금씩 열렸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활약도 눈부셨습니다. 그런데 한편, 평면회화에서 넘기 어려웠던 벽이 또 있었는데 그것은 '선 원근법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즉 크기 조절로 '원근감'은 표현할 수 있지만 '공간감을 그려 낼 체계'는 없었던 것입니다.

실예로 '메디치 가문을 그린 고촐리의 작품'을 보면, 거리에 따라 인물과 풍경의 크기 조절이 되어 '원근감'은 있습니다. 그러나 근경, 중경, 원경의 풍경 묘사나 멀리 있는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모두 동일한 선명도로 그려져 작품 전체의 '공간감'이 없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곧 성실하게 그린 만화 일러스트 같은 평면 회화의 한계였습니다.


그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가 "모나리자"[Mona Lisa, 1503-17]를 완성하면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창안했습니다. 드디어 '공간감까지 그려낼 대기 원근법[공기 원근법, 색채 원근법]'의 체계가 등장한 겁니다.

모나 리자를 완성하기 전 다 빈치는 '공기를 그리겠다'는 허황된 말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실없는 인물로 보이기도 했다는데, 근 15년 후 사람들은 실없어 보였던 그 의도가 '모나 리자'에서 완벽하게 구현된 것을 보았습니다. 대중이 받은 충격은 다 빈치를 미술계 거성의 반열에 올렸고 모나 리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유일무이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가 됩니다.


여담을 하나 하자면, 다 빈치가 대기원근법으로 모나 리자를 그렸다면 마사초는 선원근법으로 성삼위일체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다 빈치와 모나 리자는 세계가 다 알지만 마사초와 성삼위일체는 왜 아는 사람이 드물까요?이유는 따로 정리해야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 리자' 1503~17

스푸마토 기법

스푸마토 기법을 간단히 말하면 '멀어질수록 흐려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당시 전통은 멀리 있는 풍경이나 대상을 모두 선명하게 그리고 각 형상의 외곽 경계선도 깔끔하게 완성했습니다. 마침내 다 빈치가 '공기층이 두꺼워질수록 대기 성분의 밀도가 높아지고 빛의 산란도 두터워지므로 선명도 및 색상과 채도에 변화가 생긴다는 자연과학 원리를 찾아냈고, 모나 리자의 배경 근경의 땅은 고유의 붉은색으로, 원경은 저채도의 푸른 색조로 채색했습니다. 그리고 멀어질수록 물감을 뭉게 흐려지게 그렸습니다.

다 빈치가 발견한 그 원리는 '멀어질수록 대기의 공기층 두께가 두꺼워지므로 선명도와 색상이 흐려지는 변화가 생긴다'는 겁니다. 때문에 Sfumato는, 멀어질수록 두꺼워지는 공기의 두께를 그리므로 Aerial perspective 대기원근법, 공기원근법 라 번역하고, 멀어질수록 차가운 계열의 저채도로 색변화를 주므로 그 다른 이름은 '색채 원근법'입니다.


시도는 정말 단순하지만 당시로서는 일반 고정관념을 깨는 혁신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빨간 사과는 모두 동일한 색조의 빨간색으로 그리는 게 전통이었지만 다 빈치에 의해 파란색으로 그리게 된 겁니다.

사실 현대인은 사실주의 회화를 비롯해 사진, 영상 같은데 익숙해서 '평면에 원근감과 공간감을 구현하는 기법적 발견'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체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치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평면 회화를 처음 접했던 당시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은, 전통 물리학 앞에 등장한 양자 물리학이 준 충격과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전 01화원근법 이야기 1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