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초림
임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이 땅에 임한 경우는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담으로 시작해서 노아까지', '노아에서부터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의 열 두 아들까지', '모세에서 다윗까지', '다윗에서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까지' 그리고 '성경의 모든 예언자들'은 '직-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면하거나 그분의 역사[works]가 나타날 때 '하나님의 임재'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떠나신 적이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 땅을 창조하신 태초부터 지금까지 항상 자연의 순리가 순환되게 하시며, 인간 역사를 주도하고 계십니다.
즉, 멀리 떠나 있다가 가끔 오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 계시다가 뜻하신 때에 스스로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다만,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가 '육체로 임한 것인지', '영으로 임한 것인지'를 구별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역사하심 [works]이 '순리적인지 인격적인지', '직접적인지 간접적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룩한 육체'로 임하신 경우는 곧, '메시아 언약의 성취'를 위해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 아들의 초림'입니다.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후 AD 90년대 어느 날, 밧모 섬에 유배 중이던 '사도 요한'에게 다시 나타나셨고,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거룩한 영'으로 임하신 경우는 대표적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인데, 성령께서 '그리스도 교회의 주인'으로 좌정하신 것을 가시화한 임재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믿는 모든 성도 각 심령의 중심'에 성령님께서 내재하시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을 지키시고, 양육하시며, 그리스도의 사명에 동참하도록 이끄십니다.
곧, 모든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이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 된 성도가 모여 예배하는 모든 자리'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성삼위의 하나님이시며 이 땅에서 떠나신 적이 없고, 그날에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신 것뿐입니다.
'거룩한 영'의 임재는 다시, '순리적-인격적 동행 또는 개입'의 경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순리적인 경우는, '자연계의 순환과 생명체의 생육' 같이 이 땅에 있는 모든 순리를 조율하는 임재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이 이 땅을 떠나신다'는 경우를 직설하면 '이 땅을 버린다'는 뜻이 되고, 그 경우는 곧, '세계질서가 붕괴하고 생명의 순환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즉, 온 세계와 모든 생명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에 의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경우는, 한 개인 또는 민족 중에 그의 삶과 역사[history]에 '동행하고, 개입하는 임재'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말하자면, 그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와 성도는 '성령 하나님의 인격적 동행'과 함께 살아가고 예배하며, '그분의 개입'으로 양육되고 성장하며 하나님의 뜻하신 바의 성취에 동참합니다.
그런 '인격적 동행과 개입'은 다시, '간접적인 경우'와 '직접적인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간접적인 경우는,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 크고 작은 일상사에 '동행하시는 임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일들 속에서 '마음의 소리',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을 경험합니다. 늘 있는 익숙한 일이라 대단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직접적인 경우는, '하나님의 개입'을 분명히 알게 되는 경험으로, 자연법칙을 초월하면서까지 '주님의 뜻을 행하시는 임재'입니다. '사람의 뜻'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적 의지, 능력, 노력으로 될 수 없는 기적'이 그 경우입니다.
엘리야, 엘리사를 통해 보이신 기적들이 '그리스도 이전 역사의 예'인데, '멸망으로 치닫는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의 기간을 연장하신 것'이며, 이후 '그리스도께서 보이실 일들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보이신 기사들은 '그분 역사[His story]의 예'로 '메시아 구원의 성취'를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역사에서 '성령 강림' 후에는,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바울' 그 외에도 여러 제자들에 의해 많은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일들은 '초대 교회의 수립'을 위한 성령님의 역사[works]였습니다.
그런 기사들은 인간의 바램, 의지, 믿음 같은 것들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성도가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주신 초자연적 능력도 아닙니다. 주님의 역사에서 보이신 예처럼, 주님께서 세우신 사역자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을 향해 '여기서 저리로 옮겨 가라.' 하면 '그리될 것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틀렸냐 라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누가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산을 옮기십시오. 그러면 당신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고 인정하겠습니다.'입니다.
즉, 주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와 다를 바 없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제자들이 누구냐 하면, '태풍을 잠잠케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악한 귀신을 내어 쫒는 주님의 능력을 옆에서 직접 경험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가르치신 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곧 '그리스도와 하나 된 자의 믿음'은 주님의 뜻 안에서 온 땅을 새롭게 할 수도 있는 권능입니다. 또한 그 능력은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죽음'이라는 속박 아래에 있는 사람의 연약한 믿음은 '그 완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고 있습니다. '주께서 그 사망아래 있는 한계를 넘겨주지 않는 이상, 또는 '하나님 뜻의 성취를 위해 직접 개입'하시지 않는 이상은, '독단적인 사람의 믿음과 뜻만으로는 그와 같은 기사를 행할 수 없습니다.'
한편, '악한 영'은 그런 흉내를 잘 내고 있습니다.
부연으로 거듭 언급할 것은, '교회 수립'같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성령님께서 '그 같은 기적'을 딱히 보이지는 않으시며, 또한 '기독 신앙'에 있어서도 사람이 보고 놀라는 그 충격의 크기만큼의 대단한 비중은 없습니다. '성도의 믿음'은 '초자연적 경험'에 있지 않고, 오리려 '주께 순종하고, 성도와 교제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속에서 훨씬 성숙한 믿음의 성장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팎의 대적자들'이 성령님의 역사[works]를 비슷하게 흉내를 내면서 사람을 놀라게 하고, 때론 감동까지 주는데,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성도의 신앙을 비틀어버립니다.
일례로, '방언'이 정말 '성령의 은사'인지 아니면, '거짓의 아비가 속이는 훼방'인지는 '본인이 직접 다시 한번 주께 물어보고, 또 경각심을 가지고 '기록된 말씀'을 살피며 그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찾아보면서 그 답을 스스로 얻어야 합니다.'
때문에, 일상에서 보는 놀라운 일들 가운데 대부분은 '거짓 기적'이라고 볼 수 있고, 그것을 분별하는 데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구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는다면 성령님께서 뜻하신 바가 따로 있지 않고서는 대체로 잠잠하실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신 겁니다. 그 말씀에서, 삶의 필요를 채우는 요청은 작은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혹, 누구든지 그가 보기에 '한 교회의 부흥'이 '초대 교회의 수립과 동일한 비중'을 가진다 생각된다면, 성령님께서 '재림 언약'을 위한 사명 곧,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부흥시키라는 사명'이 아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사명을 주셨고, '성령님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라'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영이셨던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완전한 육신'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태초에 지정하신 그때에 이 땅에 오신 것을 '그리스도의 초림'이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대제사장'이시며,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영원한 왕'이신 '메시아'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옛 뱀에게 예언하셨던 그 '여자의 후손'입니다.
'죄 없으신 그분의 육체'를 '대속 제물'로 드려 '원죄뿐만 아니라 이후 저지른 사람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는 '메시아 언약의 성취'가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짐승의 피'로는 '아담의 원죄'를 영원히 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가장 중요한 그 성취'가 믿는 성도에게는 '영원한 생명'이고, 거절한 자에게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그 성취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으며, 사흘 동안이나 무덤에 계셨으며,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이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 육체의 완전함이 어떠한지를' 보이시며,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당신을 지목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완성'과 '최종 심판'을 위해 '다시 오실 것이라는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날에 주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고, 오순절에 '보혜사 주님의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 새 언약은, '거짓의 아비 옛 뱀'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거짓 선지자'와 '모든 대적자들'에게 행하실 '영원한 사망의 심판'을 위해 주신 약속입니다. 즉, '심판주'로 다시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자를 그 어린양의 심판에 동참시키기 위해 성도의 부활 곧, '첫째 부활'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첫 부활'에 참예한 자들은 '새 몸'을 입고 다시는 죽음 앞에 굴복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 '영원한 생명'에 있는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어린양의 심판에 동참하며, '악과 사망'에 대한 최종 승리를 이룰 것입니다. 그 '새 언약의 성취'가 '메시아의 영생 구원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