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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Nov 02. 2023

험난한 출국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데스크로 뛰어가니 여직원이 계속 핸드폰을 누르고 있었다. 

“공안 담당자는 안된다는데요?” 

“그럼 어떡합니까?” 

 ”잠시만요.. 담당자는 안된다고 하는데 팀장한테 한번 더 물어본대요?” 

금쪽같은 5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통째로 파먹고 남은 수박처럼 내 얼마 남지 않은 출국시간도 그렇게 텅 비어 가고 있었다. 

다시 여직원은 “팀장은 지금 자리에 없는데요, 공안 담당자가 들어와도 된데요”

“네, 그래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직원은 “그런데 공안이 지금은 된다고 하는데 도착하면 또 어떻게 나올지 저희도 그건 모릅니다”

“네, 뭐라고요?”

나도 순간적으로 종종 듣던 말이 떠올랐다. 중국이란 나라가 애당초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금방까지 안 된다고 하다가 되기도 하고, 된다고 했다가도 어느새 안 된다고 하는 그런 나라. 화가 치밀어 오르고, 혈압이 상승하고 있는데 여직원이 말했다.

“저희들은 손님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손님이 탑승하신다고 하면 수속을 해 드리고요. 그런데 지금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순간 아내를 향해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시 비자 받아 편안게 나갈까?”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결정을 내렸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수는 없다. 비장한 목소리로 

"탑승하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갑자기 바빠졌다. 공항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기내용 가방을 여섯 개나 준비했는지 나 원 참. 일단 남자직원 한 명이 가방 두 개를 가지고 앞서 뛰어가고 나와 큰 놈도 각각 가방 두 개씩을 둘러메고 출국심사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10여분. 계속 KE858기 탑승을 재촉하는 안내 방송이 귓가를 때렸다. 우리 둘이 얼른 탑승하라는 재촉이었다. 

그러나 출국심사장에서 또 브레이크가 걸렸다. 여권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여권. 신여권과 구여권을 동시에 내밀며 방금  한 시간 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3초 동안 설명했다. 연신 비행기 탑승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그렇지만 그 직원은 무덤덤했다. 이번에도 신여권에 비자가 없으니 일단 심사과로 가서 자세하게 확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더 이상 긴박하게 따지는 것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곧장 심사과로 들어갔다, 심사과 직원은 대뜸 두 개의 여권을 전산시스템으로 확인해 보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아직 분실등록이 안되었고, 둘 다 정상이란다.. 그러면서 구 여권에 출국심사인을 날인했다. 

"이 여권으로 쿤밍에 도착했는데 그 사이에 분실등록이 되면 어떻게 하느냐, 강제퇴거되는 거 아니냐”라고 물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잽싸게 심사과를 나와 출국검사대를 통과하려는데 또다른 직원이      

 "이건 100미리 이상 액체여서 안 되는데요.”하며 샴푸하나를 꺼냈다.

'예. 니 맘대로 하세요. 난 시간이 없어요, 비행기를 타야 된다니까요,제발 저를 막지 마세요'라고 맘속으로 대답하고 100미터 달리기 마지막 스퍼트를 하듯 사납게, 맹렬히 달리는데 큰 놈이 지쳤는지 뛰질 못했다. 빨리 뛰라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마음에 생채기만 가득 남긴 채 그 무언(無言)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입에 거품을 물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 2분 전이었다. 자리를 찾아 가는데 면접관처럼 몇몇 사람들이 나와 아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제 다섯 시간의 비행이다. 설마 중간에 내리지는 않겠지? 다섯 시간 후 쿤밍공항에서 과연 나는 강제퇴거를 당할 것인가, 아니면 무사히 통과할 것인가. 잠시 공안의 험상궂은 얼굴에 내 앞에 그려졌다. 

아들에게 미안했다. 아빠와 엄마의 자작극도 아니고. 작은 아들놈까지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면 탑승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뛰어야 했으니까. 저녁 기내 식사를 하고 나니 밖은 온통 깜깜했다, 방금 전의 그 처절함도 어디론가 외출 중. 갑자기 비행기가 움찔했다 이제 10분 후면 쿤밍 공항이다. 오는 내내 몇 번이나 남자 승무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학고 쿤밍대한항공 직원에게 연락해 볼 것을 부탁했다. 중국 공안에서는 비자 없는 한국인 승객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쿤밍공항에 도착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직원 역시 심사과 직원 말처럼 이미 출국수속이 이루어졌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출국심사를 무사히 받고 탑승한 이상 현지에서 문제 된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심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드디어 쿤밍공항. 긴장된 눈빛으로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한 사람 한 사람 통과할 때마다, 내 순서가 다가올수록 자꾸 뒷걸음쳐지는 나의 소심함. 이윽고 내 앞에 한 사람. 고개를 빼어 들고 중국 직원이 어떻게 심사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전산시스템에 넣어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5시간 비행 사이에 전산에 분실등록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먼저 아들놈이 심사를 받고 통과를 했다. 독일병정처럼 높은 곳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공안들의 눈빛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툭 여권을 내밀었다.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선고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서 있는데 여권을 돌려주는 그 직원, 유창한 발음으로 "씨에씨에"로 화답을 하고 심사장을 통과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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