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비판과 비난을 잘 혼동하여 쓰고, 비난을 비판으로 정당화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비판이란, 비교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고 판단하는 것.
예로 들자면, A가 B를 때렸다. 왜 때렸는지에 대해 이유를 알고, 다음부터는 하지 않도록 교정하며, 어떤 식으로 변해야 할지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판단하는 것이 비판이다.
: A가 B를 때렸다. B는 A에게 금품을 요구했고, A는 그에 응하지 않은 채 순간적으로 B를 때리게 된 것이다. A는 요구에 응하지 않기 위해서는 B와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그 즉시 경찰을 불러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먼저 폭력을 휘두른 건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B의 터무니없는 금품 요구 또한 잘못이다. 그러니 서로 사과하고 합의하여 더는 싸우지 않고 폭력없이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비난이란, 남의 허물(잘못)을 끄집어내어 헐뜯는 것을 말한다.
A가 B를 때렸다는 예시에서는 A가 어떤 이유로 B를 때렸다는 건 보려고 하지 않은 채로 A가 B를 때렸으니 무조건적으로 헐뜯고 공격하는 것이다.
아이돌 덕질을 하며 많이 봐온 일들이 있다. 사건, 사고, 논란, 범죄가 일어났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날이 서 있고, '너 한 번 잘 걸렸다'는 식으로 비판이라는 말을 내세운 비난과 조롱, 폭언, 욕설, 희롱만이 가득하다.
물론 그 사람이 잘못한 거라면, 죄를 지었다는 것일 거다. 그건 누가 봐도 잘못한 일이 맞다.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한 개인의 인격을 파괴할 만큼의 권리는 갖고 있지 않다.
지옥에서 온 악마 판사라는 드라마가 있었지만, 우리가 판사는 아니므로 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잘못했다는 기사가 올라온 그 순간이면 악마가 되어 한 사람을 사냥하고 만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무심코 악마가 된다.
흑집사 Book of Circus의 감상문으로 적었던 그 내용처럼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악마가 되어간다.
덕질할 때면 그 모습이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내가 좋아한 아이돌의 라이브 방송 댓글에 악플러가 찾아와서 갑자기 욕을 한다거나, 멜론이나 벅스 같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의 앨범 또는 음원 댓글에 비하하는 말을 누구보다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머릿속이 더 꽃밭이다.", "버추얼 아이돌이 무슨 아이돌이냐. 꼴에 외모가 안 되니까 AI나 덮어쓰고 하는 거겠지.", "연애나 하지, 뭔 아이돌 하냐.", "더럽혀졌어. 걸레.", "이름이 왜 선호야? 불호겠지.", "10년 전에 이런 가사를 썼다는데 아무리 사과했어도 그게 없어지냐? 여혐했는데. 가사 보니 사람도 죽이겠다. 병크멤!"
지금껏 내가 유튜브, SNS,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등에서 봐온 성희롱, 인격 모독, 무지성 비난의 말들이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내 배신감을 배출하기 위해, 영웅심리, 내가 우월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 하는 말이겠지만 그 말을 보고 들은 한 개인이 모든 걸 고스란히 떠안고 가게 된다.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잘못했든, 진짜 죄를 저질렀든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만큼 우리는 무결하게 잘 살고 있는지, 우리의 세상이 왜 이리도 잔혹해져서 그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야만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흑집사에 대한 감상문을 썼던 건 그저 그때 흑집사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연결된 것에 대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내 일기 중, 누군가를 비난하는 글도 몇몇 있었지만 정말 일기였기에 내 생각과 마음을 적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 또한 나의 오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이전에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누구의 영웅이 아닌, 자신의 악마가 되어 폭력을 정의로운 무기인 양 휘두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과 비난에 대해 잘 구분하고, 서로에게 조심스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누군가를 비난한 내용이 섞인 일기를 모두 내리려고 한다. 그건 그저 누군가에게 다시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