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 생각난다. 여름방학 동안 다니던 여름학교에서 어딘가로 버스를 타고 소풍을 가던 중이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옆에 앉은 친구에게 물었다. 그리고는 내 생각을 두서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어 말을 꺼낸 건 아닌가 싶다.)
“나는 집만 있으면 버스 드라이버가 돼도 좋을 것 같아. 매일 풍경을 보면서 운전하고 이곳저곳 다닐 수도 있고 퇴근하고 집에 가서 가족이랑 시간 보내고... 얼마나 좋아? 집 있으면 어차피 렌트비도 안 내는데 충분히 즐겁게 살 거 같아"
하필 맨 앞자리에 앉아 떠들던 우리의 대화를 들은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가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말했다.
“버스 드라이버로 먹고살기 쉬울 것 같아? 공부 열심히 해서 더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어린아이가 저런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웃기셨을까.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지금의 나는 대학을 나와 직장이 있음에도 나 혼자 먹고살기도 '충분'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초등학생이라고 렌트비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 비용인지 정도는 알았나 보다.
충분히 즐거운 삶은 뭘까? 어떤 걸까? 그저 운전하는 기사 아저씨가 멋있어 보여 그런 말을 한 걸까? 세상에 물들지 않아 물욕이 없던 탓이었을까? 문득 고작 열한 살짜리 꼬맹이던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 왜냐하면 이미 4학년 정도가 된 아이는 사회가 어린아이들에게 큰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걸 수도 없이 들었기에 사람들이 존중하는 직업 정도는 분별을 하는 나이 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동시에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것이 충분히 즐겁게 사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되게 오랫동안 내가 '되고 싶은 것'과 '충분히 즐거운 삶'이란 무엇인지 고찰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가지라는 ‘큰 꿈’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물론 큰 꿈을 갖는 게 안 좋다는 건 아니다. 다만 무엇을 위해 그래야 하는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는 여전히 고찰 중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어른들이 말하던 ‘큰 꿈’은 나에게 오히려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소소한 일상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듯 좀 더 나은 자신과 세상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그래서인지 요즘은 현실에 충실하려 애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나의 즐거운 삶도 명확해져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Sweet Life by Frank Ocean을 들으며 잠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