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가난하다고 돕는게 아니야.
“아, 왜 그래? 인생, 하루 이틀 살아 봤어?”
아이의 말은 차갑게 튀어나왔다.
놀이터 한가운데. 또래 아이가 말문이 막혀 손을 부들부들 떠는 사이 그 아이는 등을 돌렸다.
나는 그 아이가 교문을 지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바람에 날리는 반듯한 머리카락, 하얀 얼굴과 검은 눈썹.
어른처럼 닫힌 표정의 그 아이는 이미 어떤 방어를 완성한 듯 보였다.
‘아이가 참 그림 같네.’
생각하는 나를 뒤돌아 한 번 쓱 쳐다보더니 그대로 교문을 향해 걸어간다. 가방 밑단에서 달랑거리는 네임택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강모하.
모하를 보면 동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은 마치 어린 강아지들 중에 상대 강아지와 놀고 싶은데, 괴롭히듯 공격하는 아이들이 있는게 떠오르게했다. 상대에게 마구 달려들면서 장난을 치는데 본인은 놀아달라는 신호지만, 상대 강아지는 되려 앙 물어버리거나 피한다. 사회성이 부족한 강아지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모하는 친구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몰랐다. 강아지들이 놀고 싶어 하면서도 덤벼드는 그 어색한 모습처럼, 발길질과 장난으로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결국 맞은 친구는 놀라울고 모하는 그렇게 복지실로 유배되어 왔다.
“어머님, 아이가 친구를 발로 찼습니다.”
“그래요?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바빠서요.”
그게 전부였다.
순간, 어떤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았다.
내가 부모라면?
아이가 친구를 때렸다는 것도 걱정되지만, 혹여 다치진 않았을까 먼저 물어봤을 거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모하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조차 궁금해하지 않았다.
“엄마랑 안 살아요.”
모하는 담담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꺼내지 않았다.
감각을 닫아버리는 법을 이미 배운 아이였다. 신경계가 바깥에서 오는 자극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감각이 무뎌지거나 예민해지는데, 보통은 극단적으로 예민해졌다가 역설적으로 무뎌지는 형태가 많다. 모하는 철저히 무뎌지는 쪽을 택한 것 같았다. 누구나 등 뒤에서 폭탄이 떨어지면 소리를 듣지 못한다.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굉음이 들리지만, 정작 눈앞에서 폭발이 일어난 당사자는 귀가 멀어버리는 것처럼 신체가 살아남기 위해 감각을 닫아버리는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모하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태로 이미 익숙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선생님, 결혼해요?”
다음 달에 한다고 하자 모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 마요. 어차피 오래 못 갈 거예요.”
그 말은 분노도 체념도 아니었다. 그저 반복된 경험이 만든 통계였다.
모하의 세계에서 가족은 그리 오래 머무는 구조가 아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분노(怒)와 슬픔(哀)만이 아니라 기쁨(喜)과 즐거움(樂)도 배우길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아침에 채워지지 않는다.
채우지 못하면 결핍은 대물림된다.
이른 연애, 이른 파괴, 익숙한 무감각.
감정은 학습되고 삶으로 이어진다.
나는 모하가 이 반복된 흐름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그렇게 살아가기엔 이 작은 아이가 내게는 너무 아까웠다.
"여기는 무허가 주택 가래요."
누가 너한테 그런 이야기했니?
"택배 아저씨가요. 우리 집 벽에 낙서하길래 하지 말라고 했더니, 이렇게 표시 안 하면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어요."
모하가 사는 곳은 주택이라 부르기 애매하고 판잣집이라 부르기도 갸웃거려지는 곳이었다. 시멘트와 돌로 얼기설기 만든 엉성한 배관과 낮인데도 어두운 실내, 정말로 벽 아무 데나 대충 박아 넣은듯한 수도꼭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샘, 우리 집 장난 아니죠? 샘이 처음 와본 거예요. 여기 벙커 같죠?”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근데 모하야 진짜 그렇긴 한데 나름 괜찮아. 배트맨 벙커같아"
아이의 눈동자가 멈췄다.
"샘이 항상 내 발차기 배트맨처럼 세다고 자제하라 했잖아요. 그럼 나는 배트맨이고 우리 집은 배트맨 지하 벙커 같은 거다. 그렇죠?"
나는 모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맞아. 근데 너 배트맨 엄청 부자인 설정인거 알고 있어?
갠 돈도 많고, 힘도 세고, 멋있는 건 혼자 다해.
"알아요."
근데 모하야, 배트맨 혼자 세상을 구했을까?
"배트맨도 힘들 때마다 우리가 집사라고하는 알프레드 아저씨가 도와줬고, 로빈이랑도 함께했어. 혼자 다 해 먹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배트맨도 도움을 받았던 거야. 배트맨도 혼자 싸우지 않았어.”
모하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니까, 부자인 배트맨도 도움이 필요했어. 아무리 강해 보여도 세상엔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있거든.
강한 사람은 도움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여? 배트맨이 도움을 받기 때문에 강해지는 건지를 생각해 봐."
아이는 가만히 손톱 끝을 만지작거렸다.
곧이어, 모하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파란색 비닐봉지를 끌고 나왔다. 교회나 복지센터에서 나눠주는 구호물품을 담는 커다랗고 퍼런 비닐봉지들이었다.
"그게 뭐야?"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거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희 아빠는 도움이 필요하고, 저는 옷장이 필요해요."
순간 뒷덜미가 쪼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보여준 구호물품 봉투 속엔 정리되지 않은 옷들이 가득했다.
매일 그 봉투를 뒤져 등교할 옷을 고를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하는 어른이 아닌 아이였지만 이미 가난의 구조를 직감하고 있었다.
도움은 불쌍한 사람에게만 가는 시혜가 아니다.
진짜 돌봄은 구조 요청을 보내는 신호를 알아보는 능력이다.
모하처럼 웃고 있지만 감정을 눌러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괜찮아. 너도 도움 받을 수 있어.”
그 한마디가 어떤 아이에겐 구조선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그랬듯 그 아이가 또 다른 아이를 비출 작은 등불이 된다.
그 등불은 이어진다.
꺼지지 않고.
강한 사람도 때로는 구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마지막으로 도움을 받은 순간을 기억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