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지킨 줄 알았지
"어떤 상황에서도 너의 몸은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아.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 이 세 마디만 기억해."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빛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한다. 편견이라 해도 오지랖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연주는 언제나 반짝이다 못해 빛나 보였다. 내 눈에는 참 뻤다. 하지만 그 빛은 너무 연약해 보여 더욱 내 마음이 불안했다. 그 아이 엄마의 남자친구는 자주 바뀌었다. 그 얼굴들을 교문 밖에서 스칠 때마다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연주를 붙잡고 늘 되뇌었다.
“연주야, 어떤 상황에서도 너의 몸은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아. 실수로라도 손이 닿거나 몸을 보려 한다면, 그게 단 한 번일지라도 주저하지 말고 외쳐야 해.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 이 세 마디만 기억해. 믿을 만한 어른이 없다고 생각되면 곧장 경찰서로 가는 거야.”
연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때는 무슨 뜻인지 다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급박한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꺼내 쓸 언어를 갖는다는 건 회복 탄력성의 뿌리가 된다. 그것은 단순히 지시를 암기한 결과가 아니다. 오랜 시간 누군가 자신을 지켜주려 애쓴 흔적이 마음속에 안전한 자원으로 자리 잡았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여섯 해 동안 연주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해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이가 건성으로 흘려들어도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 혹시라도 위기 순간에 그 말이 아이의 것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연주가 중학생이 되며 친엄마 집으로 돌아갔다. 한동안은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1년 뒤 담당 관리자를 통해 아이가 다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샤워할 때마다 새아빠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고, 잠긴 문까지 따고 들어와 실수였다고 미안하다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고 몸을 훑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연주는 여섯 해 동안 반복해 온 말을 떠올렸다고 했다.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
그리고 곧장 경찰서로 달려갔다.
아이의 당돌한 용기에 나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하지만 친엄마는 “감히 네까짓 게 부모를 신고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잦은 실수라는 말과 함께 새아빠는 억울하다며 드러누웠다. 연주는 죄책감을 안은 채 쫓겨나듯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안타까움으로 한숨이 나올 무렵 동시에 깨달았다. 아이가 위기의 순간에 외쳐낸 “싫어요, 안돼요, 도와주세요”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곁에서 반복해준 목소리가 아이 안에 남아, 마침내 자기 자신을 지켜낸 증거였다. 비록 사회제도가 비껴간 자리에 허술한 틈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 공백 속에서 누군가들이 건넨 말을 붙잡아 자기 안의 힘으로 바꾸어냈다. 연주는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보호받고 지켜질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 세워간 것이다.
다시 만난 연주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근데 저 샘이 알려준 대로 잘 살았어요.”
그 아이는 더 이상 예전의 꼬마가 아니었다. 농담을 던지고, 시집가라며 잔소리를 하고, 시시껄렁한 이모티콘으로 친구처럼 다가왔다. 나는 종종 연주가 “불쌍한 내 인생”이라며 툭 내뱉는 말을 듣기 싫어했다. 그것이 할머니의 한탄을 학습한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말이 포켓몬스터 악당이 허공으로 사라질 때 던지는 대사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언젠가 연주는 이런 말을 남겼다.
“샘은 항상 우리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하지만, 저는 선생님도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은 할머니의 한탄도 아니었다. 친엄마의 불평을 학습한 것도 아닌 아이가 새로 배운 언어였다. 피해자 서사만 반복하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를 돌보는 말도 선뜻 건넬 수 있게 된 것이다. 돌본다 생각했던 아이에게서 내가 오히려 챙김을 받고 있었다.
연주가 빛날 때,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그 빛을 덕지덕지라도 가려주고 싶던 예전과 달랐다. 이제는 마음껏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아이를 지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준비해 온 세월이 이 아이를 강하게 만든 것이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켜줘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연주의 한마디가 내 삶까지 응원하는 힘이 되었다.
내가 사랑해 온 아이들이 결국 나를 사랑해주고 있었다.
부모의 보호를 벗어난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그 아이가 세상을 견디기 위해
당신이 전해줄 수 있는 단 한마디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