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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는 우리랑 절교야

정말 이젠, 이런 일을 그만 보고 싶어요.

by 지훈쌤TV

임용고시에 떨어진 후, 다시 도전하기 전까지 6개월 동안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5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고, 좋은 동학년 선생님들을 만나 짧은 시간이라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이끌고자 했습니다.


학기 초, 모든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며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대부분은 짧은 통화로 마무리되었지만, 한 학부모님과는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 올해 반편성이 되고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K학생과 같은 반이 되었는데, 예전에 그 친구 때문에 우리 H가 힘든 일을 겪었어요. 단짝처럼 붙어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며 H의 뒷담화를 하고 따돌림을 당했거든요. 시간이 흘렀으니 괜찮겠지만, 혹시라도 비슷한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됩니다.”


저는 “잘 지켜보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했습니다.


상담 후 한 달 동안은, K와 H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다니며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며 안심시켜드렸죠.


하지만 며칠 뒤, 그 믿음은 깨졌습니다.


수업 시간, 유난히 조용한 H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었습니다.


"H야, 선생님이 걱정되어서 그러는데, 혹시 무슨 일 있니?"


“아무 일도 아니에요.”


짧게 대답한 뒤, H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종례가 끝나고서야 겨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등교해서 교실에 앉아있는데, K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다가와 절교 쪽지를 꺼내며 말했답니다.


“이제 너는 우리랑 절교야.”


구겨진 종이를 책상 위에 던지곤 자리를 떠났고, H는 그대로 얼어붙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마음속에서 뭔가가 무너졌습니다.

매일 아침 서로에게 좋은 말을 건네자고 다짐했고, 상처 주는 말을 삼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학교폭력 예방교육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그런 일이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순진하게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분노를 누르고, H를 달랜 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다음 날, 임원들을 불러 어제의 일을 확인하고 K를 불렀습니다.


“왜 그런 일을 했니?”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저는 이 일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이야기했고, 부모님께 연락드려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과 상의하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 뒤, 텅 빈 교실에 홀로 앉았습니다.


‘그때 좀 더 세심하게 지켜봤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괜찮다고 말했던 그 전화가 너무 빨랐던 건 아닐까.’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6개월의 기간제 교사 생활은 끝이 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말과 행동을 할 때, 한 번만 더 생각하세요. 내겐 장난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상처일 수 있습니다. 그런 말과 행동이 쌓이면, 누군가의 삶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가 모든 학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매일, 학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이니까요.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그 말을 마음에 담아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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