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 앞에서 우린 하나였다.
어제는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불침번을 서고, 7시에 기상했다.
다행히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 막사 앞에서 점호를 했다.
그리고 일요일.
종교행사가 있는 날이다.
종교행사에 가기 위해 밥을 조금 서둘러 먹고, 일주일 만에 면도를 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어떤 종교행사에 참석할지 고민이 들었다.
나는 현재 무교지만, 어릴 적에는 기독교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멀어졌고, 어머니가 절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가끔 절에도 함께 가곤 했다.
그렇게 나는 두 종교와 나름의 인연을 맺어왔다.
고민하던 중 128번 훈련병이 흥미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불교에 가면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보여준다던데?"
그 한마디에 생활관 동기들은 모두 불교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다른 종교행사와 달리 불교 종교행사는 부대 밖에 있는 절에서 진행됐다.
바깥공기를 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방석에 앉아 스님과 함께 합장을 하고, 처음 듣는 노래를 따라 부를 때는 조금 당황했지만, 스님의 이야기는 의외로 귀에 쏙쏙 들어왔다.
어려운 불교 용어 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주셨다.
오늘의 주제는 '악행이 도를 지나치면 결국 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악행은 사라지지 않으며, 이를 없애는 방법은 선행을 베푸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웃으며 덧붙이셨다.
"미소를 짓는 것도 선행입니다."
군대에서 당장 선행을 실천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스님과 조교들이 초코파이와 콜라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모두가 기대하던 뮤직비디오 시간.
걸스데이의 '기대해'가 재생되자 절은 영화관보다 조용해졌다.
초코파이를 먹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행사가 끝나고 막사로 돌아왔을 때, 더욱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
바깥세상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군대에서는 그 자체로 선물 같은 일이었다.
너무나 행복한 일요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일요일이 돌아왔다.
나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분대장을 맡게 되었고, 분대원들의 실수로 얼차려를 반복해서 받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조교를 꿈꾸는 128번 훈련병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이번 주는 대부분 제식을 반복하며 비교적 수월하게 보냈지만, 다음 주부터는 개인화기 훈련과 주간 행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렵지만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오늘을 잘 보내자고 생각했다.
운 좋게 불침번이 없어서 오랜만에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푹 잘 수 있었다.
불교행사에 갈 생각에 들떠 막사 앞에 모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혈기왕성한 동기 한 명이 조교에게 반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28살인 나도 참고 있는데, 왜 그랬니…'
조교는 화가 단단히 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경고했다.
"지금부터 내가 너의 군생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거야."
순식간에 막사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불교행사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평온했다.
오늘 스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나의 주인은 나'*라는 주제였다.
내 삶의 주인은 결국 나 자신이며,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나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이번 주는 걸그룹 뮤직비디오 대신 싸이의 젠틀맨을 감상했다.
전작인 강남스타일이 워낙 강렬했기에 연속적인 성공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침없이 세상에 도전하는 싸이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 나를 억누르는 세상에 한 방 먹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막사로 복귀했다.
그렇게 평온하게 마무리될 줄 알았던 일요일.
하지만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누군가 몰래 비밀 쪽지를 주고받다가 발각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지옥의 얼차려.
아픈 몸을 주무르며 잠이 들었고, 어느새 3주 차 훈련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