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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를 지나, 나는 중형운전병이 되었다

운전을 잘했는데 왜 1000인분의 밥을 만들어야 하는가?

by 지훈쌤TV Mar 10. 2025

[5주 차]


치열했던 각개전투 훈련을 마친 후, 왕복 30km에 달하는 야간 행군이 이어졌다. 


걷고는 있었지만, 내 다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조교님과 교관님께서 "이제 어려운 훈련은 모두 끝났다."라고 하셨다. 


안심했지만,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다리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3중대는 임시 컨테이너 생활을 마치고 새로 지어진 건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온몸이 뻐근한 상태에서 관물대와 비품을 옮기느라 하루 종일 진이 빠졌다. 


그래도 마지막 주말만 지나면 수료식과 함께 잠깐의 외출이 허락된다. 


보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을 잔뜩 적어 두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외출 당일,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몸을 던졌다. 


치킨과 피자를 먹으며 TV를 보고, 게임도 한 판 했다. 


어머니 핸드폰을 빌려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며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버킷리스트의 10분의 1도 채우지 못한 채 어느새 부대로 복귀할 시간이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복귀하는 길,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이야기 나누었다. 


아버지는 "멀어도 전라남도를 벗어나진 않을 거다."라며 안심시켜 주셨다. 


그 말을 믿고 있었기에 발표 순간까지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나는 경상북도 경산에 위치한 '제2수송교육연대'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전 처음 겪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제2 수송연대]

 

수송교육연대에서는 5주간 운전 교육을 받게 되었다. 


첫날, 소형, 중형, 대형 운전병을 나누는 설문조사가 진행되었다. 


입대 전, 사촌 형이 이 설문조사에 대해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운전 경력 부문에 적는 운전거리가 가장 중요한 항목이야. 애매하게 적으면 오히려 소형으로 가기 어려워. 그냥 0km라고 적어. 그러면 기존에 있던 나쁜 운전 습관을 고칠 필요가 없으니까, 소형으로 가기 쉬울 거야."


형의 조언을 믿고 그대로 적었다. 


하지만 결과는 중형 운전병이었다.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막상 훈련이 시작되자 생각보다 트럭이나 두돈반을 운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걸 느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집중했고,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저녁 갑자기 배식조로 차출되었다.


배식조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아침마다 1시간 일찍 일어나 1,000명 분의 밥을 준비해야 했다. 


특히, 내가 배정된 곳은 2층 식당이었기에 쌀가마니를 계단으로 나르는 일이 반복되었다. 


큰 솥뚜껑에 쌀을 붓고, 물을 채운 후, 두 손을 크게 저어 20번씩 세 차례 씻어야 했다. 


씻은 쌀은 작은 솥 10개에 나누어 담아 불을 올리고, 적절한 시간이 지나면 불을 끄고 배식구로 옮겼다. 


배식이 끝나면 모든 솥을 닦아야 했고, 이 과정이 매일 반복되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미리 식사를 하면서 좋아하는 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주말마다 20분씩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산의 여름은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더위보다 혹독했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힘든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자대 배치 발표일이 다가왔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집과 가까운 곳으로, 아니면 훈련소부터 함께한 동기들과 한 명이라도 같이 가게 되길.' 


하지만 현실은 또다시 내 기대를 저버렸다.


"OOO 교육생, 3 사관학교."


3 사관학교 중형 운전병. 


예상치 못한 곳으로 향하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많은 감정이 얽혀 그날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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