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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운전을 시작하다

아직도 더 떨어질 곳이 남은 걸까요?

by 지훈쌤TV Mar 24. 2025

발가락에 번진 사마귀로 인해 작업열외 판정을 받았다.


운전병으로 복무할 예정이었지만, 당분간은 행정반의 일을 도와야 했다.


대장님의 명령으로 한 달간 행정반을 오가며 문서 정리와 잡무를 도왔다.


동기들은 수송반에 내려가 본격적인 운전병 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선임들은 수시로 “운전병 할 생각은 있냐”며 묻거나 수군거렸다.


그럴 때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체감온도 40도가 넘는 한여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일병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송부에 배치되었다.


차량을 점검하고 청소하는 일은 몸이 고된 일이었지만, 마음만큼은 편했다.

그동안 눈치 보며 있던 시간에 비하면, 땀 흘리는 하루가 훨씬 낫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운전 교육은 계속해서 미뤄졌다.

결국 한 번도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3박 4일 신병위로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그 후 10월이 되어서야 영외 운전 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교육과 함께, 겨울을 대비한 체인 작업도 병행했다.

상자에 든 체인을 꺼내 점검하고 차량에 옮겨 담는 단순 작업의 반복.

지겹고 고된 일이었다.


쉬는 시간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유일한 쉼터인 벤치는 흡연장이었다.

담배 연기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결국 스트레스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가장 후회하는 선택인 흡연을 하게 되었다.


그 주 금요일, 부모님께서 면회외박을 신청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주에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틈틈이 담배를 피우던 나는 부모님의 눈치를 봤다.

내 몸에 밴 담배 냄새를 당연히 알아채셨을 건데, 모르는 척 넘겨주셨다.

불효자의 된 기분을 느끼며 마음이 무거웠다.


‘전역하면 반드시 담배를 끊자.’


그 다짐 하나만 남긴 채, 다시 부대로 돌아왔다.


11월 말, 드디어 운전 교육 테스트를 통과했다.


배차명령서에 처음으로 내 이름이 올라갔다.


첫 임무는 영문 근무자 수송이었다.


1시간 30분마다 3 사관학교를 순회하며 교대를 도왔다.


운전대를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안전 운행"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긴장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동료들로부터 “운전 꽤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 한마디에 며칠간 기분이 좋았다.


그 이후로 병사식당, 보급대, 생도식당 등 여러 곳을 오가며 운전 업무를 맡았다.


그리고 12월 초, 처음으로 영외 운전도 해보았다.


‘이제 운전병답게 성장해가고 있구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던 찰나, 한 통의 소식을 들었다.


“일병 장 OO, 2월까지 OOO에 제설차 운전병으로 파견.”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다.


나의 겨울은 그렇게 혼돈 속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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