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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회에서 Endless는 안돼요

좋아하는 노래라도, 때와 장소를 고려해주세요

by 지훈쌤TV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신 지 어느덧 한 학기가 지나고 있던 때였습니다.


교직원 모두가 조금씩 적응해 가던 그 시점에, 갑작스러운 교육장 인사 발령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학교를 떠나신다는 이야기였죠.


그렇게 송별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잔이 오가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누군가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고, 자연스럽게 차례는 제게로 넘어왔습니다.


문제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평소 노래 듣는 걸 좋아하고, 코인노래방도 자주 갔지만 막상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생각하니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른 한 곡.


대학 시절, 신입생 환영회 때에도 불렀던 바로 그 노래.


그때도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어 놓고 후회했었는데, 이상하게 또 그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후렴 부분만 부르겠습니다.”


잔잔한 박수 소리가 들렸고, 저는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널 사랑해. 눈을 감아도, 단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노래를 부르면서도 묘하게 불안했습니다.

가사 후반, ‘미련 없이 이 세상 떠나갈게. 안녕’이라는 대목에서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송별회 자리에서 부를 노래가 아니었다는 걸요.


노래가 끝나자, 잠깐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교장선생님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고, 옆자리 동료 선생님은 웃음을 참지 못해 제 팔을 툭 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마음속에 단단히 새겼습니다.


송별회 같은 자리에서는, 절대 플라워의 Endless를 부르지 말기로 말이죠.


좋은 노래도, 어울리는 때와 장소가 있다는 걸 그날 확실히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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