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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니 Jan 28. 2024

번외 : 2천만 원이 입금되었다.

뭐지? 이 기분은?

 이제 부모에게 아무런 기대감이 없다. 주기적으로 하는 부동산 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세입자 연락도 버겁고 세금계산서 발행할 때마다 떠오르는 부모도 싫고 무엇보다 더 이상 아무 조건 없이 일해주기 싫었다. 마지막 세금계산서 업무를 위해 아빠의 은행 otp카드 교체 건으로 연락을 했다. 뭉기고 있다가 엄마의 연락말미에 말했다. 어찌어찌 아빠의 은행건은 마무리되었는데 이런 감정 없는 문자도 절연선언한 자식과의 연락이 재개되었다고 생각한 건지 또다시 스멀스멀 연락이 온다.





 아무렇지 않게(아무렇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정제된 말투로) 임대차 업무니 신고니 이런 것들을 묻는 연락이 온다. 모든 문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임대차 계약신고와 투자했던 물건들의 대출연장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본인들 손으로 해본 적이 없으니 신고만 해도 되고 서류만 잘 준비하면 되는 것들이 쉽지 않은가 보다.




  늘 척척해내는 딸이 해주었으니 맘 편히 고마움도 없이 처리했던 일들, 그 과정에서 내가 버겁고 힘들어하면 그것 좀 한다고 티를 팍팍 낸다고 빈정상해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떤 심정이려나. 정말 기본적인 것도 해결하지 못해 전전긍긍 대고 있겠지. 나에 대한 고마움은 없고 속으로 욕해대면서 아쉬워하겠지 라며 불현듯 두 사람의 일그러진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그러던 그때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2천만 원을 입금했고 국세청 일보는 거 20만 원 추가로 보낸다.'라는 문자다. 그러면서 동생의 돈은 대출이 안 나와서 미뤄야 될 것 같다고 한다.  마침 동생과 영상통화 중이었다. 동생에게 "엄마가 돈을 보냈네? 와.. 진짜 돈을 보내네?" 황당함을 넘어선 황망함을 느낀 그날의 내 기분은 어느 때보다 더 별로였다. 돈을 받았는데 기분이 나빴다. 일부였다고 해도 돈을 갚은 건 맞는데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솟구쳤다.




 난 왜 기분이 나쁜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엄마가 돈을 보낸 이유를 너무나 잘 알 거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야말로 똥줄이 타는 거다. '얘가 진짜 부동산 일을 안 해주면 어떡하지? 생각보다 심각한데 어쩌지?' 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돈을 보낸 심정.. 그게 너무 빤히 보여서 참 싫었다. 엄마는 얼마 전까지 빚을 내서라도 돈을 갚겠다고 했고, 며칠 후 대출을 신청했다고도 했다. 자식에게 가져간 15년도 더 된 돈을 갚기 위해 빚을 냈다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당한 사람, 그 사람이 내 엄마고 부모인 걸 난 또 깜빡 했었다.




 사실 정말 기분이 더러웠던 건 그 와중에서 엄마는 두 자식을 차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 쓰임이 있는 자식이라 돈을 갚아야 한다고 여겼던 거, 동생에겐 갚을 마음도 먹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엄마는 나에게 보낸 문자에 동생의 돈은 대출이 안 나와 시간이 걸린다고 했고, 그 얘기를 동생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3일이 지난 지금 동생에게 온 엄마의 연락은 없다


 



 돈을 갚으려면 동생의 돈이 먼저다. 나보다 5~6년은 더 빨리 엄마에게 월급을 갖다 바쳤고, 호주로 떠날 때 결혼을 할 때, 한 푼도 받지 못한 건 동생이었다. 내 부모란 사람은 이 와중에도 머리를 굴려 결국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자식에게 돈을 먼저 갚아버렸다. 아니면 돈 천만 원이라도 각각 돌려주던지 그렇게라도 해서 성의를 보이는 게 맞지. 이왕지사 늦었지만 그렇게라도 하는게 맞다.  부모라는 사람은 둘째 딸을 이렇게 또 투명인간 취급해 버린다.





  자식에게 15년도 더 된 돈을 보낸 그들의 심정을 어떠할까. 고마움? 미안함? 등은 기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까지 해서 돈을 갚았는데 일언반구 없는 딸이 괘씸하고 기가 막힌다 생각하겠지. 나는 지금 어떻게 문자를 할지 고민 중이다. 돈 2천만 원으로 모든 걸 퉁치려고 할 엄마에게 회심의 문자를 남겨 2천만 원은 내가 15년도 더 된 그때 주었던 돈을 받은 거 뿐이라고 명심시켜주고 싶다. 아울러 나에게 갚아야 할 돈이 이게 끝이 아님을 각인시켜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자식을 차별하는 엄마에게 일침을 날리고 싶다. 아직까지 자신에게 쓸모가 있는 자식과 상관없다 여기는 자식을 이렇게 마지막까지 구분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싶다. 이 돈을 받고 나서는 막 써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있다. 누구 좋으라고.. 내 신용대출 빚이 2천만 원이니 바로 갚으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갚아버리고 싶진 않다. 쓰고 싶지도 않고..


통장에 찍20,000,000원이 남의 돈 같다.




 지난 회차로 끝맺음 하려던 "부모에게 사과를 요구해도 될까"를 뜻하지않게 번외편을 남겨 마무리합니다. 부모-자식간의 불편한 얘기를 많이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동안 구독자도 많이 증가하고 조회수도 폭발하고 저에겐 새로운 경험이 가득한 한달이었습니다. 글쓰기의 매력을 하루 하루 더 느껴가면서 저도 점점 즐거운 글쟁이가 되어가는 거 같아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음 연재는 "별거 없는 뚝딱 요리사"라는 제목으로 먹성 좋은 삼남매를 키우면서 뚝딱 해치웠던 요리를 에피소드와 함께 올리려고 합니다. 특별한 레시피도 없고 대단한 메뉴도 아니지만 아이들이 먹으면서 엄지척했던 음식을 모아 구독자분들과 저의 추억을 나누고자 합니다. 심각한 얘기말고 재밌있고 유쾌한 얘기로 돌아올게요. 많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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