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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니 Jan 14. 2024

키워준 값을 요구하는 부모

이젠 내가 요구하고 싶다.

 " 언니, 나 어쩔 때는 소송이라도 하고 싶어. 나한테 모조리 가져간 월급, 내가 장애아 키우면서도 나한테 받아간 돈, 내 결혼식 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거, 다 계산하고 돌려받고 싶어.. 그럴 정도로 용서가 안돼.."  동생의  말이 십분 이해가 간다. 문득문득 차오르는 분노, 곱씹을수록 이해할 수 없는 부모의 지난날은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진다.





 동생은 엄마의 구박과 강압에 못 이겨 도망치듯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한국에서 5년을 벌었는데 호주로 떠날 때 손에 쥔 돈은 불과 300만 원뿐이었다.(갑자기 우리 자매랑 돈 300만 원의 질긴 연결고리가 생각나 어이없는 웃음이 다.)

 



 20살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남은 돈이 300만 원이라니.. 매달 월급을 몽땅 상납하고 부모에게 식비와 차비를 탔던 자식이었으니 수중에 돈이 있을 리 있나. 그걸 알면서도, 딸아이가 외국으로 도망치듯 떠났을 때도 엄마는 일원 한 푼 쥐어주지 않았다. 다만 늘 그렇듯 본인 친정식구들에게 적선해 달라는 듯 딸을 외가에 혼자 보내버렸다. 동생은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홀로 누구도 반기지 않았던 외가를 갔고 외국으로 떠난다는 이유로 용돈을 받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란 사람이 얼마나 계획적이고 치밀한지 소름 끼친다. 본인이 돈을 대주고 싶진 않고 시골에서 양계장을 하시면서 현금을 만지시는 외할머니께 자신의 딸을 인사 삼아 보낼 생각을 하다니.. 앞뒤 계산이 딱딱 맞은 얼마나 세심한 시나리오인지. 엄마라는 사람이 무섭기까지 한다.




 동생은 호주에서 홍콩 유학생인 제부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홍콩에서 함께 살았다. 결혼준비 중 아이가 찾아왔고, 임신 초기에 홍콩에서 결혼을 했다.




 아빠, 엄마. 나, 내 남편까지 홍콩결혼식에 참석했다. 아니, 초대받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남편 쪽에서 우리의 비행기, 숙소 모두를 잡아주었고 우리는 개인경비 말고는 따로 돈을 쓰지 않았다. 부모였으면 아무리 국제결혼일지라도 혼주는 혼주니 뭔가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엄마, 아빠는 그저 혼주석에 앉기 위해 비행기를 탔을 뿐이다. 남이라면 축의금이라도 들고 탔겠지.. 어쩜 무슨 배짱으로 딸의 결혼식을 가면서 몸만 가는 부모가 있을까. 나 역시 부모가 하는 데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뿐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이다.




 결혼식 전날 동생은 홍콩을 처음 찾은 부모를 위해 나름의 관광코스로 우리 가족을 데리고 다녔다. 어이없는 사건을 그날 저녁에 일어났다. 3박 4일의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홍콩 음식이 맞지 않을까 봐, 특히 저녁에 소주 한 병을 반주로 깃들여야만 하는 아빠를 위해 동생은 괜찮은 한국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었다. 나는 저녁에 어차피 한국 음식을 먹는다라는 걸 알고 있어서 점심을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먹자고 했다. 어쩌다 보니 괜찮은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었고 어차피 외국이니 홍콩 맥도널드에서 먹는 것도 나름 소소한 이벤트라고 생각했었다. 여기서부터 잘못됐을까. 10년 전이면 아직 엄마, 아빠는 환갑이 훨씬 되기 전인데 어르신을 모시고 하는 효도여행처럼 잘 짜인 한식 위주로 여행일정이라도 짰어야 됐나보다.






 그때부터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말 많던 양반이 말수도 적어지자 온 가족이 오후 내내 그 사람 눈치를 보았다. 저녁때가 되어 부랴부랴 예약된 식당으로 함께 걸어가는데 꽤 걸었나 보다. 그래봤자 한 20~30분이었을까. 그래, 멀면 멀다고 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해도 우리를 데리고 가는 외국인 사위가 평소에도 도보로 가는 거리였고, 게다가 임신 초기인 내 동생도 별로 힘들지 않게 걸었다. 아빠의 말수는 아예 없어지고 엄마, 나, 남편, 동생 부부까지 눈치를 본다. 게다가 그 자리는 제부의 친구까지 있었다.




 일단 식당에 도착했다. 속으로 이제라도 왔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메뉴는 김치찌개 등을 파는 한국 레스토랑이 맞았다. 엄마가 그때 "소주도 시켜.. 소주 없어? 응?" 라고 물었다. 근데 소주가 없다. 당황하긴 했지만 외국이니까 그럴 수 있었다. 근데 아빠의 눈치를 보던 나도 "아.. 소주가 없구나.."하고 읊조리게 된다. 그때 벼락같은 목소리가 날아온다. "내가 무슨 소주 먹자고 얘기했어?!!!"  얼마나 앙칼지게 자기 아내에게 눈을 부라리면서 얘기를 하는지, 함께 온 제부의 친구가 놀란 토끼눈이 된다. 식사는 나왔고, 외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식 레스토랑인 탓에 김치찌개마저 달달했다.




 아빠라는 사람은 어찌나 틱틱거리면서 밥을 먹는지, 나는 또 나중에 호되게 당할 엄마가 걱정되었다. 그날 저녁 남편과 나는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아빠의 입맛에 맞을 요기거리까지 찾아 아빠에게 갖다바쳤다. 나한테 불쌍함과 연민으로 가스라이팅했던 엄마만 있던 게 아니었다. 본인의 기분에 맞지 않으면 가족들 모두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가는 아빠도 나에게 있었다. 이런 부모밑에서 자라니 나도 나대로 자발적 착한 딸 콤플렉스를 가질 수 밖에 없었나보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그 사람 눈치를 보고 있는 그날은 바로 동생의 결혼식 전날이다. 뱃속에 아이가 있음에도,  내일이 본인 결혼식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성의를 다하고 있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이런 짓까지 벌인다.




하아.. 왜 우리 자매는 이토록 못난 부모에게 길들여지고 자발적 노예를 자청하고 다녔나, 왜 진작 깨닫지 못하고 결국 아프고 말았을까. 우린 여전히 아프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히 난다. 엄마는 홍콩에 가서 쓸돈, 즉 여행경비를 남겨 동생에게 주자고 했다. 동생은 돈 60만 원을 엄마로부터 받았다. 그때의 동생은 그것도 고마워하며 받았다고 했다. 부모로부터 뭘 받아본 적 없는 자식은 부모가 쓰다 남은 몇 푼 안 되는 돈일지라도 그냥 그 자체로 고마웠나 보다. 자식을 키워보니 그냥 퍼주어도 아깝기만 하던데, 내 부모는 주머니 속 쌈짓돈이 그저 아까웠나 보다.




 동생은 한국에서도 결혼식을 올리기를 원했다. 한국에 있는 일가친척, 무엇보다 자신의 지인, 친구들의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좋은 남편을 만났는데 어찌 그러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때 엄마에게 돌아온 대답은 "꼭 한국에서 결혼식을 해야겠니"였다. 동생은 꼭 그러고 싶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머리를 맞대더니 동창 모임, 지인 송년회 조로 결혼식을 허락했다. 동생은 한국에서 정말 결혼식만 치렀다. 내 부모는 홍콩 여행까지 시켜준 외국인 사위에게 양복 한 벌도 해주지 않았고, 함께 한국을 찾은 사돈에게도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날 들어온 축의금으로 결혼식을 치렀고 동생의 지인들에게 들어온 축의금마저 가져가 입을 싹 닦아버렸다.



 내 부모는 큰 딸의 결혼식도 작은딸의 결혼식도 그냥 그냥.. 정말 그냥 치렀다. 그랬던 부모가 이제 나에게 키워준 값을 요구한다. 아빠라는 사람은 네가 태어나서 입고 먹고 자고 했던 값을 따져보자고 달려들었고, 엄마라는 사람은 하루라도 못 보면 죽을 거 같다는 손주들의 양육비를 요구했었다.




 난 분명히 대답했다. 아빠에게는 성인이 되기 전 키워준 값을 요구하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다고. 성인이 된 후 난 손을 벌린 적도 없고, 돈을 벌어다 준 자식이었다고 말했다. 엄마에게는 양육비는 이미 다 지불했다고. 지난날 나에게서 가져간 돈을 갚은 적 있는지, 무임금으로 부려먹은 일에 대해 값을 치른 적이 있는지 물었다. 할 말이 없는 사람은 본인이 고생한 과거 얘기만 들먹일 뿐 제대로 대꾸하지 못한다.






 한동안 문자로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었다.  나는 덕분에 부모의 민낯을 제대로 보았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돈으로 인한 가족 간의 불화, 갈등, 소송 이런 것이 다 남의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얘기들, 자식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만 하면 더는 나올 필요도 없는 얘기들이 난무했었다.  나는 진심 어린 미안함을 기대했었는데, 그게 좌절되니 나도 돈이라는 수단으로 그들의 정곡을 찌르게 되어 씁쓸했다.




내 부모는 자식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고 싶지 않았고, 사과도 하고 싶지 않았고, 본인들이 살아온 지난날이 부정받는 건 또 너무 싫고. 도통 알 수 없는 피해의식이 뭉쳐있는 사람들 앞에서 내 진심이 통할 리가 없었다.

자식이 벌어다 준 돈을 쉽게 쓴 부모, 그러면서도  여전히 돈의 굴레 속에 힘들게 살고 있는 부모.

그런 부모에게 사과를 기대하는 자식..

과연 나는 부모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나 있을까..그건 바램일 뿐 사실 물음표에 가까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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