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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니 Jan 25. 2024

하지만 이 또한 나인걸요.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 중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더라면 난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늘 혼자 고군분투하며 부모의 칭찬을 받아내기 위해 애썼던 지난날 때문인지 무언가 도전하고 시작하는 자리에서 늘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경직되고 만다. 늘 잘해왔었고 칭찬이 익숙했던 나에게 새로운 환경은 늘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누구보다 애쓰고 노력했다고 자부했던 지난날은 물론 플러스가 되어 어디에서나 열심히 일 잘하는 사람이라 여겨진 적도 많았다. 하지만 사실  내 안엔 항상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었고 불편하고 힘든 내 마음을 모른 체하며 살아왔었다.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나의 진가를 인정받는 같다는 생각에 마음을 무시하며 그저 전진하며 살아갔던 것 같다.





 부모와의 파국으로 치달은 갈등은 그동안의 내가 했던 모든 노력을 처참히 부서트렸다. 한 번도 대가를 바라 적도 기대한 적도 없다. 그저 늘 힘들다는 부모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고 부모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바라는 거 없이 부모의 민낯을 온몸으로 깨닫기 전까지 그냥 퍼다 주는 자식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민낯을 알게 되고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상처로 돌아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부모에 대한 분노나 배신감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바닥을 친 자존감이었다.




 남편과 자식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모인데, 결국 그들은 나의 착한 마음을 이용했고 그것에 수십 년간 가스라이팅당한 나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게다가 나는 한 가정의 아내와 세아이의 엄마로 조건없이 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내 부모한테서 결국은 쓸모 있는 자식이었기에 곁에 두어졌다는 생각을 하니 분노보다 슬픔이 앞섰다.





 그렇게 밑바닥 친 자존감과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나를 리셋하기로 했던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 막 성인이 되어 부모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싶었다. 등록금을 벌지 않아도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했었을 것 같다. 그냥 평범한 또래의 학생들처럼 나는 그냥 공부하는 학생이 되고 싶었다.





 그때 다이어리를 펼쳐 내가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하나씩 적어내려 갔다.


  - 영어 그림책 읽기

  - 책 많이 읽기

  - 심리 치료받기

  - 인문학 강의 듣기

  - 집 정리하기

  - 여행 많이 다니기

  - 빚 갚기

  - 운동하기


 그렇게 두서없이 쓴 글은 나의 버킷리스트가 되어 2023년 한 해를 나에게 집중하면서 보낸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나는 영어독서지도사 과정을 수료해 자격증을 땄고, 강사자리도 제안받았다.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독서 공부를 통해 교양을 쌓으며 마음공부도 하고 있다. 또한 글쓰기를 꾸준히 하며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그동안 집안의 해묵은 짐을 많이 정리하면서 장롱과 서랍장을 버렸고, 다복한 식구이지만 깔끔하고 정갈한 집에서 살고 있다. 틈틈이 여행을 다니면서 오롯이 우리 가족과 끈끈히 연대하며 행복을 쌓아가고 있고, 단순하지만 정기적으로 계단 오르기와 스트레칭으로 건강관리도 하고 있다.





 이런 모든 일련의 활동에 나의 부모는 없다. 사사건건 나의 인생에 발을 들여다 놓는 부모가 없으니 내 마음이 자유롭고 내 생활이 자유로워졌다.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이직이란 걸 꿈꿔보기도 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마음 설레는 도전도 앞두고 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지나간 내 과거가 발목을 붙잡기도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조건 없이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무엇이 두려워 그렇게 아등바등 힘들게 살았을까. '내가 좀 더 마음을 열고 여유 있게 살았으면 지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텐데..'라는 자조적인 비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게다가 가끔씩 오는 부모의 일방적인 연락에 몇 번이고 가슴이 내려앉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아직도 그렇다. 그럴 때마다 매번 '왜 이러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는데..'라이렇게 흔들리는 내가 너무도 싫어졌다.





 하지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고 내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니, 휘청거리던 가슴은 약간 흔들리게 되고, 쿵쾅거렸던 심장은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쉽지 않지만, 이제 나는 나 나름대로 이겨내는 중이다. 얼마나 부모에게 흔들리고 숨 고르기를 만큼 힘들어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또한 나의 모습인걸.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는 연습이 자신한테도 필요한데, 나는 그걸 인정하는 시간이 왜 이리 오래 걸렸을까.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다.





 이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럴 때마다 인문학 선생님 말씀처럼 마음이 아닌 양 무심히 바라봐진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 단계는 아닌 거 같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과거가 연결되고 과거는 늘 부모를 상기시킨다. 그래도 마음 아파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나는 나대로 부모를 잊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에게 사과를 요구해도 될까"를 연재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며칠사이에 구독자수는 몇 배로 증가했고, 글의 조회수는 3만 건을 넘어갔다. 그런데 그때, 솔직히 연재를 그만두고 싶었었다. 자랑할만한 얘기도 아니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게 부담이 되었고, 그러면서 공개된 곳에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웠다. 나는 불현듯 부모가 두려웠던 것 같다. 내 글이 유명해져서 내 부모가 읽을까 봐 두려웠던 거 같다. 나는 여전히 부모의 영향 아래 있는 거 같아 요 며칠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부모를 비난하려고 욕보이려고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를 담담히 써 내려가고 싶었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매개가 필요했다. 상처를 계속 들쑤시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난 상처를 계속 들여다보고 노출해야지 내 상처가 아물어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 글쓰기란 그런 과정인 거 같다. 처음엔 고통스러웠던 글이 어느 순간 술술 써질 때는 그냥 남얘기하듯 바라봐진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데 남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는데, 나는 또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계속 하려고 한다. 눈치 좀 보이고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가족이야기를 하면서 그렇지 않는다는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닐까. 예전같으면 왠지 모를 불안감에 나를 또 탓했겠지만, 지금은 나부터 내가 끌어안아줘야지 하며 토닥토닥 다독여준다. 모든 걸 한번에 이겨내는 사람은 없으니까. 내가 나부터 나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안아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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