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굳이 글로 풀어낸 이유는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부모로부터 벗어나고 있는지, 진짜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되묻고 싶었다. "부모에게 사과를 요구해도 될까"라는 글이 제목 자체로 매우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이야기,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이야기를 써야 하기에 많이 망설인 부분도 있었고, 이제 나는 제법 추스르며 일어서는 중인데 또 한 번 과거이야기로 나의 상처를 헤집어 놓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나로서 내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40년을 착한 딸로 살아왔고, 그 중 10년은 직장인으로 살았고, 5년은 주부로서 세 아이를 열심히 키워왔다. 작년 부모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타이틀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에서 벗어나 그냥 나로 한번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나로 살아가겠다는데 충동이란 단어를 쓸 만큼, 특히 40년을 함께해 온 부모라는 굴레는 벗어나기 힘든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그만큼 부모와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뭔가에 몰두하고 싶은 돌파구를 찾아 계속 헤맸었다.
처음엔 부모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려고 노력했다. 그것만이 해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60년 세월을 산 사람들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애원도 해보고 강요도 해보고 대화도 해보고 했지만 늘 돌아오는 건 같았기에 부모이지만 나와는 다른 존재라 인정하고 더 이상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결국 변화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 뿐이었다. 우스운 말이지만, 작년 내 나이 마흔이 되어서 비로소 자아 찾기에 열을 올렸었다. 나 자신의 대한 공부를 시작하기 시작했다.작년에 지인의 권유로 인문학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 지인 역시 알코올 중독 어머니와의 애증으로 매우 힘들었던 시기, 인문학 수업을 통해 마음공부를 많이 한 후 삶의 평온을 찾았다고 했다.
처음 간 인문학 수업은 또래를 찾아볼 수 없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신과도 아니고 심리치료센터도 아닌 곳에서 과연 내 마음의 병이 고쳐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참석해 보기로 했다. 조지 캠밸의 '블리스로 가는 길'이란 책을 가지고 수업은 진행되었다. '나는 나의 길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는 수업에서 나는 답하지 못했다. '사람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속에 있어 나아가게 한다.' '결국 내 영혼을 실현하는 게 인생이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인문학 시간, 처음의 낯섦과 달리 마음이 평온해지고 선생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귀 기울어진다. 의견을 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위로받은 느낌을 받았다. 티를 안 내려했건만 괜스레 차오르는 눈물을 결국 들켜버렸다. 자세히 설명할 순 없었지만, 그날 조심스럽게 동생의 이야기를 꺼냈었다. 동생이 장애아를 키우고 외국에서 힘들게 사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직 나의 이야기, 부모의 이야기는 차마 꺼낼 수 없었기에 애꿎은 동생의 이야기로 사연팔이를 했던 거 같다.
그날 나는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태도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걸 처음 느꼈다. "다 울고 나서 얘기하고 싶으면 그때 얘기해도 돼요."라고 누군가 말씀하신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한 번도 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 적도 없었고,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해봤는데 그냥 들어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아버렸다. 늘 믿음직한 자식으로 모든 걸 감내하려는 K-장녀의 DNA가 깊게 박혀 있었던 탓이었을까. 나는 내 마음을 들켜본 적도 없고 들키는 것도 싫고 그냥 꿋꿋하게 괜찮은 척하고 살았었는데, 이곳에서는 그저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냥 마음이 가는 데로 하면 돼요. 마음에 파도가 칠 때 그냥 무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그러다 보면 내 안에 무언가가 떠올라요. 결국은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야 탈이 나지 않아요."
그렇다. 나는 타인에 의해 길들여진 마음으로 인생을 살다 결국 탈이 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든 걸 부모의 탓으로 돌리기엔 나 또한 기여한 부분이 많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효심 많은 착한 딸이었으면 좋겠고, 직장에서는 힘든 척하지 않고 맡은 일을 해내는 유능한 직원이었으면 했고, 아이들에게는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슈퍼 맘이고 싶었다. 그게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탈이 났던 거다.
그나마 부모에게 물려받은 특유의 성실함과 근성으로 묵묵히 감내하고 살았던 것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민낯을 마주하고 난 뒤 난 모든 의무와 책임감에서 벗어나도 되는 해방감을 느꼈다.
내 마음의 주인은 나인데, 나는 내 부모이야기를 다이어리에 처음 끄적일 때도 누군가 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솔직하게 써내려 가지 못했다. 부모를 향한 죄책감과 부모에게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늘 부딪혔고, 그걸 이겨내지 못해 마음의 병은 실제로 내 몸을 아프게 했었다.
하지만 인문학 공부를 매개로 마음의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외부의 요인 때문에 휘둘리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한다. 예전엔 엄마에게 문자가 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화가 나고 그래서 잠을 자지 못한 날이 많았었다. 지금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찬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불편한 마음을 알아채고 무심히 그 불편함을 느낀다. 내가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니 조금은 의연해진다. 기분 나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싫어 천천히 몸을 이완시키려고 노력한다. 인문학 선생님께서는 명상을 추천해 주셨는데, 가만히 있는 걸 힘들어하는 나는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해 낸 것이 스트레칭 영상을 보며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따라 한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나아지고 몸은 편안해진다.
글쓰기도 마음공부의 방편 중 하나로 하고 있다. 처음엔 분노로 가득해서 도통 글이라고 볼 수 없었던 내 글이 쓰다 보니 무심히 남의 이야기하듯 술술 써진다. 격해진 감정을 토해내려고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내 감정에 점점 솔직해져서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데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내 감정에게 내가 자주 물어본다. 지금의 마음은 괜찮은지 아니면 불편한지, 현재 행복한지..
나는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매일매일 물어보고 산다.
글을 연재하면서 많은 분들이 해결되지 않은 부모와의 관계를 많이 걱정해 주고 위로도 해주신다. 연재 말미에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나는 내 마음에 귀 기울여 살고 있다고, 이제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니 하루하루가 충만된다고 꼭 그분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말을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