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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태그 오지랖

나이 듦에 대하여

by 동메달톡 Mar 16. 2025
”베트남은 더러워요“


엥? 이게 무슨 말?


올만에 버스를 탔다. 광역버스라 줄이 길다. 내 앞에서 탄 승객의 태그에서 “충전이 부족합니다”라는 기계음이 들렸다. 기사님은 퉁명스럽게 “돈 없어요. 거기 카드에” 순간 그 승객은 당황해했다.


뒤따른 내가 급하게 말했다.


“두 명 같이 해 주세요”


긴 줄에서 여기에서 카드가 꼬이면 시간도 꼬이게 생겼다. 기사님이 두 명으로 태그 하게 처리해 주었고, 나는 빠르게 태그 했다. 그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승객에게 내가 냈으니 가서 앉으라 했다. 입구를 막고 있으면 또 뒤에 승객들이 꼬인다. 광역버스는 통로가 좁은 좌석버스라 누가 한 명 안 들어가면 버스를 탈 수가 없다. 그이는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옆자리로 앉으라고 막 손짓을 했다. 나는 다시 “괜찮아요” 하고 다른 자리에 앉았다. 그이는 기어코 자리를 옮겨서 내 옆으로 왔다.


폰 앱을 열더니 계좌번호를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내가 말했다.


“괜찮으니,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오면 본인이 다른 사람 한 번 태그 해 주세요”


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계속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다. 아, 이 분이 불편해하는구나. 그러면 계좌를 줘야지 생각했다.


“기어이 입금을 해 줘야 편하시겠어요? 그러면 …”


이 말 끝에 상대의 말이 섞였다.


“외국인, 외국인이에요”


한국말이기는 한데 억양이 살짝 달랐다. 근데 외모로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나라 분이냐고 물었다. 베트남이란다. 아 그러면 번역기를 켜서 다시 의사소통을 해야겠다 싶었다. 번역기에 목소리로 말을 했더니 뭐가 문제인지 바로 인식이 안 되었다.


그래서 글로 썼다.


“입금 안 해 줘도 괜찮아요“


“나중에 다른 사람이 이런 경우 생기면 그때 도와주세요. 그 사람에게”


반역기로 의사소통했다.반역기로 의사소통했다.

이제야 그이는 눈동자의 경계가 풀렸다. 감사하다고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물론 내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기는 했다만.


베트남에서 온 지 2년 되었고. 두 살 된 딸이 있고. 출산 때 엄마가 왔다 갔다는 이야기와 91년생이고, 지금 어학당에 한글 공부하러 간다고 했다. 핸드폰 열어서 사진도 보여주고, 한국어 교재도 보여줬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한국 살기 좋아요?라고. 좋단다. 특히 한국 날씨가 좋다고. 그러고는 한 마디 더 붙였다.


“베트남은 더러워요”라고 말을 했다.


엥? 이게 뭐지. 놀라서 내가 다시 물었다. 베트남은 덥다고? 맞단다. 한국어 어렵지. 덥다를 더러워로 표현하니.

브런치 글 이미지 2


버스 요금 충전 잔액 부족이 시작이었다. 내가 대신 태그해 준 덕에 베트남 91년생 여자 청년을 버스 안에서 만났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인연이 된 것도 아니다. 전화번호 주고받는 혹은 SNS 서로 교환한 것도 아니다. 나는 먼저 내리고 그이는 몇 정거장 더 간다. 혹이나 돌아올 때 또 잔액부족이 될까 봐 하나 더 체크했다.


“갈 때는 충전해서 잘 가요”라고 번역기 한 번 더 보여줬다. 고개를 끄덕인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몇 분 동안의 인연은 여기까지. 내 오지랖이 더 이상 진도 안 나가기를 스스로 묶었다. 그래서 남편도 묻지 않았고, 어디 사는지도 묻지 않았다. 목적지를 물은 것은 버스를 잘 타기는 했겠지, 하는 확인 정도였다.


머나먼 이국땅까지 와서 한국어 배우겠다고 고군분투하는 그녀에게, 햇살 같은 예쁜 딸이 한국에서 잘 성장해 주길 그냥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다. 이런 덤덤함을 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다. 이렇게 버스 요금 오지랖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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