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3
우즈베크에 오니 아내는 정신이 없다. 새로운 일에 새로운 사람들. 환경도 낯선데 일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야근은 밥 먹듯 했고, 지방으로의 출장도 잦았다. 어쩔 수 없이 윤슬이와 나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항상 그놈의 밥이 문제였다. 4살 윤슬이와 함께 먹어야 하니 한 끼를 먹어도 잘 먹어야 했다 아니 잘 먹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바람과 다르게 난 음식을 전혀 할 줄 몰랐다. 라면보다 쉽다는 김치찌개조차 해본 적 없었고,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개념조차 없었다. 40년 인생을 먹을 줄 만 알았지 만들 줄은 몰랐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사 먹기 바빴다. 다행히 타슈켄트에는 한식당이 여럿 있어 어렵지 않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집 근처 한식당의 설렁탕을 윤슬이가 좋아해서 그 식당을 자주 찾았다. 설렁탕 한 그릇에 공깃밥 하나를 더 추가해서 밑반찬과 함께 먹었다. 한국에선 흔하던 밑반찬도 해외에서는 요리 그 이상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빠와 딸이 찾아와 저녁을 먹으니 어느 날은 사장님이 계란찜도 서비스로 주셨다. 윤슬이는 계란찜이 나오자, 먹던 설렁탕을 팽개치고 계란찜에 밥을 비벼먹었다. 하긴 설렁탕이 물리긴 했을 것이다. 그만큼 한식당은 4살 아이가 먹을 만한 메뉴가 다양하지 않았다. 주로 맵고 짠 종류의 찌개와 탕이 대부분이라 고를 만한 옵션이 거의 없었다. 아이에게 설렁탕만 먹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매번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윤슬이가 화장실이 급하거나 졸리기라도 한 날이면, 밥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음식을 해서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면 서로 편할 텐데.'
요리에 대한 동기가 부여되는 순간이었다. 요리를 해보리라 결심을 하고 우선 장을 보러 갔다. 요리에 초점을 맞추고 장을 보니 마트가 달라 보였다. 눈에 불을 켜고 식재료를 담고 있는데 계란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윤슬이가 계란찜을 잘 먹던데.' 문득 계란요리부터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블로그를 뒤져서 제일 간단해 보이는 '전자레인지 계란찜'을 만들었다. 어린이용 소시지도 프라이팬에 살살 구웠다. 밥을 짓고 조미김을 꺼내어 계란찜, 소시지구이와 함께 식탁에 올렸다. 아빠가 딸에게 해 준 첫 번째 밥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윤슬이는 맛있다며 밥그릇을 싹 비웠고, 그 모습에 난 요리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다.
그날 이후, 난 계란을 냉장고에 가득 채워놓고 계란요리를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계란볶음밥, 계란말이, 계란두부부침, 계란호박부침, 계란햄감자볶음 등 계란이란 단어만 보이면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성공과 실패 속에 다양한 계란요리가 탄생하였다. 그중 '아빠표 계란찜'은 지금도 윤슬이가 식사 때마다 찾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유치원이 일주일 간의 방학을 한단다. 방학을 한다고 하니 무엇보다 끼니가 걱정이었다. 이제 시작한 섣부른 요리 실력으로는 한 끼도 빠듯한데, 삼시 세끼의 문이 열릴 것을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섰다. 한식당의 설렁탕과 아빠표 계란요리만 가지고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길었다. 게다가 요 며칠 계속 계란요리만 해줬더니 아이 얼굴이 노래지는 것만 같았다.
사실 윤슬이에게 고기를 먹여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잘 씹지를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주변 지인을 통해 떡갈비 레시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진 고기를 사다가 떡갈비를 만들어 주면 아이들이 잘 먹는다는 것이다. 의외로 만들기도 쉽다면서. 떡갈비라니. 그럴싸했다. 부드럽고 달달하니 분명 윤슬이가 좋아할 것 같았다. 요리 블로그에서 레시피를 캡처해서 마트로 달려갔다. 다진 소고기 1.2kg, 양파, 마늘, 참기름, 꿀, 후추 등 필요하다는 것을 전부 샀다. 집으로 돌아와 레시피를 따라 조심스럽게 떡갈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양념장을 만들어 다진 고기 600g을 넣고 주무르다가 야구공 만한 크기로 떼어내서 열심히 치대기 시작했다. 다진 고기의 느낌이 생소하고 손바닥과 팔도 뻐근했지만 그래도 뭐가 하나씩 만들어지니 뿌듯했다. 10개 정도의 떡갈비가 만들어졌고 하나를 시험 삼아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주방에 퍼지는 냄새가 제법 근사했다. 15분 정도 에어프라이어에 돌린 후, 내 생애 첫 떡갈비를 맛보았다. 그런데 내가 예상한 맛과는 조금 달랐다. 달달하기보단 약간 짠 것 같기도 하고 미세하게 쿰쿰한 향도 나는 것 같았다.
'고기가 잘못됐나? 내가 너무 오래 주물렀나?'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다가 결국 가장 많이 들어간 간장을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양념장을 만들 때 짠 냄새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터였다. 다급히 검색해 보니 간장이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정리를 해보니 대충 국간장과 진간장으로 나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떡갈비는 진간장을 써야 한다는 것도. 나는 나의 간장을 살펴보았다. 한국에서 이모가 우즈베크 간다고 일부러 챙겨준 명인표 고급간장이었는데, 하필 그게 국간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간장이라곤 그것뿐이었다. 맥이 풀리고 식은땀이 났다. 괜히 인터넷 레시피에 짜증을 냈다.
"레시피에 어떤 간장인지 언급을 해줘야지! 그냥 간장이라고만 써놓으면 안 되지!"
"근데 하긴 내 주제에 어떤 간장 쓰라고 했다 한들 구분이나 했겠냐."
난 화를 내다가 급반성을 하다가 체념을 하다가 아주 혼자 쇼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기가 아직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에겐 아직 600g의 고기가 남아있사옵니다.'
그 길로 한인마트로 달려가 진간장을 샀다. 친절한 한인마트 사장님께 간장에 관한 지식도 한 스푼도 얻었다. 후다닥 돌아와 남은 고기로 다시 '진간장 떡갈비'를 쳤다. 숨도 차고 손바닥도 아팠지만 윤슬이의 하원 시간이 다가와 마음이 급했다.
그날 저녁 우리 세 식구는 맛있는 떡갈비정식으로 만찬을 즐겼다. 윤슬이는 정말 맛있다며 엄지 척을 여러 번 날려주었고 아내는 어떻게 한 번에 성공했냐며 요리에 소질이 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성공의 기쁨에 떡갈비를 안주 삼아 맥주도 한 잔 했다. 계란만 존재하던 아빠의 메뉴에 '진간장 떡갈비'가 추가되었고 우리 가족의 식탁은 조금 더 풍족해졌다. 그리고 아빠만 아는 '국간장 떡갈비'는 냉동실 구석에 한동안 머물다가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난 요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