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4살 우리 새끼

Chapter 2 - 4

by 비지대디





윤슬이는 4살이다. 주변에서 미운 4살이 오면 또 한 번의 고난이 찾아온다는데 생각보다 별일이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유난히 예민하던 탓에 이런저런 상황을 겪다 보니 '미운 4살이 심하면 얼마나 심하겠어' 하는 자신감마저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얼마 가지 못해 무너졌다.

4살이 끝나갈 가을 즈음,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서 '대형마트 물방개 난동사건'을 일으키더니, 우즈베크에 와서도 한 번씩 급발진을 하며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한 번은 아이가 소파 위로 올라가길래, “윤슬아 위험해. 내려와.” 하고 주의를 주니 갑자기 짜증을 내고 물건을 집어던졌다. 또 한 번은 밥을 먹는 도중 정신이 사납게 움직이길래, “윤슬아. 누가 밥 먹는데 움직여. 바로 앉아서 먹어야지.”라고 얘기했더니, 갑자기 식탁을 발로 차며 수저를 집어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지켜만 보다가, 어떤 날은 나도 감정이 상해서 같이 소리치며 싸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성의 끈을 잡고 아이를 타일러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해한다며 달래도 보았다. 그러나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그때그때 상황을 넘기기 위한 응변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았고, 나 역시 내 감정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혼내는 것도, 사과를 하는 것도 그렇다고 무조건 아이의 편을 드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바른 가이드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직 말이 서툴러 답답해서 그런가? 표현이 바로바로 안 돼서?’

'빈번히 안된다고 하니까 불만이 생기는 거 같은데,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지?'


난 마치 셜록홈스가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려는 듯, 윤슬이의 성격을 고려하고 습관을 관찰해 가며 좋은 대응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날이 왔다.






평소와 다름없이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윤슬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부랴부랴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윤슬이가 자기도 같이 요리를 하고 싶단다. 계란찜을 하면 되겠다 싶어서 그릇에 계란 몇 개를 까서 섞어보라고 주었다. 신나서 계란을 휘젓던 아이가 다 저었는지 내게로 다가왔고, 난 마침 기름에 두부를 굽고 있었다.


"윤슬아. 오지 마. 위험해! 그릇 아빠 줘. 나머진 아빠가 할게."

"싫어! 내가 할래! 내가 할 거야!"

"아니야. 다쳐. 저리 가."


그러자 윤슬이는 나를 쏘아보며 계란 풀던 그릇을 바닥에 집어던져 버렸다. 뜨거워서 그러는 거라 설명을 다시 하려다가, 나뒹구는 그릇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 난 뭐 하는 짓이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윤슬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며 말로 하라 다그쳤지만, 이미 그녀의 눈과 귀는 닫혔고, 공중을 향해 발차기를 하며 배를 튕기고 몸을 뒤집었다. 얼마 전 한국의 대형마트에서 본 미친 물방개가 타슈켄트로 순간이동을 한 듯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휴우... 그래 화내지 말자. 감정을 내려놓자.’


난 가스 불을 끄고 심호흡을 깊게 하고 차분하게 윤슬이를 지켜보았다. 어차피 뭐라고 해봤자 소용없는 단계였다. 진정되면 그때 말하자 생각했다. 분명 인간의 체력엔 한계가 있다. 설마 밤새 저러겠냐 싶었다. 그 생각으로 기다렸다. 한동안 난리는 이어졌다. 예상보다 윤슬이의 체력이 좋았다. 그러다보니 '저러다가 토하면 어쩌지? 그만 달랠까? 화를 내면 멈출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기왕에 시작한 거 끝을 봐야겠다 싶었다. 한 10분 정도 난리를 쳤나 보다. 윤슬이는 뭔가 평소 같지 않음을 감지했는지 몸부림의 속도가 현저히 줄었고 닫힌 눈이 살짝 열리면서 주변을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난 그때다 싶어서 감정을 빼고 차분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임윤슬. 일어나서 거실 벽으로 나가서 서있어."

아이는 당황한 듯 큰 소리로 뭐라 뭐라 반항을 했다.


"거실로 나가서 벽에 서라고!!!"

조금 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윤슬이는 씩씩거리며 거실로 나가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여기 등을 대고 똑바로 서있어. 그리고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 봐."

그리고 난 주방으로 돌아와서 기다렸다. 윤슬이는 아직 분이 덜 풀린 듯 숨소리가 거칠었다.


10분 후에 거실로 나가보았다. 아직 아이의 눈에는 독기가 남아있었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거야? 이유를 말해봐."

"몰라. 아빠 미워!! 아빠 싫어!!"

"오케이. 계속 거기 서있어. 왜 화가 났는지 말할 때까지 계속 서있을 거야. 밥이고 뭐고 없어."


난 매몰차게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또 10분이 흘렀다. 조용해진 걸 보니 아이는 조금 진정된 듯 보였다. 나가보니 윤슬이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윤슬이는 나를 보자 다리가 아프다며, 배가 고프다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누가 앉으래? 똑바로 서있어! 뭐가 화가 났는지 생각하고 말을 해야 이 상황이 끝나."


난 눈도 깜빡이지 않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10여 분이 흘렀을까 아이가 주방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히 내밀더니 "아빠. 나 말할게." 한다. 독기 있던 눈은 편안해졌고 얼굴은 그새 수척해졌다. 윤슬이를 주방에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얼굴에 떡이 된 눈물을 닦아주며 왜 화를 낸 것이냐 다시 물었다.


"아빠가 하지 말라고 해서 화가 났어..."

"윤슬아. 아빠는 너 다칠까 봐 오지 말라고 한 거야. 불에 다치면 병원을 가야 해. 병원 가면 주사도 맞아야 하고..."

"윽! 주사 맞는 거 싫어!"

"윤슬아. 마음에 안 들면 말로 해야 해. 말안하고 짜증내고 화내면 엄마아빠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 특히 물건을 집어던지는 건 절대로 안 돼고. 너 아가 말고 언니가 되고 싶다며? 멋진 언니는 말로 표현해야 하는거야."

"맞아. 언니는 짜증을 내면 안 돼. 안 그럴게. 말로 해볼게."


우린 대치 한 시간 만에 극적으로 합의를 하였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밥을 먹었다. 샤워를 마친 윤슬이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난 맥주를 한 캔 따서 소파에 앉았다.


'내가 너무 강한 통제를 한 것은 아닐까?'

'아이는 내 마음을 잘 이해했을까?'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단 감정을 빼겠다는 결심은 지킨 것 같아서, 무엇보다 대화로 상황을 마무리를 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진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탄생한 소위 <생각의 벽>은 몇 개월 동안 더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격한 몸부림과 화는 눈에 띄게 잡혀갔고, 화를 내기보단 먼저 말을 해보려는 노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5살이 되자 신기하게 <생각의 벽>도 사라졌다.






그렇게 난 육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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