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2
타슈켄트에 오자마자 아이는 등원하고 아내는 출근했다. 하루아침에 낯선 도시, 낯선 집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다. 한순간에 백수가 된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집안이 너무 고요하여 지나가던 주파수 소리가 귀로 잡히듯 횐청이 들릴 정도였다. 주말없이 일할 때는 하루만이라도 쉬었으면 했는데, 갑자기 쉬게 돼버리니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무엇을 해야했다. 몸이라도 움직여야겠다 싶었다.
'일단 집에 필요한 것들부터 채우자!'
주변을 검색하여 근처 대형마트로 향했다. 다행히 우즈벡의 이마트 같은 프렌차이즈 마트였다. 들어가보니 한국과 진열방식도 비슷하고 아는 브랜드들도 보였다. '그래. 별거 있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하며 자신 있게 쇼핑을 시작했다. 그러나 근본 없는 자신감은 쇼핑 시작 몇 분 만에 무너졌다. 러시아어나 우즈베크어는 나에겐 그림이나 다름없었고, 상품들도 우리와 사뭇 달랐다.
'이건 주방세제일까? 핸드워시일까?'
'우유면 그냥 우유지 뭔 함량이 2%, 5%, 10%... 뭘 골라야 하지?'
뭐 하나 집으려고 할 때마다 난관에 부딪혀 한동안 카트에 아무것도 담지 못했다. 이러다간 오늘 빈손으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안 되겠다. 일단 물부터 사자.' 물이라도 집에 채워놓으면 어느정도 가치있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생수 2리터짜리 10병 정도를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갔다. 계산원이 대충 봉투가 필요하냐고 묻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고, 돈도 뭐가 뭔지 몰라 가진 돈을 전부 꺼내 보여주니 계산원이 알아서 돈을 빼갔다. 눈치코치로 계산까지 마치고 마트 밖으로 나왔는데...
'아뿔싸! 난 차가 없지... 그래 택시를 잡자!'
'ㅎㅎㅎ근데 젠장 우리 집 주소가 뭐지?'
마트를 올 때 돌아갈 길만 염두에 두면서 걸어왔지 막상 내가 사는 집 주소도 몰랐다. 택시를 타도 설명을 할수도 없었다. 나의 멍청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생수를 양손에 들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타슈켄트의 자비 없는 햇볕이 뒷목을 때리고 손가락은 끊어질 것 같았지만 20분 거리니까 조금만 고생하자 하며 전진했다. 한 10분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한 봉투의 손잡이가 끊어지며 생수통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바닥에 나뒹구는 생수통을 보자 결국 난 이성을 잃었고, 약해 빠진 비닐봉지를 향해 쌍욕을 퍼부었다. 사실 한심한 나에게 던지는 욕이었다. 이성을 찾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행인은 없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한가로이 분노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 손엔 물 봉투를 들고 한 팔로는 물 봉투를 안고 다시 전진했다. 물봉투를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약 1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손과 팔은 감각이 없었다. 현관 거울에 비친 나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니 나 자신이 한심하기 이를 때가 없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바쁘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현관에 쓰러져 아픈 손을 부여잡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무작정 움직이면 죽는다.'
우즈벡에 정착한 지 한달 반쯤 되었을 때, 한국에서 보낸 짐이 도착했다. 한국의 집은 세를 주고 왔기에 우린 어쩔 수 없이 살림의 대부분을 우즈벡으로 가져와야했다. 그러다보니 114박스의 짐이 타슈켄트 집에 도착했다. 가구와 냉장고, 세탁기 등을 설치하고 나니 대략 100박스 정도가 남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무리 정리를 하는 듯했다. 물어보니 한국의 포장이사와는 달랐다. 가구나 전자제품은 설치를 해주지만 나머지 물건들은 그냥 놓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거실에 100개의 박스를 덩그러니 남기고 무심하게 떠났다.
이삿짐이 온 다음 날부터 윤슬이를 등원시키고 짐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박스를 풀어 물건을 확인하고 정리할 위치를 정하고 집어넣었다. 거실에 가득 쌓인 박스가 하나씩 사라지니 나름 희열을 느꼈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박스정리에 열중했다. 하루에 20-30박스씩 정리해 나갔다. 4일 만에 거실에 모든 박스를 정리하였고 모든 물건은 제자리를 찾았다.
짐 정리를 마무리했을 즈음 아침에 일어나는데 허리가 뻐근했다. 박스에서 물건을 빼고 접고 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근육에 무리가 온 것 같았다. 오후가 되니 허리가 시멘트 굳듯이 굳어 풀리질 않았다. 이러다간 오후에 윤슬이 하원을 못 시키겠단 걱정에 아내를 통해 병원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우즈베크에 한의사 분이 계신다고 하여 주소를 받아 달려갔다. 원장님은 바로 침과 뜸 치료를 해주셨고 치료를 받고는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윤슬이도 무사히 하원시켰다.
며칠 후. 야근과 출장으로 바쁘던 아내와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먹었다. 대화 중에 내가 한의원을 찾은 이야기가 나왔고, 아내는 나에게 뭘 그렇게 맨날 아프냐며 한 소리를 하였다. 사실 난 이삿짐을 정리한 것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우리가 쓰던 물건들이 오니 낯선 환경이 한결 포근해진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런데 왜 아프냐는 소리를 들으니, 없던 서운함이 생겼다. 이런저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쪼잔하게 따지는 거 같아 무심한 듯 말했다.
“이삿짐 정리하다가 약간 삐끗한 거지 뭐.”
그러자 아내는
“그러니까 뭘 그렇게 급하게 정리해. 나중에 나랑 같이 하지.”
“그리고 그렇게 정리할게 많았어?”
분명 아내는 내 몸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감정이 서운해진 나는 그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야. 모두 114박스가 한국에서 왔어. 한국짐도 내가 쌌으니 넌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겠지만, 우리가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살던 물건 다 가져온 거야. 근데 정리할게 많냐고? 그리고 왜 그렇게 급하게 정리하냐고? 거실에 저 더러운 박스가 너부러져 있는데, 그게 윤슬이한테 좋겠어?”
이렇게 항의하듯 말하고는 거실로 나와 버렸다. 사실 칭찬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티도 안 나는 그렇다고 자랑하기도 애매한 집안일이었지만, 우리의 생활공간이니 그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했다. 물론 아내가 회사 일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집 안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런데 저렇게 티가 팍팍 나는 이삿짐 정리를 하고서도 뭘 했길래 몸까지 아프냐는 소리를 들으니 서운함에 심장이 울렁거렸다.
'무거운 생수를 하루가 멀다하고 실어 나르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2시간을 운전해 딸아이를 등하원시키고, 청소하고 장보고 심지어 이삿짐도 정리했는데, 피곤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도 하루종일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살고 있는데, 뭘 하는지 전혀 모르는 건가?'
집안일의 부담감이 느껴질 때쯤, 서운함까지 스며들기 시작하니 마치 불씨에 기름을 부은 듯 불만으로 번졌다. 아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거실로 따라 나왔다. 거실에 들어서자 그제야 그 많던 박스들이 사라졌다는 것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와! 여기 있던 짐을 다 정리한 거야. 대단하네. 고생했네."
"나도 요즘 정신이 없어서 그랬어. 미안해." 하며 다독거려 주었다.
그렇게 난 집안일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