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은 고난 앞에서 결의가 된다

Chapter 1 - 2

by 비지대디





우즈베키스탄 파견이 결정된 후, 아내는 종합검진을 받았다. 해외사무소가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 의료시설이 열악한 곳이기에 해외 근무자들은 보통 검진을 하고 파견을 나갔다. 게다가 이전부터 아내는 갑상선에 작은 혹이 있어 그것도 함께 살펴보았다. 동네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얼마 뒤 갑상선에 혹이 의심스럽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다. 약간 놀랐지만 그새 혹이 빨리 자랐나 보다 하고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서울대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더 받고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상황이 좋지 않다며 빨리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한다. 우린 의아해 물었다.


"혹이 커진건가요? 당장 제거해야 하는 건가요?"

"음... 단순한 혹이 아니고 암이에요. 갑상선암."


난 온 피부세포가 뒤집히듯 놀랐고 아내는 눈물이 터졌다. 의사는 일단 두 개의 갑상선 중 한쪽에만 혹이 보이고, 초기라서 전이가 안 됐을 가능성이 높으니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하자고 한다. 만일 전이도 없고 한쪽 갑상선만 제거가 가능하다면 회복도 빠르고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급하게 수술날짜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너무 놀라 넋이 빠진 아내에게 난 오히려 초기에 발견되어 잘 된 거라며 수술만 잘하면 된다며 위로했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아니었으면 암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더 악화됐을 것이라며 하늘이 도운 거라며 온갖 긍정적인 말로 아내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매분 매초 잔인한 결과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수술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나?’ ‘혹시 전이가 되었으면 어쩌지?'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턱턱 막혔다.






아내가 암진단을 받으니 그간의 나의 고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겠다는 결정이 옳았을까?'

'미운 4살의 딸아이를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환경이 열악해 보이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


미래, 체면, 손해, 불편, 가치관 따위의 고민들은 전부 자질구레한 것이 되어버렸다. 오직 최선의 수술 결과를 받아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것. 이것이 내게 남은 유일한 걱정이었고 가장 바라는 목표가 되었다.

난 수술 날짜에 맞춰 주변을 정리했다. 잡다한 고민은 버리고 쓸데없는 감정은 지웠다. 복잡하게 널려진 상황들을 정연하게 줄 세워 은행 창구에서 업무처리 하듯 하나하나 재껴나갔다. 한 달 만에 두 가게를 모두 정리하고 집을 내놓고 당장 내일이라도 우즈베크으로 떠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해 나갔다. 그리고 수술날이 다가왔다.


수술 당일. 온갖 불안한 생각이 머리통을 짓눌러 눈이 자꾸 찡그러졌다.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아무것도 아니다. 다 잘 끝날 거다.’를 반복해 중얼거렸다. 수술시간이 되었다. 수술실이 가까워지자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두려울까.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아내는 떨고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두려워하는 아내의 모습에 난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아내가 저렇게 무서워하는데 난 그저 넋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직접 내 손으로 결정하고 해결할 수 없는 이 거지 같은 상황이, 안타깝고 화났고 그리고 무서웠다.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결국 난 무너졌다. 수술실 앞 복도에서 미친 듯이 울었다. 감정 제어가 전혀 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 쳐다봤지만 아픈 심장은 멈출 줄 몰랐다. 감정을 추스르려 난 주문을 외우듯 기도했다.


"내가 우즈베크로 가겠습니다. 우즈베크로 가서 뭐든지 하겠습니다. 육아고 살림이고 나발이고 다 할 테니... 제발 우즈베크로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수술이 잘 되어서... 부디 우즈베크로 가게 해 주세요."


다행히 수술 결과는 좋았고 전이도 없었다.
그리고 우린 그토록 염원하던(?)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그렇게 난 우즈베키스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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