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Chapter 2 - 1

by 비지대디





수술을 마친 아내는 회복도 빠르고 경과도 좋았다. 비록 매일 약을 먹으며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가 그렸던 최선의 결과였다. 한 달여간 몸을 추스르고 아내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먼저 떠났다. 난 남은 상황을 정리하고 윤슬이와 함께 가기로 했다.


드디어 우즈베크로 출발하는 날이다. 40개월 된 윤슬이가 처음 비행기를 타는 날이기도 하다. 윤슬이는 체크인부터 출국 심사까지 어른처럼 잘 해내었다. 마치 첫 비행에 대한 설렘과 즐거움 덕분인 듯했다. 그러나 난 약간의 불안함을 안고 있었다. 바로 아이의 성질 때문이다. 윤슬이는 예민하고 성격이 급하다. 덥거나 시끄럽거나 몸이 불편하면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데 그 반응이 상당히 거칠다. 몸을 뒤틀고 소리를 지르며 한바탕 난리를 친다. 아직 말이 서툴러 의사표현을 마음껏 못하는 것에 대한 짜증이겠거니 하면서도 어떤 경우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친 것이 문제였다.


'윤슬이가 과연 7시간 30분의 비행을 잘 버틸 수 있을까?'


기내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편안한 옷을 입히고 달콤한 사탕과 젤리를 챙겨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좌석도 미리 선택을 했다. 바로 비행기 맨 뒤편 화장실 바로 앞 좌석이다. 혹시나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아이를 둘러업고 화장실로 숨기 위한 나 나름의 계산된 전략이었다.

다행히 비행은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윤슬이는 비행기가 처음이라 신기해하면서 TV도 보고 게임도 하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기내식도 잘 먹었다. 빵과 과일 그리고 치즈케이크까지 야무지게 잘 먹은 윤슬이는 피곤했는지 곧 잠이 들었다. 동시에 기내에 조명도 꺼지며 분위기는 편안하고 아늑했다. 타이밍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주는데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좋아. 이대로 한두 시간 자고 일어나서 TV 보고 간식 먹고 하면 도착하겠어.'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안도감에 나도 스르르 잠이 오기 시작했다. 2-30분 정도 지났을까 잘 자던 아이가 뭔가 불편한지 꿈틀거린다. 설마 하면서 지켜보는데 몸을 베베 꼬기 시작한다. 앉아서 자는 게 불편한 것 같았다. 배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좀 더 자. 괜찮아” 하며 아이를 달랬다. 조금 먹히는가 싶더니 다시 몸을 퉁퉁 튀긴다. 지난번 마트에 출현했던 물방개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윤슬아. 뭐가 불편해? 아빠 쪽으로 누울래?" 하며 아이를 내쪽으로 눕히려는 순간, 아이는 급발진을 시작했다. 괴성과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며 배치기를 하더니, 급기야 두 발로 앞자리 시트를 차기 시작했다. 앞자리 승객은 너무 놀라 뒷목을 잡고 일어났고 난 "쏘리! 쏘리!"를 외치며 윤슬이를 달래 보았지만 이성을 잃은 물방개는 멈출 줄 몰랐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하얘졌다. 낙하산만 있다면 아이를 안고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래! 화장실! 화장실로 튀자!' 미친 듯이 몸을 튕기고 있는 물방개를 반으로 접어 감쌌다. 그리고 냅다 화장실을 향해 뛰려는 순간, 히어로처럼 한 남자 승무원이 달려 나와 자신을 따라오라 한다. 아이를 둘러업고 그를 따라 달려 기내 맨 뒤편 창고에 도착했다. 비행기 엔진소리가 크게 들려 아이의 울부짖음이 묻혔고, 소음이 커지자 아이도 놀란 듯 몸부림을 멈췄다. 승무원이 재빠르게 오렌지주스를 주니 아이는 편안해졌고, 과자를 주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해맑게 웃는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승무원과 난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함에 아무 말없이 웃었다. 승무원의 배려로 30분 정도 그곳에서 머물다 자리로 돌아왔다.


주변승객들에게 사과를 하고 특히 앞자리 분께 미안함 마음을 전했다. 그는 괜찮다며 뒤돌아 밝게 웃으며 아이와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를 나눴다. 우즈베크 남자분이었는데 그 선한 인상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아이에게 TV를 보여주고 정신이 나가 멍 때리며 앉아있는데 우리를 도와준 승무원이 열 좀 식히라며 얼음 띄운 커피를 타다 주었다. 막혔던 속이 뚫리고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승무원이 물었다.


"타슈켄트에는 무슨 일로 가세요?"


우즈베크에 딸아이를 혼자 데려가는 아빠의 모습이 궁금했나 보다. 난 우즈베크에 오게 된 사연을 풀어나갔다. 그는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덕분에 난 지난 몇 개월 간의 이야기를 취기 오른 아저씨 마냥 술술 내뱉었다. 그러다 보니 도착 시간이 다 되었다. 비행기는 무사히 타슈켄트 공항에 착륙했고 승무원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우즈베크에서 가족분들 잘 돌보시고 3년 동안 건강하세요. 응원할게요."


고맙다며 뒤돌아 나가는데 '응원'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맴돌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나의 도전에 첫 응원이었다는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사실 하던 일을 접고 해외로 육아하러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 의아해하거나, 가서 뭘할꺼냐, 갔다 온 다음엔 어쩔꺼냐는 등 부정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내 결정에 긍정적인 응원을 제대로 받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급 눈물이 차올라 기내 안 복도가 아른거렸다. 뒤돌아보며 다시 승무원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눈물이 보일까 서둘러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그 후로 비행을 할 때마다 그 승무원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기대하곤 했다. 그 난리 치던 아이가 이렇게나 많이 컸다고...그리고 나도 우즈베크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시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렇게 난 타슈켄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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