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부입니다

Chapter 2 - 6

by 비지대디





어느 평온한 일요일 오후. 윤슬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은 38도 중후반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해열제를 바꿔가며 2시간 간격으로 먹여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새벽에 열이 39도를 넘어갔다.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가며 아침까지 버티다가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인후염이라며 목감기 일종인데 심해지면 폐렴으로도 갈 수 있으니 주의를 당부했다. 기침이나 콧물은 없어서 인후염이 맞나 싶었지만, 최근에 '우즈베크 폐렴'이라 불리는 독감이 돈다는 소문도 들은 터라, 일단 해열제, 항생제, 기침약, 콧물약 등을 잔뜩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부터 거짓말처럼 콧물이 많아지며 코가 막히더니 덩달아 기침도 함께 시작되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준 해열제는 잘 들어 먹자마자 열이 빠르게 내려갔지만, 어김없이 4시간 후엔 다시 38도 이상으로 치고 올라갔다. 기침은 갈수록 심해져 토를 할 정도였고, 코가 막혀 숨쉬기 힘들어 윤슬이는 내내 기운이 없었다.


'더 심해지면 안 된다. 폐렴은 죽어도 안돼!'


증상이 심해지자 난 머리가 차가워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마치 군인이 전투에 임하기 전 무기를 점검하 듯, 난 약을 모두 꺼내어 인터넷으로 검색해 처방전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약품 용기에 약 종류과 투여량을 기입한 후, 주방 테이블에 정열을 했다. 그리고 종이에 약을 먹인 기록을 일일이 적어 나갔다. 약을 중복해서 먹이거나 혹은 빼먹을까 봐, 그리고 무엇보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내 기억에 혼동이 올까 두려운 마음이 컸다. 나의 실수가 곧 윤슬이의 건강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기억보다 기록'에 의지하고자 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본격적인 전투에 임했다.


전투는 예상보다 치열했다. 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기침과 콧물 역시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항생제와 해열제 등 약마다 먹는 시간이 다르다 보니 1-2시간 꼴로 약을 먹여야 했고, 거기에 목 스프레이와 콧물 스프레이를 주입하다 보니 거의 매시간 약을 챙기는 꼴이었다. 항생제를 먹어야 하니 식사도 꼬박꼬박 차려야 하고, 중간에 아이의 체력을 위해 과일이나 간식도 챙겨야 하니, 난 알람까지 맞춰놓으며 하루를 거의 분 단위로 쪼개어 생활했다.

밤의 전투는 더 치열했다. 고열에 기침 역시 심하다 보니 우린 모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가며 열을 잡아야 했고 기침이 심해 자다가 토를 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아내와 난 교대로 아이 옆에서 쪽잠을 자며 지켜봐야 했다. 잠까지 못 자다 보니 난 금방 체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긴장감에 입맛도 잃어 진한 커피 몇 잔과 빵쪼가리로 하루를 버텼다. 4일 만에 몸무게가 3kg이나 빠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의 정신은 오히려 또렸했다. 체력이 달리고 온몸이 쑤셨지만 집중력만큼은 최고였다. '우선 윤슬이의 열을 잡는다. 그리고 콧물을 잡는다. 콧물이 사라지면 기침이 멈춘다.' 목표는 간단하고 명확했다. 하나씩 증상들을 잡아가면서 윤슬이가 하루빨리 회복하는데 온 마음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복잡한 생각도 잡다한 고민도 사라졌다. 티도 안 나고 자랑하기도 애매한 집안일에 대한 부담, 4살의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 아빠가 육아를 하게 되면서 마주치는 불편한 상황들... 자존심, 책임감, 정체성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나를 괴롭혔던 감정들이 모두 사소하게 느껴졌다. 쓸데없는 감정을 걷어내니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내 가족의 건강과 안전. 내가 우즈베크를 온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윤슬이가 이렇게 아플 때 내가 온전히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여길 왜 왔을까가 여길 오길 잘했어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윤슬이는 열흘 간 항생제를 먹었다. 5일 만에 열이 잡히고 2주 만에 기침과 콧물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린 우즈베크에서의 첫 전투를 승리로 장식했다.

그리고 아빠의 기침이 시작되었다.






“우즈베크에서 어떤 일을 하세요?”



혜림 엄마가 내게 물었다. 혜림이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윤슬이 보다 3살 많은 언니다. 하원할 때마다 학교 놀이터에서 놀다가는 멤버 중 하나여서 학년 차이에 불구하고 둘이 제법 친해졌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등하원 때 혜림 엄마와 만나면 간단히 인사를 하며 지냈는데, 알고 보니 한인타운 근처 반찬가게 사장님이었다. 어느 날. 반찬가게에 들렀는데 마침 혜림 엄마가 자리에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것저것 반찬을 골라 담아 계산을 하려는데 혜림 엄마가 물었다.


“이번에 우즈베크에 새로 오신 거죠?”

“네네. 맞아요. 지난 10월에 왔어요.”


“우즈베크에는 어떻게 오셨어요?”

“아내가 여기서 일하게 돼서 같이 왔어요.”


“그럼 윤슬아버님은 여기서 어떤 일을 하세요?”


머리가 띵했다. 보통 아내를 따라왔다고 하면 휴직을 하고 온 거냐, 한국에선 어떤 일을 했었냐 등의 질문을 받았는데, 우즈베크에서 어떤 일을 하냐니? 이 질문은 나의 예상 답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셨냐는 질문이었나?’


짧은 찰나였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머리가 복잡했다. 동시에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우즈베키스탄행이 결정 나고, 아내가 암으로 수술을 하고, 가게를 정리하고, 컨테이너 짐을 싸서 부치고, 그 짐이 도착해서 정리를 하고, 낯선 해외생활과 힘든 가사노동에 당황도 했다가, 개념조차 없었던 요리도 시작해 보고, 아이가 아파서 밤낮없이 돌보며 고생했던 일련의 순간들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지나갔다.


"전 주부입니다. 윤슬이가 어려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함께 왔어요."


나도 모르게 말이 툭 나왔다. 내가 말하고 나도 놀랐다.


'젠장 주부라니... 그냥 육아하러 왔다고 하면 될 것을...'


혜림엄마 역시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대단하시네요.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텐데..."

"아니에요. 저도 한국에선 바빠서 윤슬이랑 시간을 많이 못 보냈는데, 여기 오니까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네요."

"그렇죠. 5살이면 또 얼마나 이쁠 때예요."

"네. 정말 그래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형식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난 급히 화재를 돌렸다.


"몰랐는데 집안일이 너무 많고 끝이 없네요. 게다가 티도 안나고요. 하하."


혜림 엄마도 급반색하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집안일이 너무 많죠? 아휴 이런 걸 남편들은 모른다니까요!"

"그렇죠 남편들... 아니 바깥일 하면 잘 모르더라고요... 하하하."


그렇게 '화기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한동안 주부의 대화가 오고 갔다. 가게를 떠날 때 혜림 엄마는 윤슬이 주라며 꽈배기도 하나 챙겨주었다. 마치 동지가 주는 응원의 선물 같았다. 감사인사를 전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난 타슈켄트 한인사회에서 주부아빠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주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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