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 1
새해가 밝았다. 타슈켄트에서 생활한 지도 4개월 정도 되었다. 윤슬이는 제법 유치원이 편해진 듯했고, 마음 맞는 친구도 몇 명 사귄 것 같았다. 아내 역시 새로운 일과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한 분위기였다. 긴장감에 항상 굳어있던 그녀의 표정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나 또한 이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삶의 방식과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1주 간의 가을방학, 2주 간의 겨울방학을 보내니, 집안일과 육아가 손에 익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운전 할 때처럼, 행동이 어설퍼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움직였던 시기에서 벗어나, 이젠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새로운 곳에서 각자의 환경에 적응해 가며,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난 새로운 꿈도 꾸었다.
'새해엔 영어과외 해서 윤슬이 담임선생님과 더욱 편하게 대화해 봐야지.'
'박물관도 돌아다니고 책도 구해서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도 공부해 보겠어.'
'온라인 강의로 간단한 현지어도 익혀보자.'
우즈베키스탄에서 맞은 첫 새해. 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을 갖고 시작했다.
그러나 부푼 꿈은 얼마 가지 못해 무너졌다.
처음 중국의 바이러스에 대한 뉴스가 나왔을 때, 저러다가 말겠지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섭게 퍼지기 시작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하자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우즈베키스탄은 감염자가 나오지 않아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지만, 이곳도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판단에 뉴스를 매일 체크해 가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우즈베크에도 첫 감염자가 발생하였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자는 순식간에 늘어났고, 우즈베크 정부는 빠르게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먼저 무기한 휴교령을 내리고 대중교통 이용을 금지시켰다. 학교가 문을 닫자 윤슬이와 난 집에서 꼼짝 못 하고 지내야 했다. 아내는 걸어서 출퇴근을 하였다. 한인 소식지에선 식료품을 사재기해 놓으라는 둥, 조만간 한국과의 항공편도 모두 끊길 것이라는 둥, 이런저런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1-2주를 보냈을까 감염자가 급증하자 결국 우즈베크 정부는 도시의 락다운을 진행했다. 차량통행이 전면 금지되었고, 도시 간의 이동도 불가해졌다. 식료품을 파는 마트 이외의 가게들은 전부 문을 닫아야 했다. 집에서 꼼짝없이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며칠 후 한국대사관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상주하는 봉사단원들과 직원의 동반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한국으로 대피시키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대피 결정 3일 만에 우린 우즈베크를 떠나야했다. 아내는 갈 수 없었다. 우즈베크에 남아 상황을 지켜보고 통제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내를 남겨두고 우리만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믿기질 않았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나와 윤슬이는 전쟁통에 피난 가듯 한국으로 돌아왔다.
얼떨결에 한국으로 돌아온 나와 윤슬이는 격리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한국 역시 코로나에 대한 강력한 조치로 마음대로 생활할 수 없었다. 예상대로 한국으로 돌아온 후, 한국과 우즈베크 간의 항공편이 대부분 끊겼다. 우즈베크에 남겨두고 온 아내가 걱정되었다. 가뜩이나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혹시라도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하면 상황이 심각해질까 불안했다.
다행히 한 달 후, 아내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갑상선암 수술 후 경과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진료를 마치는 대로 우즈베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2주 간의 격리를 끝내고 병원 진료도 마쳤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좋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다시 한번 감사했다.
그러나 아내는 바로 우즈베크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사이 코로나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한국과 우즈베크 간 항공편이 완전히 폐쇄되어 버린 것이다. 아내는 사무소에 미안한 마음에 빨리 복귀하고 싶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3주 정도 지났을 무렵, 우즈베크로 들어가는 항공편이 하나 나타났다. 한국에 있는 우즈베크 사람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특별항공편이었다. 특별편이기에 아내 역시 티켓을 구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아내는 상황이 심각하니 이번에 표가 생기면 본인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중에 상황이 좀 나아지면 그때 윤슬이와 돌아오라며.
사실 나와 윤슬이는 우즈베크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우즈베크에 살고 있는 주재원이나 교민들 대다수도 한국으로 돌아왔고, 비행기 편이 없어 한국으로 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변에서도 상황이 심각하니 나와 윤슬이는 한국에 남으라고 했다. 어린 윤슬이를 걱정하는 가족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 이 난리에 의료시설이 부족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겐 고민할 필요 없는 고민이었다. 아내 혼자 우즈베크로 돌아가는 옵션은 나에겐 없었다. 아내를 홀로 두고 한국으로 떠밀려 왔을 때, 어떻게든 함께 남아있을 걸 하는 후회를 백번도 넘게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난 아내에게 말했다.
"나와 윤슬이도 그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알아봐 줘. 가능하다면 무조건 같이 갈 거야."
타슈켄트행 비행기가 코로나 소용돌이 속 우리의 보금자리를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셋이 함께였다.
그렇게 우린 타슈켄트를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