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과 집사람

Chpater 3 - 3

by 비지대디





오랜만에 집이 분주하다. 안방에선 샤워소리가 들리고, 거실엔 TV가 켜져 있고, 주방엔 기분 좋은 커피 향과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가득이다. 그렇다. 드디어 윤슬이가 유치원을 가는 날이다. 휴교령이 내려진 이후, 6개월 만에 등원이다.

타슈켄트에는 아직 등교를 결정하지 않은 학교가 많았다. 개학은 했지만 보통 온라인수업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개학을 미룬 학교들도 있었다. 그러나 윤슬이 유치원은 개학과 동시에 직접 등원을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철저히 관리를 할 테니 아이들을 보내라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학교의 결정이 반가웠다. 물론 윤슬이가 등원을 하면 코로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에 불안했지만, 6개월을 거의 격리 수준으로 아이와 집에서 보내다 보니 난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오전 몇 시간 만이라도 윤슬이가 유치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다면 내 숨통이 조금은 트일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학교로 가는 길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5개월 유치원을 다니다가 6개월을 쉬었으니, 사실 유치원을 다닌 시간보다 쉰 시간이 더 긴 셈이었다. 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예전과 사뭇 달랐다. 경비는 더욱 삼엄해졌으며,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열체크를 하고, 소독을 하고, 이름을 적고 교실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 모습에 윤슬이는 당황한 듯 약간 머뭇거렸다. 마침 담임선생님이 반갑게 인사하며 맞이하자 그제야 윤슬이의 긴장감이 풀렸다. 운 좋게도 담임선생님은 그대로였다. 윤슬이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윤슬이는 다시 유치원 생활을 시작했다.


윤슬이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지만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집안일에 더 매몰되어 갔다. 게다가 선생이나 학생들 중 코로나 감염자가 종종 나오면서 급한 하원과 휴교가 반복되다 보니, 난 항상 대기 아닌 대기를 해야 했다. 유치원을 보내놓고도 아이가 코로나에 걸릴까 노심초사하다 보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여갔다. 그냥 등원 안 시키는 게 속은 편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난 그나마 지키고 있던 여유마저 사라졌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누군가 만나 이야기를 하면 좀 풀릴 것 같았지만, 아는 사람도 없었다. 회사동료나 학교친구가 있는 아내와 윤슬이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해외생활의 외로움이란 것이 처음으로 사무치게 다가왔다.

뭐든 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내가 퇴근하는 대로 난 곧장 집을 나섰다. 이어폰으로 록음악을 들으며 동네를 무조건 걷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탈이었다. 하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나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감염자가 발생하였다며 윤슬이를 하원시켜 달라는 연락이 왔다. 등원한 지 2시간도 안 된 오전 11시경이었다. 다시 차를 몰아 학교로 달려가 윤슬이를 데려오는데, 어수선한 분위기에 긴장을 했는지 윤슬이가 팬티에 변을 지렸다. 집으로 돌아와 곧장 엉덩이를 씻기고 팬티를 빨았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길래 서둘러 점심 준비를 하는데, 윤슬이가 화장실을 가다가 또 변을 지렸다며 아빠를 찾는다. 식사 준비를 멈추고 엉덩이를 씻기고 팬티를 빨고 주방으로 돌아와 점심을 마저 차렸다. 그렇게 식탁에 앉았는데 순간 당이 딸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날 저녁.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내가 주방 정리를 하고 거실로 나와 물었다.


"오빠 왜 그렇게 한숨을 자주 쉬어?"

"내가 그랬어? 집에만 있으니까 영 답답해서 그런가."


"답답하면 밖으로 나가."

"밖으로 나가라고? 혼자 산책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청소하고 장보고 음식하고... 이놈의 집구석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어. 윤슬이가 등원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빨리 하원시켜라 하니 똥개훈련도 아니고 힘들어 죽겠다고. 너야 밖에 나가면 만날 사람이라도 있지. 난 여기 혼자야. 만날 사람도 없다고."


아내도 내가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말이었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나는 그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석해 버렸다. 서운함에 눈이 뒤집혀 한바탕 쏟아내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우즈베크 생활 1년 차.

난 외로움과 서운함의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난 집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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