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 3
운동과 강의를 하면서 몸과 머리를 못살게 굴었더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통증으로 다른 통증을 잠시 마비시킨 정도랄까. 그래도 일단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니, 난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해졌다. 집안일과 육아가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까? 무엇 때문에 두 손 두 발 다 드는 지경에 이르는가? 에 대한 이유가 궁금했다. 해답을 찾기 위한 셜록홈즈 모드가 다시 발동했다. 치열하게 고민해 보았다.
1. 집안일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
사실 집안일은 중노동만큼 힘들지 않다. 중노동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그 이상이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힘든 것인가?
집안일에는 세 가지가 없다. 첫 번째, 보수가 없다. 집안일은 월급이 없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없으니 당연히 나를 위로할 명분이 부족하다. 배우자가 돈을 벌지 않느냐? 그건 배우자의 돈이고, 가족의 돈이지 진짜 내 돈은 아니다. 오롯이 나의 통장에 꽂히는 돈이 없으니 난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생활을 하는 데 있어 배우자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나의 노력에 대한 의문이 시작된다.
두 번째, 성과가 없다. 매일 출근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 결과물이 없다.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가며 일하는데 결과가 눈에 보이질 않는다. 청소를 해도 하루 지나면 원상복귀, 장을 보고 요리를 해도 몇 끼 먹으면 사라진다. 심지어 아이를 돌보는 것은 흔적조차 남질 않는다. 마치 칼로 물을 벤 듯, 허공에 그림을 그린 듯,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의 노력에 의미가 사라진다.
세 번째. 동기가 없다. 사람은 인정받기를 원한다. 칭찬이야말로 가장 큰 동력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안일은 티가 나질 않는다. 따라서 종일 밖에서 지내다 온 식구들에게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기 쉽지 않다. 오히려 빨래나 청소가 덜 되면 가족들에게 한소리를 듣는다. 칭찬은 바라지도 않지만 되레 일을 안 한 사람 취급을 받으면 서운함이 생긴다. 인정을 받지 못하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나의 노력에 불만이 생긴다.
이렇게 나름의 진단을 하고 하니 해결책을 찾아야했다. 해법을 찾아야 했다. 월급, 성과, 동기부여가 없는 집안일. 내 영혼을 갈아 넣으면 나만 손해라는 판단이 들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집안일을 하루에 한 시간만 하고, 그 외에는 나를 위해 시간을 쓰자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내일 또 더러워질 텐데,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하면 모레 하면 된다. 영화를 보던, 책을 보던, 낮잠을 자던, 운동을 하던 다른 것으로 나를 채워보기로 했다. 그것이 뭐가 되었건 간에 집안일만 아니면 된다 마음먹었다. 처음엔 그것도 쉽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집안일을 회피하고 내 시간을 갖는 게 양심상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나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러자 부담감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집안일도 주 5일제로 간다.'
금요일로 마감을 정했다. 주말은 가족의 온전한 휴식을 위해 쾌적한 집환경이 필요했다. 오케이. 그렇다면 주말에 초점을 맞춰 일하자. 마치 한 주의 프로젝트를 마감하듯, 집안일을 금요일에 끝내자. 매일 조금씩 하던, 금요일에 몰아서 하던 마감을 하자. 그리고 주말엔 집안일은 거들떠보지도 말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보니 주 5일제로 업무가 돌아갔고, 마감이 생기니 끝없이 돌아가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할 일을 미루거나 방관한 것이 아닌 단지 생각을 바꿨을 뿐인데, 나의 노력에 결과가 주어지고 동기가 생겼다. 그렇게 마음먹고 마음을 바꾸니 마음이 편해졌다.
2. 육아는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
육아라는 것이 사실 대단한 체력이나 엄청난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힘들고 스트레스도 심하다. 몸과 마음이 금방 소진되어 여유도 사라지고 짜증도 쉽게 난다. 그러다 문득 군생활이 떠올랐다. 육아가 군생활만큼 힘들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일까?
'아! 수동적이구나. 육아가 군생활만큼 수동적이라 그렇구나.'
나의 의지대로 나의 속도대로 하는 행동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스트레스가 덜하다. 그러나 사소한 일이라도 수동적으로 하면, 금방 지치고 불만이 생긴다. 육아가 그러했다. 목마르다, 배고프다, 심심하다, 답답하다, 아프다 등 아이의 상태에 따라 내 몸을 움직여야 하고, 어지르고, 넘어지고, 똥 싸고, 울고 하는 아이의 속도에 따라 내 감정도 맞추다 보니, 단순하고 쉬운 일이라도 쉽게 지쳤고, 반복적으로 얻어맞으니 피로감이 쌓였다. 역시 해법이 필요했다.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자.'
이제 윤슬이도 어느 정도 컸으니 뭔가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윤슬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을 추려서 직접 해보도록 유도하였다. 소변 후 휴지로 닦기, 물 냉장고에서 꺼내먹기, 옷장에서 옷을 찾아 갈아입기, 신발 신기, 간식 찾아먹기 등 사소한 것부터, 장난감 정리하기, 책상 정리하기 등 제법 어려운 작업까지 스스로 하게 했다. 중간중간 느리고 답답하여 내가 하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했지만, 훈련이라 생각하고 기다렸다. 어차피 군생활 같은 육아생활, 아이를 갓 입대한 신병이라 생각하고 교육하자. 그래야 선임인 내 군생활이 편해진다는 마음으로 접근했다.
내 일이 아이와 조금씩 나눠지자, 내 체력도 내 마음도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아이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스스로 잘 해내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안전이라는 명복으로, 청결이라는 핑계로, 아이의 발달을 막고 있었다는 반성마저 하게 되었다. 나를 바꾸니 새로운 것이 보였다.
그렇게 난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마음먹고 했다.
결국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