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 2
새해가 되었지만 난 여전히 무기력감과 우울감과 싸우고 있었다.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듯 감정이 동요했고, 하루에 수십 번씩 한숨이 나왔다. 만날 친구가 없으니 외로움까지 몰려와 처음으로 우즈베크에 온 것을 후회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우즈베크에서 1년 반을 더 살아야 하는데, 지금 같은 마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최근에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얼마 전 코로나로 닫혔던 골프연습장이 다시 영업을 시작했는데, 골프를 배워볼 생각이 있냐는 연락이었다. 골프라니... 생각도 안 해본 스포츠였다. 사실 난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 우즈베크에 왔을 때 운동을 해 볼 마음이 있었다. 3-4년 동안 주말 없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몸이 많이 상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몸관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실내 체육시설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전혀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야외에서 하는 골프연습장이 먼저 영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민도 없이 레슨을 하겠다고 했다. 골프채도 없었을뿐더러, 골프가 나랑 맞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니 무조건 하고 싶었다. 골프고 나발이고 그냥 햇살을 맞으며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중고채를 하나 구입하여 윤슬이를 등원시키는 대로 연습장으로 향했다. 레슨과 연습으로 매일 두 시간씩 운동을 했다. 영하의 겨울날씨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땀이 흘렀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개운함이었다. 사실 골프가 무슨 운동이 되겠냐며 큰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반복되는 스윙운동은 온몸을 스트레칭해 주었고, 무게감이 있는 골프채 덕분에 팔뚝에 자잘한 근육이 올라왔다. 연습이 끝나고 나면 무릎과 등짝이 뻐근하고 온몸이 쑤실 정도였다. 게다가 익숙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반복하다 보니 무기력한 기운이 사라지고 우울한 감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신기하게도 몸이 아프니 마음이 나았다.
어느 봄날. 뜻밖에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우즈베키스탄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특강이었다. 내가 미술사를 전공하고 박물관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된 지인이 특강 제안을 해온 것이다. 난 주저 없이 하겠다고 했다.코로나 시기라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불안했지만 하고 싶었다. 최근 시작한 골프레슨으로 몸과 마음의 텐션이 제법 올라온 것도 과감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매주 한번씩 총 4번의 강의를 하기로 했다. 강의 주제는 '미술로 보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교류의 역사'였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언제부터 교류를 하였고, 어떤 관계였으며, 현재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에 대해 문화재와 사건 그리고 기록을 통해 들여다보고, 앞으로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책과 논문을 검색하고, 기사도 수집해 가며 강의를 준비했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글쓰기 본능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박물관에서 근무할 때는 전시도록이나 패널 등의 내용을 만드는 것이 주된 업무였기에, 글 만드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박물관을 그만두고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완전히 펜을 놓았었다. 그래서인지 한 6여 년 만에 다시 펜을 잡았다는 느낌에 감회가 남달랐다. 글을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뭔가 만들어내는 기쁨이 다시 찾아왔다.
매일 아침 윤슬이를 등원시키고 집 앞 카페에 앉아 논문을 읽었다. 식구들이 잠들면 거실로 나와 밤늦게까지 강의 원고를 썼다. 주말 아침에도 새벽에 일어나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청소하고 장보는 나의 일상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예전에 나는 아니었다. 머릿속이 강의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지고, 시간에 맞춰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에 집중하다 보니, 같은 하루였지만 완전히 다른 하루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난 우즈베키스탄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비록 코로나 상황이 다시 악화되어 두 번의 강의 밖에 하지 못했지만, 준비한 만큼 후회 없는 강의를 했고, 다행스럽게 학생들도 만족한 듯 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의 '강의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뿌듯함보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할 일이 없음에도 노트북 앞에 앉아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 앉고 싶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미뤄왔던 일을 시작해 보자.'
사실 우즈베크를 온 후부터 난 '아빠의 해외주부일지'를 쓰겠다는 작은 계획이 있었다. 기왕 해외에서 육아와 살림을 하게 된 거, 아내와 윤슬이와 함께 한 시간을 사진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해외생활 그리고 예상치 못한 코로나의 유행으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고작 사진과 에피소드 등을 SNS와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해 두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강의 준비를 하면서 글 쓰는 힘이 생겼고, 동시에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이번 기회에 모아둔 메모와 기록을 정리해 봐야겠다는 의지가 셈 솟았다. 시간 날 때마다 핸드폰 속 메모와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겨 정리하고, 날짜도 기록하고 글에 살도 붙이면서 '주부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머리가 아프니까 마음이 나았다.
그렇게 난 나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