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 1
보통 나의 하루는 이러했다. 아침에 6시 50분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사과를 깎고 커피를 내리고 빵과 요구르트를 준비한다. 그 사이에 아내는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난 윤슬이를 깨워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인다. 7시 50분에 집에서 출발해서 아내를 회사에 내려주고 유치원으로 간다. 8시 30분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9시. 주방으로 간다. 아침 먹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화장실로 간다. 세면대와 변기를 닦고 물기를 제거한다. 안방으로 간다. 환기를 시키고 침구를 정리하고 먼지를 턴다. 거실로 간다. 장난감과 책 등 너부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먼지를 턴다. 마지막으로 주방, 거실, 안방 순으로 청소기를 돌린다. 거의 매일 하는 청소의 루틴이다. 이 정도만 해도 대략 10시 30분.
이렇게 청소가 끝나면 좋겠지만 어떤 날은 거실 바닥에 흘린 주스 자국이 보이고, 어떤 날은 가스레인지에 쌓인 기름때가 보이고, 어떤 날은 아이방에 너부러진 장난감 꼴이 거슬리고, 어떤 날은 화장실 욕조와 거울에 물때가 보이고, 어떤 날은 가전제품에 손자국이 도드라져 보이고, 심지어 어떤 날은 마루 바닥 걸레받이 위에 쌓인 먼지도 보인다. 오늘은 간단하게 청소하고 커피 한 잔 마셔야지 하다가도 눈에 거슬리는 집안일이 보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특히 아내와 아이가 생활하는 곳이라 생각하면 검열의 기준이 높아진다. 그렇게 집안 청소를 하다 보면 12시. 점심시간이다. 라면을 끓이거나 냉동식품과 밑반찬으로 대충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대략 1시.
소화도 시킬 겸 장을 보러 간다. 생필품과 먹거리는 왜 그렇게 빨리 떨어지는지, 사야 할 품목들이 매일 생긴다. 그렇게 장을 보고 오면 2시-3시. 3시 20분에 하원하는 윤슬이를 데리러 2시 50분이면 유치원으로 출발한다. 아이의 유치원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윤슬이는 보통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앞 놀이터에서 30분 정도 친구들과 논다. 4시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오면 대략 4시 30분. 배고프다는 아이를 위해 곧바로 저녁을 준비해서 먹인다. 윤슬이가 저녁식사를 마치면 5시 30분. 곧바로 아내와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한다.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볶음류나 부침류를 만들어 아내가 퇴근하는 대로 함께 식사를 한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8시 30분. 윤슬이와 조금 놀면서 쉬다가 9시 30분이 되면 씻기고 침대로 향한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어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거나 하며 잠을 재우지만 곧바로 잠드는 일은 거의 없다. 아이 옆에 누워 잠이 들기를 기다리다 보면 아침 6시 50분 알람이 울린다. 그리고 샤워와 함께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덜컥 코로나에 걸렸다. 큰 증상이 없이 20일 만에 복귀하였지만 그 후 약간의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지난 1년 코로나로 인해 반 격리생활을 하면서 누적된 피로감이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이상함을 감지하게 되었다. 기운이 없고 입맛도 사라지고 가슴이 답답하여 한숨도 잦아졌다. 내 가족의 신상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나 역시 큰 스트레스가 없었음에도, 감정이 쳐지고 기운이 없고 심지어 우울함 마저 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무기력함이 코로나 후유증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그땐 알지 못했다.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내 머리와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내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도 자라났다. 코로나는 언제 끝날 지 모르고, 난 계속 반복되는 집안일에 허우적 대고 있고, 하루 중에 나를 위한 시간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어느 아침. 정신없이 등원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윤슬이를 카시트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채워주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며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뱉었다.
윤슬 : 아빠. 힘들어?
아빠 : 응?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봐?
윤슬 : 아빠가 계속 한숨을 쉬잖아.
아빠 : 아빠가 그랬어? 그러게. 자꾸 한숨이 나오네. 요즘 가슴이 답답하네.
윤슬 : 아빠! 아빠가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 아침에 나 깨우고, 사과 깎아 주고, 빵 주고, 요구르트 주고, 옷 입혀주고, 택시운전도 하고...
아빠 : (너무 놀라서) 뭐라고?
윤슬 : 또또!! 요리도 하고, 윤슬이방 청소도 하고, 내 머리도 잘라주고... 너무너무 일이 많잖아. 그러니까 좀 쉬어요.
아빠 : (눈물이 차올라) 아이고 윤슬씨. 알아줘서 고마워요. 아빠가 쉬엄쉬엄 할게.
유치원 가는 길이 뿌옇게 보여 괜히 와이퍼를 작동했다.
그렇게 난 번아웃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