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토 Jun 10. 2024

부러운 듯 사람 꼴을 구경하고 섰다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히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만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사람 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신경림의 시 <산에 대하여> 전문




집 근처에 근린공원이 있다. 도서관을 가는 길에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하는 달리기를 하는 장소이다. 식사 후에 걷기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언제나 어르신들의 차지가 되어 장기와 바둑 두는 곳, 코로나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무료식사를 배급하던 곳,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음악회가 가끔 열리는 곳, 어르신들을 위한 저녁 운동교실이 주 5회 열리는 곳이다. 근린공원은 낮에는 어르신들을 품고 저녁에는 젊은이들과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품을 내어준다.


근린공원으로 나가는 시간은 저녁 식사 후 6시 경이다. 가볍게 달리면 한 바퀴에 5분 정도 소요되는 공간이다. 요가수련을 가기 전에 30분 정도 걷거나 달리기를 하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6시가 넘어가면 대부분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먹을 시간인데 남자 어르신들이 장기나 바둑을 두기에 여념이 없다. 운동이 끝나는 시간에도 여전히 꼼짝없이 훈수를 두는 분들까지 한 장기판과 바둑판에 서너 명이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고개는 거북 목처럼 빼어 모두들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젊어서는 바라볼 곳이 많아 한 곳 만을 바라볼 정신도 없이 살았을 텐데 지금은 해가 넘어가도 바라볼 곳이 이곳이 전부일까.


코로나 전에는 무료배급을 받기 위해 무등도서관 사거리가 남자 어르신들의 물결로 가득 찼다. 공원 건너편에는 무료 급식소도 생겼다. 무료 급식소가 생긴 지 일 년여 만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안타깝게도 일주일에 한 번 있던 대대적인 무료 급식도 중단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낮의 공원은 어르신들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도서관으로 향했다. 벌써 사거리 근처에 가니 쿵짝쿵짝 재밌는 멜로디로 흥겨운 음악소리가 정겹다. 발라드가 아닌 뽕짝이다. 구수한 노랫가락을 무명가수가 한바탕 멋들어지게 뽑아내고 있다. 흥겨움에 일부 어르신들은 어깨를 들썩이고 전국노래자랑하면 앞에서 한두 분 춤추는 분들이 계시듯이 가수와의 경계도 없이 춤으로 흥을 돋우신다. 역시 앙코르도 빼놓을 수 없다.


도서관 안에는 젊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저 노랫소리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곳까지 들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어르신들의 즐거움을 봤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미소로 봐줄 수 있는 정도였다. 한쪽 공원에서는 어르신들이, 한쪽 도서관 건물에서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세상에서 자신들의 색깔로 삶을 채워가고 있다.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공원은 나지막이 엎드려 저녁에는 젊은이들을 품어주고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되어준다. 공원 한편 건물에서 생의 불을 태우는 사람들을 다독여준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공원도 크고 멋지진 않지만 내 이웃에게 넉넉한 자리를 내어주고 따뜻한 품으로 품어준다. 적당한 시간에 적당히 자리바꿈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순하디 순한 길이 되어주기도 하고 삶을 보듬는 구심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 조그마한 공원이 사람 사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큰 역할을 한다. 성종상 작가가 '인생정원'에서 건물하나 세우는 것보다 공원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삶의 풍요를 위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선 곳에서 요가하며 살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