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수련은 한 시간 이상을 동작에 집중하면서 모든 고민과 집착을 덜어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부부 갈등이 시작되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횟수보다 나 자신을 공격하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주말부부로 멀리 떨어져 있으니 문득 화가 치밀어 올라올 때 남편은 앞에 없다. 허공을 향해 뾰족한 화살을 쏘아대면 나에게 되돌아와 몸의 이곳저곳을 마구 찔렀다. 상대방을 향하여 내뱉은 독기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자책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내 마음이 병들기 시작했다. 끝을 모르는 지하로 추락하였다가 겨우 힘을 내 기어오르고 또다시 분노가 일면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가 겨우 빠져나오기를 수천 번 반복하였다. 정신이 피폐해지니 육체가 그 증상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피부의 탄력이 사라지고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날들이 많아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내가 그랬나 보다.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날마다 직장 일이 마무리되면 퇴근하고 요가원으로 향한다. 내 몸과 마음에 박힌 독기를 빼내러 요가원에 갔다. 도를 닦으러 산으로 갈 수는 없고 현실에서 몸과 마음을 닦는 데는 요가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날그날 일어난 생각의 찌꺼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스트레스가 너무 과도하면 탈모가 생기든지 입맛을 잃어 체중이 빠지든지 뭔가 증상이 나타난다. 그런 증상을 묻고 세월을 지내다 보면 병중의 병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가늘게 꿈틀거리는 움직임에 마음이 반응했다. 한 줄기 빛에 눈을 뜨고 그곳을 향해 한 발짝씩 조금씩 움직였다. 몸을 움직여 주면 마음이 반응했다. 다시 몸에 불이 지펴졌고 그 따뜻한 기운으로 생기가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요가동작을 통해 마음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요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명상으로 마음을 어루만졌다.
요가 마지막 시간에 사바아사나라는 송장 자세를 취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명상시간을 갖는다.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한다. 어깨와 귀를 멀게 하고 손을 허리에서 두 뼘 정도 벌린다. 다리는 골반 너비만큼 벌리고 온몸의 힘을 뺀다. 명상시간에는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숨을 고르고 내 몸과 마음을 관찰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자각하고 이완하는 시간을 갖는다.
"00야, 힘들지. 후 우우"
"00야, 괴롭지. 후 우우"
"00야, 슬프지. 후 우우"
묻는 게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신을 관찰하여 무수히 봇물 터지듯 넘어오는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다독여주며 자각한다. 생각과 감정을 날숨에 실어 손끝과 발끝으로 호흡과 함께 뱉어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렇게 요동치는 감정을 제어하며 생각을 멈추고 이완한다. 사바아사나는 잠들지 않으면서 생각을 멈추는 상태이고 호흡도 의식을 벗어나 있는 상태이다. 평온하지만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않은 상태로 균형을 찾는다.
어느 날은 너무 피곤했는지 깜빡 잠이 들어 도반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소리에 깨어나기도 했다. 그런 날은 그런 날 대로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 그만큼 요가를 하고 나면 편안해지고 심리적으로 이완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00야, 피곤하지. 후 우우' 하며 일어난다.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