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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Jun 28. 2024

마음이 흔들릴 무렵

내 삶의 변곡점은 마흔이었다. 마음이 흔들릴 무렵 직장 은퇴 시점이 코앞이라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노안은 시작되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내가 10년 뒤 직장을 그만두면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조바심이 일었다. 지금 하는 일 이외에 내가 잘하는 일도 없고 지금까지 되는 일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실패한 인생으로 끝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을 때는 웃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더 큰 위협감을 느꼈다. 뭔가를 꾸준히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고문의 막연함만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제2의 직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풍선아트 자격, 예쁜 글씨 자격, 요양보호사 자격, 사회복지사 자격, 경락마사지 자격 등 자격증 취득을 위해 체력과 마음을 쏟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다. 별반 경제적 도움이 되지 않은 자격이었지만 조금씩 끊임없이 움직이고 자격증을 하나씩 취득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얻는데 도움이 되었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커 보였다. 내가 가장 오래 해 왔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간호 분야에서 자기계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것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머리를 굴렸다. 보험 약관 대출을 받았다. 없는 살림에 수년동안 남편 이름으로 넣은 만기 된 보장성보험이 있었다. 남편을 통해 대출받아 두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였다. 몇 년 뒤 남편은 보험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할 형편이었는지 보험을 유지하지 못했다. 남편은 뇌혈관 질환 가족력이 있어 빚 갚으면서도 겨우 보험을 넣었었는데 이것 하나 유지 못하는 남편의 무능이 피부로 와닿았다.     

요가를 시작한 무렵부터 직장인으로서 다시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다. 평일 저녁에는 요가 수련 후 대학원 공부를 했으며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이 되었다. 대학생 때는 연애하느라 별 흥미도 없었던 공부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잘 되는 이유가 있었다. 내 인생이 남편 뒷바라지만 하다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감과 은퇴에 대한 절박감이었다. 요가로 체력관리를 하면서 나를 세우는데 전심전력을 다 했다. 조금은 조급함으로 불안하기도 했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공부해 나갔다. 빚에 빚을 얹는 인생일까 봐 두려웠지만 한 점 희망을 품고 공부해 나갔다.


인생이라는 것이 자신이 계획한 대로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순풍에 돛 단 듯 항해를 할 때도 있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산 정상을 향하여 하염없이 올라야 하는 때도 있다. 어느 땐 일이 잘 풀리다가도 실타래 엉키듯이 꼬이는 것을 보면 삶은 언제나 행복하지도 꾸준히 불행하지도 않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것이 없다고 느꼈을 때 쓸데없이 인생이 길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살아갈수록 우울이 양념처럼 뿌려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힘들었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힘들어도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의 정서적 배신은 끊임없이 나를 쫓아다니며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우울이 다가올 때는 밀어내기보다 요가로 마음을 다스렸다. 마음이 분요하면 요가도 내 뜻대로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면 요가 매트 위에서 내 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에 집중했다.      

전굴자세를 하며 다리오금이 안 펴져 애쓰던 어느 날 다리가 조금 펴지고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그리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던 한 부분씩 놓는 법을 배워 나갔다. 몸을 숙이는 수련을 하며 얼굴이 바닥 가까이 갈수록 눈물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울컥 치미는 감정을 바라보며 동작에 집중했다. 운동이 반복될수록 불안감을 털어 내고 꼬인 실타래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인생이 길다는 생각 대신 내게 허락된 삶을 더욱더 소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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