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부터 파고들기
저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든 먼저 대상에 대한 정의나 개념에 대해 생각하는 편입니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나?' 라는 의심도 의심이거니와, 표면적으로 알고 있었던 내용을 깊게 알게 되거나 일상적으로 쓰던 내용과는 다른 정보를 알게 되면 재미있거든요.
막연하게 느낌적으로 알고 있던 개념이 문장으로 정리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명징함에 상쾌해지기도 하고, 혹은 사전적 풀이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문장을 보면 이것을 어떻게 넓힐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든, 개념을 살핀다는 건 생각을 촉발하는 좋은 부싯돌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도 전통적 시가 장르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현대시'라는 장르와 연결되는 서구식 '시poem/poetry'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먼저 '시'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알아 봅시다. 흔히 운문이라고도 하는 시의 사전적 개념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학의 한 장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시>
시의 형식으로 지은 글. <표준국어대사전: 운문>
그러면 운문이란 시의 형식으로 지은 글이고, 시란 내용적으로는 감흥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으로 표현한 것이로군요. 함축적이라는 건 하나의 단어에 많은 의미를 눌러담았다는 의미고, 운율적이라는 건 노래처럼 단어의 발음이나 소리의 강약을 통해 리듬을 만든다는 의미일 텐데, 그래도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다른 방식을 취해 봅시다. A라는 개념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A에 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의 반대 개념인 B에 대해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운문과 대비되는 산문을 함께 살펴 봅시다. 두 개념의 대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부터 제시하였습니다. (김욱동, 『문학이란 무엇인가』, 111-114.)
운문(verse)의 어원은 라틴어 versus로 다시 되돌아오는 것, 특히 농부가 쟁기로 밭갈이를 할 때 밭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다시 되돌아오는 동작을 의미.
반복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리듬과 패턴 존재.
문학을 위하여 사용된 비실용적 형식.
객관적, 역사적 사실보다 구체적 인간 경험 표현.
산문(prose)의 어원은 라틴어 prosus로 앞으로 똑바로 나가는 동직을 의미.
목표를 향하여 똑바로 나아가는 글.
법률, 과학 법칙, 역사를 위하여 사용된 실용적 형식.
객관적, 역사적 사실 전달.
시에 관심이 있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위 설명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실 수 있겠습니다. 갸웃했다면 좋은 비판적 태도를 가진 것이고, 갸웃하지 않았다면 성실한 태도를 가진 것이겠지요. 자, 의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저런 사전적 의미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해야 하지? 내가 아는 시에서 운율, 리듬이 잘 느껴지나? 잘 모르겠는데? 산문처럼 줄줄 이어지는 건 시가 아닌가? 타당한 의문입니다.
그러면 다른 개념을 찾아가 봅시다. 시, poem의 어원을 살펴 보죠. poem의 어원은 라틴어 포이에시스poiesis에서 출발합니다. 제작, 창작이라는 의미를 지닌 poiesis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의미의 poiema가 탄생했고, 이것이 poema를 거쳐 현재 시라는 뜻의 영어 poem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생각해볼 부분은, 포이에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논한 인간의 지적 활동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제작 행위로서의 포이에시스는 이론적 탐구 행위이자 관조의 의미를 지닌 테오리아(theoria) 및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윤리적 행위이자 실천의 의미를 지닌 프락시스(praxis)와 함께 갑니다. 테오리아와 프락시스는 이론을 뜻하는 영단어 theory와 실천을 뜻하는 영단어 practice로 연결됩니다.
정리하자면 (시)창작(포이에시스)이란 인간의 지적 활동 중 하나로,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실천(프락시스)과 달리 인간이 사물, 곧 세계를 소재로 삼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하는 제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