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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맑 Oct 08. 2023

장애인식에 대한 도전, 서울시교육청 근무

오늘도 내 세상은 맑다

 15년 여름, 호기롭게 취업난을 해결을 하기 위해 휴학계를 냈지만 별다른 소득을 없었습니다. 취업생의 필수 코스인 영어자격증 토익과 오픽을 땄고 알바를 하며 내 용돈벌이를 했다 하지만 그런 수고로움을 취업시장에서는 가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시각장애가 있는 취업생은 비장애인 취업생보다 +@ 가 없이는 취업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여러 직장에 알선을 해주었고 그중에 서울시 교육청을 알선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고리타분하고 발전도 없이 국가의 부품이 되어 정년을 지내다 퇴직하는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입직한 지 5년 차인 서기로서도 동일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커리어가 꼬일까 봐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것을 피했고 원래 하고 싶던 무역회사에 계속 지원했지만 광탈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지원 기간 막바지에 들어서야 교육청에서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교육청은 8월부터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배정받았던 부서는 성과평가통계팀이었습니다. 부서들이 낸 성과에 따라 평가를 하는 곳이었고 전 그곳에서 보도자료를 스크랩했습니다. 수많은 보도자료가 매일 올라왔고 아침부터 점심까지 스크랩을 하고 오후에 정리한 스크랩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다른 분들의 일을 도왔습니다.   



  제가 발령을 받고 팀장님과 과장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장애인 계약직을 받으면 그 과나 팀에서 지원금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저의 업무역량보다는 지원금을 위해 저를 받은 것이었고 발령받은 초기에는 저에게 별다른 일을 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간단한 일 좀 도우며 조용히 계약기간 채우다가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대우가 익숙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했습니다. 스크랩을 보고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했고 그 외에 주신 잔무도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실수는 저에게 일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되므로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니 저에게 하나둘씩 일을 맡기기 시작했고 오히려 일을 스케줄에 따라 가려가며 받기 시작했습니다. 뿌듯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평가가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저의 태도를 좋게 봐주셨고 저를 정직원처럼 챙겨주셨습니다. 팀워크숍에 끼워주시고 회식에도 데려가 주시는 등 제가 소속감을 가지도록 주무관님들부터(거기서는 서로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팀장님, 과장님까지 다 저를 챙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에게 업무 스타일이 공무원 같다며 공무원 시험을 권유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때는 고민을 해본다고 했지만 장애인이 존중을 받으면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을 해서 경쟁 가능성이 낮은 무역회사보다는 공무원을 택하는 것이 더욱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2월, 연말이 되고 저는 과장님과 마지막 티타임을 하며 5개월의 계약직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저의 직업을 결정해 준 좋은 기회였고 씁쓸하게 저의 한계도 확인했던 기간이었습니다. 공무원에 입직해 보니 또 다른 면에서 장애인이 근무하기 힘든 요소들이 있지만 어디든 비슷한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현명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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