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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숙 Aug 08. 2023

고구마순 김치

        


장화에 모자 수건까지 두르고 텃밭으로 갔다.

잠시 비가 멈춘 틈에 신속하게 고구마순부터 가위로 대충 자르고 풋고추, 오이, 가지, 대파를 뽑았다. 두 손 가득 고구마순을 들고 와 차고(車庫) 아래에 툭 던지고 선풍기를 세차게 돌린다. 장마는 후덥지근한 습한 공기를 사방에서 마구 품어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고구마순을 하나씩 똑똑 딴 후 손바닥 크기의 잎사귀 쪽을 비틀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심은 목적은 고구마 수확에만 있지 않다. 고구마순으로 김치를 담을 요량이다. 고구마순 김치는 제법 인내심을 요하는 여름 반찬이다.

껍질 벗긴 고구마순을 살짝 데친 후 맑은 젓갈, 다진 마늘, 풋고추, 고춧가루 등을 넣어 손으로 바락바락 치대어 만든 김치는 별미다. 갓 담았을 땐 아삭아삭 맛있고, 살짝 익어도 색다른 맛이 난다. 장마 전후 지금이 김치 담기에 최적기이다. 요즘 마트에 가면 껍질 벗긴 고구마순을 잘 포장해서 판매하고 있지만 직접 길러서 먹어야 푸짐하고 맛도 좋다. 해마다 텃밭에 고구마를 심는 이유는 이 줄기 반찬 때문이기도 하다.  

   


내 유년의 여름날도 그랬다.

커다란 대문 그늘에서 엄마가 고구마순을 까기 시작하면 딸들이 하나씩 모여 앉았다. 그때는 일회용 비닐장갑이 없어 맨손으로 깠다. 손톱 밑이며 손가락마다 까만 물이 들었다. 고구마순을 까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누가 더 잘 까나 내기도 했다. 고구마순 까기는 가족들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살랑살랑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별다른 반찬거리가 없던 시절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 쨍한 여름날의 오후가 그대로 각인된 고구마순 김치는 김치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며칠 전 여름휴가로 친정 식구들이 오기로 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고구마순을 혼자서 까면 지루하고 시간 많이 걸린다. 무려 다섯 명이나 온다니 순식간에 깔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 집 돌쇠 서방님께 일찍 고구마순을 끊어 달라 했더니 한가득 마당 잔디 위에 던져 놓았다. 뙤약볕에 시들어 버릴세라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식구들을 기다렸다.



“저건 뭐지?”

“응, 놀면 뭐 해 고구마순이라도 까자”

“언니, 고급 인력들 온다고 일거리 만들어 놨네.”

거실은 유년의 대문 그늘이 되어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오랜만에 고구마순을 까느라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처음 해보는 조카는 신기한 듯 조심스레 까고 노련한 엄마는 자신만만하다. 예상대로 커다란 양푼 가득 껍질 깐 고구마순이 쌓였다.

고구마순 김치 담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준비한 양념에 버무리면 끝이다. 엄마의 손맛을 더해 상당한 양의 김치가 만들어졌다. 이 여름을 대표하는 김치를 한 통씩 담아 돌아가는 식구들 차에 추억과 함께 실어 보냈다.   


나와 식구들에게 고구마순 김치는 특별하다. 특별한 음식에는 고향과 정겨운 얼굴과 그때의 시간이 그리움으로 배어있기 마련이다.

 서울 사는 아들 내외에게도 고구마순 김치와 텃밭에서 나온 채소들을 보낸다. 내리사랑이라고 이 시간이 참 행복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고구마순이 특별한 음식이 되어 주길 바란다.


내년에도 또 이후로도 여름의 맛과 추억을 즐길 준비는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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