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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숙 Aug 15. 2023

아버지의 숨결

그리운 편지

          

아침에 어깨를 들썩이며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간밤에 아버지 꿈을 꾼 것이 아직도 생생하여 울고 말았네요. 무릎만큼 물이 찰랑거리는 바다를 아버지와 걷고 있었어요. 앞서가는 아버지를 잡지 못했는데 갑자기 아버지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두고 바다 깊은 곳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으셔서 얼마나 울었는지, 건넛방에 자던 딸 예원이가 우는 소리에 깼답니다.

    


저희 4남매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것 아는데도 저는 아버지께 불만이 많았답니다. 남존여비 사상이 당연한 시대여서 이해하려고 했지만 자라면서 딸자식이라고 차별하신 것이 참 서운했어요. 

초등시절, 중학교 다니는 오빠에게 따뜻한 우유를 먼저 가져다주고 반대 방향에 있는 학교로 달려가야 했던 일은 오래 기억됩니다. 물론 엄마의 심부름이지만 이 또한 아들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아버지의 압박에서 나온 결과였지요. 그래서인지 아직도 우유는 잘 먹히지 않네요. 속 깊은 아들 사랑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큰집 오빠를 통해 듣게 되었지요. 어릴 적 사촌 오빠들이 같이 놀던 오빠를 때릴까 봐 아버지가 담장 뒤에 숨어서 몰래 보셨다는 이야기를요.      

아버지, 그래도 왜 이리 그리울까요? 금세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립니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아버지를 너무 좋아했나 봅니다. 아버지! 부르며 현관에 들어서면 두 팔 벌려 저희를 안아주시고, 전화라도 드리면 ‘고마워, 곱빼기로 고마워!’ 하시던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아버지처럼 부지런한 사람하고 결혼할 거라는 바람대로 저는 정말 성실하고 올곧은 사람을 만났어요. 아버지는 사위에게 ‘너는 사위가 아니고 아들이다.’ 칭찬하셨지요. 오늘따라 비 온 뒤 하늘이 시월의 하늘처럼 눈부시고 깨끗합니다. 고개 들어 저 구름 위에 저의 그리움을 띄워봅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수십 년간 고등어잡이 배를 타셨고, 여든 넘어선 연세에도 아파트 경비일을 하셨지요. 경비일 그만두실 때는 무척이나 우울해하셨어요. 유머러스하고 항상 낙천적이며 핸섬하다 자부하신 아버지, 버려진 화분에 든 식물을 살려내던 마음 따스한 아버지, 버럭 하는 성품으로 노년에 엄마의 구박도 달게 받으신 아버지, ‘아이고, 무서워라! 너그 엄마 무섭데이!’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신 아버지, 엉터리 중국어 일본어도 잘하시던 울 아버지…, 

아버지, 딸들이 모이면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럴 땐 아버지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실 거라며 다투어 흉내 내기도 한답니다. 다 보고 계시지요? 


  아버지, 한 가지 꼭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아버지 임종 전 제가 간병하느라 피곤해서 더 세심히 살피지 못해 죄송해요. 말문이 닫히신 줄도 모르고 계속 질문을 드렸지요. 새벽에 일어날 힘도 없으면서 있는 힘을 다해 몇 번이나 벌떡 일어나실 때도 임종을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얼마나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을까 생각하면 너무 죄스럽답니다. 바로 그날 아침이 아버지 생신날이었어요. 병동 간호사님들이 축하떡을 해오셨는데 아버지가 천국 가셔서 황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답니다. 태어나신 날 천국 가신 아버지.

아버지 이제 저희 염려 마세요. 엄마 잘 모실게요. 저도 이제 너무 슬퍼하지 않을게요.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기분 좋은 바람결에 아버지 숨결을 함께 느낄 테니까요. 

큰딸이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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