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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몬드봉봉 Oct 06. 2023

열일곱, 첫 대상 (2021)

제 1회 칭다오 경향도서관 문학상 [산문 부문] 대상작

제목: 괜찮아 다 과거라는 너 (2021)






심사위원 최원석 작가님 심사평


과거의 나는 용서 받지 못할 자신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지나간 것의 대부분은 아무리 잘했어도 더 잘할 수 있는 현재에 다다랐기 때문에, 우리는 늘 과거의 자신에게 후회라는 감정이 더 깃들기 마련이니까요. 사실 *** 작가님의 글을 읽고 조금 놀랐고 많이 슬펐습니다. 감히 제가 작가님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은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작가님이 과거의 자신에게 너무 혹독한 것이요. 그럼에도 다행이라 생각한 것은, 길을 잃게끔 하는 것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자신이라는 것을 아시는 것 같아서요. 방황할 시기에 많이 방황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할게요:)


대상 선정 이유


누군가의 글을 읽었을 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작가를 알아가는 것도 좋아한다. *** 작가의 글이 그랬다. 읽으며 나의 과거는 어땠었지,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지, 나는 어떻게 했었던가를 떠올렸다. 자신의 아픔을, 생각하는 아픔을 쓰며 다른 이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을 썼다는 것. 내가 *** 작가의 글을 뽑은 이유다.



 

 < 괜찮아, 다 과거라는 너 >



과거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걸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미래지향적인‘과 같은 고상한 형용사로 나를 꾸미고자 함이 아니다.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아니다. 잘못을 크게 저지른 게 있어서? 어쩌면, 하지만 이 질문에 있어서는 아니다. 나는, 내 과거가 실수를 할 것만 같아 두렵다. 두려워서 미치겠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네가 분명 의도하여 이 모든 것을 초래했을 것이다.


너라는 과거, 이 비열한 놈. 나를 갉아먹으려 안간힘을 쓰며 요청을 않았는데도 굳이 최선을 다한다. 나를 덜컥 삼키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쓸데없이 성실한 너는 너 그 자체로 끔찍하다.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다 ‘아차, 괜히 꺼냈다.’ 점차 말수가 줄어들고 나조차도 내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걸 느낀다. 너는 순진한 척, 더 듣고 싶다는 듯 싱긋 웃음을 지어보이지만 나는 겁이 난다. 왜 말했지. 왜.


결코 너를 배려함이 아니다. 나는 그저 지금의 나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동안 잘 잊고 살았잖아. 그동안 잘 해왔잖아. 그러고는 피식 웃는다. 그래, 나 까짓 게 뭐라고. 나는 원래 이런 놈이었잖아. 내가 뭐라고 안달복달, 열심히 살겠다고 여태까지 헛짓거리를 한 거냐. 그냥 내가 문제의 원천이고, 또 결과며 문제 그 자체이다. 이제 다 알겠으니 제발 날 떠나주라. 네가 있는 게 나는 괴롭다.  나는 목 놓아 크게 울며 너의 방문을 요하지 않는 나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출입 금지. 굵은 빨간 매직으로 찍찍. 입구 모서리에 너 보란 듯이 대충 기대어 놓고 깊숙이 들어가 어둠 속에 그냥 혼자 있는다. ‘있는다’ 가 말 그대로 ‘있는다’ 다. 그 비열한 놈이 또 생각이 나면 후회를 듬뿍 담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큰 소리로 엉엉 울어보기도 하고, 그냥 계속 운다. 울지 않고 있는 때에도 나는 울고 있다.

 

‘출입 금지.’ 어쩌면 일부러 크게 적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니, 그냥 맞다. 나는 이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네가 이걸 보고 마음 아파했으면 좋겠다. 내가 너 때문에 미치도록 고통스럽다는 걸 네가 미치도록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울분을 토하는, 너의 그러한 포효를 듣고 싶다. 나는 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동굴 깊숙이, 나도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는 그곳에서, 벽에 귀를 대고 숨을 죽인 채 공기의 진동을 듣고 있을 것이다. 희박한 가능성도 가능성이니.


내가 이러고 있는 사실을 너도 알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나조차도 모르겠는 나를 가장 먼저 알아주고, 찾아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라는 게 차라리 존재하기를 바라는 끝없는 희망은 나에게는 극심한 우울과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자극일 뿐이다. 그냥 너를 처음부터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은 존재, 너는 나에게 고통, 공포, 굴욕, 온갖 너를 꼭 닮은 것들을 내게 선물이랍시고 건넨다. 나는 그런 것 다 필요 없고,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그냥 네가 사라졌으면 한다는 것.


근데 저번처럼 이번에도 네가 나를 다시 찾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길을 잃게끔 하는 것도 너이며 다시 트랙 위에 나를 위치시키는 것도 너다. 내가 지금껏 심한 말을 했다고 사라질 약한 멘탈의 네가 아니니, 네가 나를 다시 찾아준다면, 비록 그릇된 마음일지라도 너를 용서하겠다. 보아하니 내가 너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고소공포증 있어? 또 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나를 한 평생 쫓아온 목소리다. 그러면서 ‘아니’라고 퉁명스럽게 답하는 게, 슬프지만 나다. 모르겠다, 한 술 더 뜬다. ‘밑에 보는 건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멀리 보는 건 좋아해.’


그럼 넌 날 좋아하는 게 아닌 거네? ‘응, 그렇다고 봐야지. 별로 미안하지는 않네. 미안.’


어째서? 다 과거잖아.

몰랐던 척 하지 말라는 너라는 과거, 지금은 내가 너에게 싱긋 미소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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